10월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달
서양의학보다 동양의학을 좋아하는 나, 약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자연치유를 선호하는 나였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병원을 드디어 찾았다. 왜 진작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막연했던 아픔의 이유가 정확하게 보이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몸의 해답을 찾으니 바닥에 딱 붙어있던 짓눌린 마음도 다시 올라오는 것 같다.
10월은 허리가 안 아픈 날이 한쪽 손가락에 꼽힐 만큼 내내 통증을 느끼며 살았다. 마법이 와 그렇겠지, 비가 와서 그렇겠지 하며 환경 탓만 하고 지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날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 날도 그때뿐이었고 이내 묵직하고 찌릿한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다. 요가를 열심히 해보려고 했으나 오히려 다녀오면 손목통증, 어깨통증에 시달렸다.
허리가 아프니 만사가 귀찮고 울적했다. 아이들 돌보는 것도 싫었고,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엄마 허리 아파!"로 치고 나오는 멘트도 짜증이 났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글쓰기도 싫어졌다. 글쓰기와 체력을 바꾼 느낌이었다. 내가 선택해 놓곤 책임은 내가 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글이 발전되는 기분도 들지 않고, 내 안에 든 것 없이 내뱉기만 하는 글을 쓰는 게 싫었다.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약장수처럼, 깊은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새벽시간까지 만들어가며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나는 어떤 성장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책을 많이 못 읽은 게 가장 후회가 되었다. <시간 부자의 하루> 정연우 작가처럼 시간을 쪼개며 시간을 확보했지만, 나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거기다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까지 질질 끌고 가는 게 무겁기만 했다.
재활의학과를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어 본 결과 일자목에 허리는 살짝 휘었고 디스크 조짐이 보인다고 하셨다. 심각한 건 아니라고. 스마트폰 때문에 일자목인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 노트북, 독서.. 일자목이 안될 수가 없었다. 일자목은 목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베개로 바꾸고 목운동이 아닌 등의 상부근육을 키워줘야 한다고 했다. 허리는 코어근육을 키우기 위해 자주 걸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 상태에서 요가는 추천을 안 하고 싶다고 했다.
꿈지도를 같이 그리며 가까워진 아주나이스님 덕분에 '부단히런' 공동체에서 동기부여를 받고 있었는데 걷기와 달리기는 괜찮다는 말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부단히런 6기' 신청을 하고 아주나이스님께 메시지를 드렸다. 바쁘셨을 텐데도 아낌없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에 힘이 났다. 걸을 생각이 없었지만 허리 통증이 심해 달리기를 한 정형외과 의사의 책을 추천받으니 직접 사러 다녀오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문밖을 나와 걷기를 실천하며 희망의 씨앗을 틔웠다.
걷다 보니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1년 안에 끝날 문제인가.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게 책인 것을 너무 급하게 생각하며 나를 몰아세웠던 것 같다. '빨리빨리'하는 나의 욕심으로 내 안에서 울부짖는 몸과 마음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너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어. 네가 충동적인 플랜을 할 때마다 움직여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 잠시 멈추고 숨 쉬고 싶어.'
지금 글을 쓰다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움직이는 게 나였다. 내가 굳이 결심 목록에 넣지 않아도 알아서 나는 'do'의 생활은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 하지 못하는 '멈추기'. 이 걸 정말 의식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그 책을 바로 사야지 하고 사러 다녀온 것도 움직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음에도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겠다는 것도 움직임. 움직임이 나에게 활력을 줄 때가 많았지만 이것이 균형을 못 맞추면 탈이 나는 것 같다. 멈추지 못하고 나의 모터는 계속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우유 갖다 준다고 집을 방문한 엄마께 라면 한 그릇 끓여 드리지 못하고, 약속시간보다 빨리 오신 아빠께 원망스러운 말투를 보냈던 것도 어제의 나였으니까.
뭔가 오늘은 글이 정돈되지 못하고 이 말 저 말이 다 나오지만.. 오늘의 기록은 꼭 남겨야겠다. 그러고 보면 통증 덕분에 10월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달이 되어주는 것 같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욕심부리는 실용적 글쓰기가 아닌 진짜 내 마음의 글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 요가는 잠시 내려놓고 걷기와 달리기로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책을 많이 읽지 못했어도 한 권을 진득하니 읽고 만날 수 있는 향모를 땋는 시간, 움직임이 아닌 멈추기가 되어야 하는 삶의 방식까지.
방황과 흔들림의 연속이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보자.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