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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Jan 02. 2022

샤갈 특별전 - 성서에서 찾은 인류의 꿈

마르크 샤갈. 야수파의 강렬한 색상과 입체파의 해체와 결합, 초현실주의의 환상적 회화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그의 그림은 어느 미술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어린 시절부터 성서의 매력에 사로잡혔던 샤갈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혼란을 겪었던 시대의 엄혹함을 성서적 메시지와 함께 그림에 녹여내었다. 이번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샤갈 특별전>은 이러한 ‘성서 회화’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인 화가로서의 샤갈에 집중했다. ‘Chagall and the Bible’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성서의 맥락에 맞추어 작품을 구성한 것이 돋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것이 역대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 마르크 샤갈



이번 전시는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는데, 첫 번째 구역에서는 샤갈의 작품 속 주요 모티프를 다루었고, 두 번째 구역에서는 성서 속 105가지의 장면을 판화로 제작한 샤갈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세 번째 구역에서는 샤갈의 작품 속에 숨겨진 성서적 메시지를 해석하고, 네 번째 구역에서는 샤갈의 시와 그림을 함께 감상하며 그의 예술관을 파악할 수 있다. 


샤갈의 주요 작품에는 프랑스의 국조인 수탉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 속 에펠탑과 수탉의 기묘한 조화는 특유의 화려함과 함께 프랑스의 이국적인 색채를 물씬 풍긴다. 샤갈은 자신이 초현실주의에 속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풍기는 독특한 환상을 감상하다 보면 이러니 당대 사람들이 그를 초현실주의로 분류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잘 보면 그의 그림에는 하나로 분류하기 어려운 복잡한 매력이 담겨 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샤갈의 국적을 따져보아야 한다. 샤갈은 원래 프랑스인이 아니었다. 그는 1887년, 러시아 제국의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 또한 ‘모이셰(성서 속 모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샤갈’이었다. 


샤갈은 모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이주했고, 역동하는 젊은 예술의 흐름과 마주한 이후에야 자신의 이름을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다. 그만큼 파리는 그만의 예술적 터전이자, 진보적이고도 독창적인 미술 세계를 정립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곳이었다. 


젊은 시절, 그가 러시아에서 학습했던 민속주의 화풍, 내지는 신야수파적 요소의 장대한 아름다움은 프랑스의 생기 넘치는 매력과 만났고, 샤갈은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정립할 수 있었다. 그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작업방식을 탄생시켰던 것은,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았던 그의 문화적 배경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자칫 ‘혼란함’으로 향할 수도 있는 개인사를 가졌던 샤갈이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의 ‘다채로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화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마주할 때도 시공간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샤갈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속 다윗 왕의 몸을 표현하는 색의 조합은 아름다웠다. 눌어붙은 물감은 제멋대로 섞인 듯 보였지만, 걸음을 뒤로하고 감상했을 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헤진 캔버스의 가장자리는 샤갈과 나의 심리적 틈새를 오히려 메꾸었고 그와 내가 더 가깝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그가 조합했던 색감은 메아리처럼 울렸고, 마치 무언의 메시지를 호소하는 듯했다. 그것은 하나의 울부짖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화가로서, 유대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꿈을 가진 그만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예술혼은 유독 성서에 집착했다. 그 이유는 샤갈이 험난한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다. 러시아계 유대인 미술가라는 이유만으로 나치로부터 ‘퇴폐적’ 예술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샤갈은, 1941년 가족과 함께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다. 따라서 샤갈에게 예수란 거울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던 그리스도처럼, 그는 자신을 스스로 이젤에 못박았다. 


예수뿐만이 아니다. 성경에는 정신적, 육체적 수난을 겪은 수많은 이들의 일화가 등장한다. 샤갈은 이들의 역사에 자신의 발자취를 대입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끝없는 질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유대인이 예수를 핍박했기에 그들의 후세대가 전쟁과 학살을 겪은 것인가? 유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죄의 소산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옳은가? 그들을 정죄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 애초에 그것이 죄가 맞는가?  



샤갈은 자신을 밤낮으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로 묘사했다. 비록 그는 예수가 메시아로서 역사하는 신약 성경을 믿지 않는 유대인 출신이었지만, 그는 자기 민족이 전쟁에서 겪은 고통을 예수의 부활처럼 이기어 낼 것이라 믿었다. 


그는 자신의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림에 걸맞은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샤갈의 그림을 시와 같이 공개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그의 내면을 더 깊게 탐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살아가네. 오, 신이시여. 무엇 때문에.

나는 밤낮으로 십자가를 지고 이미 내 주위로 어둠이 찾아왔네.

오, 신이시여. 당신은 멀어지고 있네. 무엇 때문에.


- 마르크 샤갈



아마 샤갈이 성서에서 찾았던 해답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향한 사랑, 주변의 소중한 인연을 향한 사랑, 신을 향한 사랑까지. 그가 평생 짊어졌던 종교적 고민은 세상을 향한 드넓은 사랑으로 확장되었고, 이처럼 풍요로운 심리는 아름다운 그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요즘처럼 종교가 혐오나 공격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는 시대에, 샤갈이 꿈꾸었던 신의 사랑과 진정한 포용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고민을 내면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인류의 꿈으로 표현했으며 이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제 생각에 이 그림들은 한 사람의 꿈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꿈을 표현한 것입니다.


- 마르크 샤갈



전시의 마지막에는 ‘나만의 샤갈 아틀리에’를 주제로, 샤갈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를 종이 엽서에 도장으로 찍어 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꽤 많은 양의 작품을 다룬 전시이니만큼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만의 엽서를 만들면서 천천히 샤갈의 작품을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성서에 초점을 맞춘 샤갈의 작품(특히 판화가 매우 많다)이 다소 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서에 관한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는 전시 동선이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샤갈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화가의 이름값을 강조했는데, 막상 그의 대표작이 많지 않은 것도 아쉽다. 물론 종교적 메시지가 담긴 샤갈의 작품을 시대순서와 성서의 흐름에 맞게 정리해놓은 것은 좋은 구성이었다. 그러나 샤갈의 역작을 보기를 원한 관객은 계속 나열되기만 하는 판화에 실망할 수도 있다. 작품에 우열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샤갈’ 하면 떠오르는 작품을 기대하기에는 아쉽다. 


이 전시는 샤갈보다는 ‘Bible’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전시다. 그의 삶과 성서와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전시이기에, 종교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이라면 무난히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기독교인이기에, 샤갈이 방대한 성서에 매력을 느낀 것에 공감이 되었고, 성서 속 인물의 서사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했던 것도 이해되었다. 무엇보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경계인으로서 샤갈이 가졌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전시였기에,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샤갈 특별전 : Chagall and the Bible>은 서울 마이아트뮤지엄에서 21년 11월 25일부터 22년 4월 10일까지 열린다.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초대를 받아 관람한 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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