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루작가 Nov 05. 2024

다정함을 돌보는 사람들

버스에서 만난 귀한 인연 그리고 둘째 아이:)

지난 일요일이었다.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의 성화에 네 식구는 처음으로 다 같이 버스를 탔다. 그동안은 나와 남편 중 한 사람이 없거나 한 사람은 차를 타고 목적지에 가야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완전체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신이 나 정류장을 향해 와다다다 뛰어갔다. 


"엄마! 415번이 이제 와요!!"


버스 번호를 보며 세 자릿수 읽기에 재미가 들린 첫째가 소리쳤다. 지난번 친구네 카페를 방문할 때에도 탔던 415번. 그래서인지 아이는 415번 버스가 친구처럼 반갑게 느껴졌나 보다. 버스를 타면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래서 더 정겹고 감사하다. 아이들도 그 온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몇 정거장이 지나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다. 어딘가 낯이 익다 생각했는데 그 할아버지가 우릴 향해 웃는 눈으로 슬그머니 쳐다보시더니 다가와 앉으셨다. 


"너는 세 살, 너는 다섯 살. 맞지??"


맞다, 지난번 415번 버스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셨다. 그때는 운동복차림에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잘 몰랐는데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으신 할아버지의 선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매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할아버지가 두 번째 만남이라며 지갑에서 용돈을 꺼내 아이들에게 주셨다. 극구 사양했으나 두 번째 만난 게 인연이라고 받으라 하셨다. 


할아버지의 막내 손녀는 이제 17살이라며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게 느껴졌다. 이도초등학교를 지나자 다른 손녀 생각이 나셨는지, 27살이 된 손녀를 22살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우셨다고 얘기해 주셨다. 아들이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아이가 4살 때 이혼을 하고 그 뒤로 쭉 본인들 손에 컸다고. 그런데도 기특하게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손녀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러나 작년 마누라를 먼저 보내 마음이 우울해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거라고. 


아, 이렇게 다정하신데 부부사이도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버스를 타는 평범한 사람들, 동네를 바라보며 그리움을 일상에 묻고 계시는 할아버지셨다. 차창 밖으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데워드리길 바라며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둘째가 거실 한 구석에서 "크왕 크왕"하며 양손에 동물들을 잡고 놀이를 하고 있었다. 혼자 심심한가 싶어 다가가 마침 눈에 띈 여자아이모양의 블록을 잡고 배를 타며 "도망가자~~~ 으악 살려주세요!" 하는 내게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저 아이 괴롭히려고 하는 거 아닌데??"

"..."


부끄러워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크왕 크왕"은 그들의 대화였을 뿐 공격하는 게 아닐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던 건지 부끄러웠다. "그렇구나~~!!! 재밌게 동물친구들이 놀고 있는 거였구나!" 얘기하며 민망해 그 자리에서 얼른 일어섰다. 즐겁게 노는 아이를 뒤로한 채 창피했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은 따뜻하게 채워졌다. 


버스에서 만난 할아버지도, 둘째도 다정함을 돌보는 사람들이었다. 진심이 묻어나는 사람들. 그들이 품는 사랑이 깨지지 않고 귀하게 보듬어지길 바란다. 순수한 마음을 나도 닮아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