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한 채
사람들은 스스로 돈을 모으거나 빚을 내어 ‘내 집’을 마련한다. 그 집에 거주하는 동안 집값이 오르면 기뻐한다. 이어서 제 돈이든 빚이든, 큰 돈을 보태 더 넓은 집이나 좋은 입지로 옮긴 후에 그 집값이 계속 오르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주택 소유자들은 주택을 안정적인 거주 공간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얻는 투자자산이라는 인식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런데 1주택자가 자가 사용 주택의 가격 상승을 투자이익(시세차익)으로 보며, 그 주택을 투자자산으로 여기는 인식이 타당할까?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가 사용 주택
한국의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자기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¹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 직접 거주하는, 소위 '자가 거주' 형태를 취하고 있다. ² 이는 주택 소유가 곧 주거 안정의 기반이라는 일반적 인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가 가구의 현 거주 주택 평균 거주 기간은 11.1년으로, 임차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인 3.4년에 비해 현저히 길다. ² 이는 주택 소유자가 단순히 자산의 가치 상승을 목적으로 단기 매매를 반복하기보다, 거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주택을 비유동성 자산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까닭에 주택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시의적절한' 매도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1주택 자가 거주자’가 명목상으로 발생한 시세차익을 실질적인 부의 증식으로 치환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다주택 소유자이거나 다른 종류의 부동산을 따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의미한 자산 가격 상승 때 여분의 주택³이나 부동산을 처분하여 시세차익을 얻어, 국내외 주식ㆍ채권ㆍ예금 등 다른 형태의 자산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1주택 자가거주 소유자는 설사 ‘자가 거주’를 포기하고 실현한 시세차익 조차도 기존 소유 주택의 기회비용을 제대로 상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하에서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한다.
주택을 처분한 1주택자가 비슷한 새 집을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주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거주’를 충족시키는 ‘소비재’의 성격을 갖는 동시에, 자본 이득을 기대하는 ‘투자재’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독특한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1주택 자가 소유자에게 이 두 가지 성격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일으킨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이 상승분이 실질적인 자산가치 증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 그 핵심적인 문제다.
그 이유를 경제학의 '대체재'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면, 그 대체재의 수요가 늘어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주택 시장에서는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이 오르면, 그와 유사한 기능적 효용을 가진 다른 지역의 주택 가격 또한 함께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주택 시장 전체가 인플레이션, 유동성 공급, 금리 변화, 경기 순환 등 거시경제 변수의 영향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1주택을 매도하여 얻은 이익으로 새로운 주택을 구매하고자 할 때, 상승한 명목 가격을 고스란히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5억 원에 샀던 아파트가 10억 원이 되었다고 해도, 새로 구매할 대체 주택의 가격 또한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랐다면, 주택 자산의 대체적 구매력에는 변화가 없다. 이는 집값이 올랐어도 실질적인 구매력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가격이 오른 내 자산을 비슷하게 가격이 상승한 다른 자산으로 교환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더구나 명목상의 시세차익은 매도 때 발생하는 각종 비용(중개수수료, 양도세 등)과 세금에 의해 상당 부분 잠식된다.
물론 내 주택을 시세대로 처분하고, 대신 충분한 가격 메리트가 있는 인기 지역의 공공분양 주택이나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에 당첨되어 분양 받는 경우는 예외이다. 어디 그것이 쉬운 일 인가? 오죽하면 ‘로또 분양’이라 부를까?
주택 투자는 물가상승을 보상할 수 있나?
