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입장에서 재건축 따져보기
재건축분담금이 크게 올라 조합원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사업성이 좋았던 저층 아파트 재건축이 대부분 마무리된 뒤 이제는 중층 아파트 재건축으로 옮겨 가면서 사업성이 구조적으로 나빠진 데다, 인건비와 자재비까지 높아져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힘든 상황에 빠졌다. 이 와중에도 개별 조합원들은 재건축사업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내부적으로는 어떠한 난제를 안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조합은 혹시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하여 조합원들에게 내막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공개되는 용어나 지표도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과 달라 매우 난해하다. 개발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갈라파고스적인 관련 법제마저도 민법ᆞ상법 등과 어울리지 않아 일반인의 상식 범위를 벗어난다. 앞에서 재생사업을 끌어가는 지방정부나 조합 집행부 등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개별 조합원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된다. 알고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나는 재건축에서 통용되는 사업 체계와 용어를 상식으로 풀어 보는 ‘조합원 입장에서 재건축 헤쳐보기’를 연재한다. 개별 조합원들이 재건축을 제대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국토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16.7%인데,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은 91.9%나 된다. 특히 대도시권의 인구집중 현상이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서울이나 부산ᆞ대구ᆞ대전ᆞ광주 등 지방광역도시에서는 가용토지가 한정되어, 기존의 낡은 주택을 허물고 그 위에 새 주택을 더 짓지 않으면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맞춰 적절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행정당국은 재건축, 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대도시의 주택 수급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1970년대에 저층 위주의 저밀도 단지(용적률 100% 미만)로,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저층 및 중층의 중밀도 단지(용적률 170% 내외)로, 1990년대에 들어서는 고층의 고밀도 단지(용적률 200% 이상)로 지어졌다. 재건축사업은 이 아파트들을 순차적으로 헐고 그 위에 품질 좋은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제 기존의 저밀도 아파트단지들의 재건축은 거의 마무리되었고, 중밀도 아파트단지들의 재건축이 한창 진행중이다. 중밀도 단지들 가운데 이미 사업을 마무리하여 입주를 마친 곳도 있고, 건축공사를 진행중인 곳도 있으며, 조합 설립 등 정비사업 절차를 밟고 있는 곳들도 많다.
현재 사업을 종결하지 못한 많은 재건축사업장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가 조합원분담금의 급격한 상승이다. 물론 사업진행 과정에서 추가 분담금이 생기는 것은 주로 건축공사비나 사업비가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높은 재건축분담금 부담은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강제하는 ‘재건축 용적률 정책’에서 비롯한다.
용적률을 법적 상한만큼 인정받으려면 멀고도 험하다
서울시 소재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진행되는 재건축사업을 중심으로 설명을 시작한다.(1) 정기적으로 수립되는 ‘서울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의 ‘건축물 밀도계획’에 따르면, 재건축 정비구역의 기준용적률 210%를 바탕으로 잡고, 그 위에 건축과 관련된 인센티브에 따라 최대 20%, 공공기부채납(2)을 보상하는 용적률 완화로 최대 20%를 얹어 250% 이하의 ‘상한용적률’을 부여한다. 여기에서 건축 관련 인센티브 요소나 공공기부채납의 내용은 지구단위계획과 정비계획으로 결정된다. 즉 반강제적으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이제 재건축사업(조합)이 상한용적률을 넘는 용적률을 어떻게 얻어내는 것일까? 지자체는 법정상한용적률(3)을 기준으로 그 아래까지는 사업에 주어지는 추가 용적률의 50%를 국민주택규모의 주택으로 건설하여 공공에게 매각하는 조건으로 추가용적률을 늘려준다. 이때 매도가격은 표준건축비(4)만 받게 된다.
이상은 통상의 재건축인데, 사업지가 역세권 또는 교통중심지 인근에 있거나 우량한 세입자의 보상대책을 계획하는 사업장(주로 재개발 등)에게는 360%까지의 특례 용적률 완화를 부여한다. 이 경우 늘어나는 용적률의 60∼70%를 국민주택으로 건설하여 공공에 매각하는 조건이 부여된다.
앞서 말한 ‘상한용적률’을 넘어서는 이 부분은 조합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용적률 구간이다.
용적률이 높으면 무조건 이익일까?
과거 비례율이 낮은(수익성이 좋은) 경우나 공사비가 높지 않던 시절에는 재건축사업의 용적률을 최대한 높게 받는 쪽이 조합원들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이제 저밀도 단지의 재건축이 마무리되었다. 요즘에는 중밀도 단지의 기존 용적률이 높아서 기준용적률까지 여유가 얼마 남지도 않는다. 늘어난 용적률만큼 건물을 지어 일반분양가로 시장에 팔아서 큰 이익을 거두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앞으로 고밀도 단지의 재건축이 본격화될 때가 오면 이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게다가 요즘 공사비가 크게 상승한 데다 추가 용적률 대신 부담하는 공공 국민주택 공급에서 생기는 매각손실까지 감안하면 무작정 용적률을 높이는 선택이 현명하다고 볼 수도 없다.(5) 이러한 연유로 재건축 단지들이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앞선 글 ‘조합원의 실질부담’에서 설명했듯이,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용적률 확보에 소요된 갖가지 희생을 보상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일반분양가를 받을 수 없거나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는 경우에는, 조합원의 희생(손실)이 최소화되도록 용적률을 계획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용적률이 높다고 반드시 사업성도 높은 것은 아니며 조합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애로를 완화하려 정부 차원에서 노력 중
한편, 며칠 전 정부는 이러한 재건축사업의 애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앞으로 사업시행인가 신청 때부터 최고 용적률을 3년간 한시적으로 330%(역세권은 390%)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한용적률 초과 완화 때 공공주택 공급의무 비율도 차등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6) 이 내용들은 곧 법령이 개정되는대로 시행된다.
-----------------------------
(1) 각 지자체별로 재건축에 부여하는 용적률 체계가 다르다.
(2) 통상 이것은 도시정비법에 따른 50,000㎡ 이상 계획에서 세대당 2㎡ 또는 개발부지면적의 5% 이상 중에서 큰 면적만큼 도시공원 또는 녹지를 확보함으로써 실행된다.
(3) 국토계획법에서 정한 용도지역별 상한용적률을 망한다. 각 지자체는 이 범위 아래에서 상한용적률 등을 조례로 정한다.
(4) 국토교통부가 고시하는 공공건설임대주택 표준건축비를 말한다.
(5) 이 시리즈 '재건축 용적률 높임에 따른 조합원 부담 변화'를 참조.
(6) 관계부처 합동,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확대방안’, 202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