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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편 Dec 27. 2020

당신의 글은 누군가의 시간을 산다

글은 길게 쓰는 게 아니다.

적어도 웹 소설 편집자인 내 시선에선 그렇다.

할 말만 하고, 주제를 드러내 독자에게 내용이 가 닿았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멋진 상상을 있는 힘껏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고 싶어 한다.

캐릭터도, 감정도, 서사도, 그 무엇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합이 완벽한 글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다.

문제는 당신의 글이 그 완벽과는 거리가 있단 점이다.

당신의 글이 완벽했다면 이미 두루두루 회자가 되고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완벽하지 못한 내 글에서 힌트를 얻으려고 할 리가 없을 거로 본다.


당신의 글을 보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내가 종사하는 웹 소설계에서는 오락, 여흥, 소망 충족 등 결국 하나의 궤를 하는 목적으로 독자들이 웹소설을 본다.

이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단어로 치환하자면 그건 '재미'가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재밌는 글이 뭔가? 모든 합이 완벽하면 그게 재밌는 글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웹 소설에서 글의 완벽함은 부수적인 요소에 가깝다.

여기선 당신의 글이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면은 한정되어 있는데, 작가인 당신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독자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당신에게 오랜 시간을 할애하려 하지 않는다.

떠나가는 그들을 붙들기 위해 당신은 당신의 글로써 그들의 시간을 사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러기 위해선 당신의 글이 재밌어야만 한다.


편집자는 재미를 위해 당신의 글에 덕지덕지 붙은 군살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작은 지면에 어떻게든 당신의 글을 세일즈하기 위해 그 요소를 찾아 부각시키고, 그 외의 것은 죽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인 당신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를 한 번쯤 할 것이다.

왜냐면 이미 그 원고는 무료 연재 때 재밌다고 평을 들었고 독자들에게 인정받았으니까.


바로 여기에 그 함정이 있다.

무료 연재를 볼 때와 유료 연재를 볼 때의 독자들이 갖는 시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무료 연재 때보다 최소 100원은 더 쓴, 비싼 시간으로 독자들이 당신의 글을 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땐 다소 산만해도, 모자라도 좋게 넘어갔던 것들이 출간작에도 그대로 통용되진 않는다.

뭐든 자신의 돈과 시간이 함께 들어가게 되면 평가에도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편집자들은 그래서 당신의 글에서 장점을 뽑아내 극대화하고, 단점을 죽이는 정제 작업을 하게 된다.

바쁘신 분들 모셔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부터 시작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당신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경제적인 글 쓰기를 이미 하고 있다면 편집자는 별로 손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런 작가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 보는 편집자의 소소한 잔소리 시작 편이다.


(목차는 정해져 있으나 시의에 따라 주제와 업로드 순서는 다소 뒤죽박죽일 수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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