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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루작가 Nov 23. 2024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된다

자연에서의 행복한 시간:)

나에게 아지트가 생겼다. 우연히 들른 미술관 뒷편에 이렇게 멋진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 부스를 차려 나에게 어서오라 손짓하듯 곳곳에서 자연이 인사를 한다. 이 쪽에서는 피라칸다가, 저 쪽에서는 단풍이, 여기저기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듯 나뭇잎들이 나를 반겨준다.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그 곳을 유유히 걸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안녕!” 인사를 나눴다. 마침 미술관이 전시 준비로 문이 닫혀 있어 그랬겠지만, 이 아름다운 곳을 나홀로 즐기고 있다니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내게도 나만의 정원이 생긴 것 같았다.

뜨거운 마음을 <향모를 땋으며>로 원서 읽기 중인 봄산 북클럽 멤버들에게 나누었다. 이렇게 나에게도 ‘장소성’이 생기는 건지 두근두근 하면서.

이 곳을 오늘 다시 한 번 찾았다. 남편에게 일박이일의 자유시간 찬스를 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내년 주말 중 하루는 자유시간을 가지라고 남편에게 선언했기에 아이들과 떠나는 토요 산책은 나에겐 예행연습이기도 했다.  

“엄마, 오늘은 어디가??”

“음- 자연 놀이터!”

“자연 놀이터??”

“응! 어제 엄마가 다녀온 곳인데 엄마만의 비밀 아지트가 있어! 너희들에게도 보여줄게!”

그렇게 도착해 간 곳에서는 한 분의 아저씨만 마주쳤을 뿐 또다시 우리만의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 낙서를 해둔 흔적이 보였지만, 그 순간은 오롯이 우리를 위해 자연이 내어준 시간이었다.

커다란 돌 위에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고 아이들은 나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떨어진 조밤을 줍고 넓은 잔디 위를 마음껏 뛰어다녔다. 예전 같았으면 욕심 가득 챙겼을 조밤도 이제는 적당히 챙기고 고마워 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왜 우리밖에 없냐고 물었지만, 집에 가는 걸 싫어했을 만큼 여기가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어제 내가 나오며 잊었던 ‘땡큐’ 인사를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소리내어 말했다. “고마워 나무야, 고마워 잔디야, 고마워 돌아, 고마워 열매야! 이렇게 좋은 시간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아직 식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지 못하는 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오후에 아이들을 엄마께 맡기고 아리랑 라디오에서 주관하는 ‘제주 환경 토크콘서트, 푸릉푸릉 Jeju’에 다녀왔다. 요즘 부쩍 자연과 환경에 관심이 많아지는데 마침 콘서트 정보를 알게 돼 바로 신청한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나운서, PD, 스텝들.. 출연자로 나온 사우스카니발, 제주 해녀 김연진, 환경운동가 줄리안,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의 모습들이 다 정성으로 다가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콘서트를 즐겼다.

마지막 순서였던 최유리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두번째 노래인 ‘우리의 언어’를 듣는데 이상하게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그거면 된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된다

아이들과 자연에서 보냈던 오늘이 떠올랐다. 내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올 때 자연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환경보호에 앞장서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는데 자연은 이렇게 너그럽게 미소지으며 고백하고 있었다. 조건 없이 받는 사랑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다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연결된 고리들이 단순한 우연으로 엮인 건 아니었을 거다. 앞으로의 만남이 기대된다. 그들에게 답례로 표현할 나만의 사랑 방식을 고민해본다.


https://youtu.be/5Qa7Gs6EcD8?si=9xAppIkSRl69ql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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