일반적으로 부동산을 보유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헷지(Hedge)하거나 자산의 실질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고 인식된다. 이는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동안 부동산의 명목 가치가 그 이상으로 상승하여 자산의 실질 가치를 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달리 해석해보자면 ‘주택’이란 자산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주택은 사용가치가 다른 자산에 비해 사람과 가깝기 때문에 이를 따로 고려할 수 있으나, 다른 자산들도 이자, 배당 등의 과실(果實)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장점이라 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 자료에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시작점은 2006년6월1일 “부동산 등기 때 실거래가 기재 의무화” 시행 이후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2007~2024년의 아파트 가격 변동과 그에 관련되는 거시경제 지표를 대비하여 설명하겠다.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2007년 대비 2024년에 1.67배로 올랐다. 같은 기간에 서울은 2.11배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 1.46배에 비해 상승 폭이 크지만, 여기에 반영되지 않은 개별 아파트의 고급화 및 편의시설 구비 등을 감안하면 그리 큰 차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이에 대응하는 1인당 GDP(원화 기준 명목가격)도 같은 기간에 2.11배나 올라, 계속 상승한 아파트 가격을 감당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아파트가격 상승 폭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는 서울 거주자의 소득이 높고 지방 부자들이 서울 아파트를 매수한 탓도 있지만, 지나치게 큰 규모로 늘어난 통화량 때문이다. 2007년에 비해 2024년의 통화량은 무려 3.38배로 늘어났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늘어난 통화량은 은행시스템을 거쳐 가장 먼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 흘러간다. 물론 통화당국은 그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기를 바라고 유동성을 늘린다. (이론적으로 정부가 양심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최적의 경로로 돈이 흐르도록 조절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제대로 돈이 돌지 않는다)
다소 전문적인 경제학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해보기로 하자. 한국의 ‘마셜k’⁴는 2007년 1.29에서 시작해 천천히 높아져 2017년 이전까지 1.4를 넘지 않았지만, 이후 급속히 높아져 2023년에는 1.70에 도달했다. 마셜 k가 상승한다는 것은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상황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경기를 살리거나 위기를 극복하려 풀어놓은 돈들이 기업 부문의 설비 투자나 고용 확대 쪽으로 제대로 흐르지 않고, 전통적으로 안전하고 기대수익률이 높다고 인식된 부동산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시장으로 돈이 집중적으로 몰려 이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더 크게 올랐는데, 여기에 부채질을 한 다른 요인은 정부가 ‘지방 소멸’ 추세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이다. ⁵
주택가격 상승률이 다른 자산에 비해 낮다는 사실
주택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를 웃돌아 ‘인플레이션 헷지’를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자산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여기에서는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자산인 금, 미국 주식(개별 주식이 아닌 비교적 안정적인 지수 상품)과 대비해 본다. 한국 주식은 비교군에서 제외한다. 왜냐하면 한국 증시는 대주주가 개미 투자자를 약탈하는 일이 횡행하는 ‘야바위 판’이기 때문이다.
금값은 2007년에 비해 2024년에 4.83배로 높아졌다. 그리고 미국의 Nasdaq지수(원-달러 환율 감안)는 같은 기간에 9.13배나 높아지는 엄청난 모습을 보였다. 그림에서 보듯이 아파트 가격은 다른 투자자산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초라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똘똘한 한 채’ 현명하게 마련하기
살펴본 바와 같이 “자가 거주 1주택”만으로는 주택 시장의 변동성을 활용한 실질적인 부의 증식을 달성하기 어렵다. 주택은 기초적인 “삶의 터전”으로써 그저 인플레이션에 맞서 가치를 보존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자산이다. 그러니 적극적인 자산 투자를 추구한다면 주택이 아닌 별도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여 경상소득이나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러한 옴니버스(omnibus)적인 접근이 명목적 이익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부를 창출하는 데 유리해 보인다.
무주택자라면, 자가 거주 주택 마련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자기 소득에 걸맞고 자기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격 범위의 주택을 사는 것이다. 그 이후에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장기적으로 화폐가치 하락을 상쇄할 수 있는 우량한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년에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다 보니,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것이 서울 강남3구, 용산구가 ‘투기지역’이자 ‘토지거래허가구역’임에도 이 지역 아파트에 자산가나 고소득자의 수요가 몰려 집값을 지지하고 올리는 배경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인기 지역 소재 아파트라 해서 특별히 시세차익으로 얻는 수익성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⁶
다주택자가 여러 채를 팔아서 똘똘한 한 채로 모으거나, 1주택자가 과도한 부채를 지며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 물론 모두가 선망하는 우수한 입지에 들어가 ‘사회적 우월의식’을 가지거나, 자녀의 우수한 교육환경 마련이 목적이라면 그 나름대로 제3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1주택자가 상급지로 갈아타기를 하고자 한다면, 선망하는 지역의 아파트 값이 빠르게 오른다고 FOMO(fear of missing out) 분위기에 휩쓸려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집 또한 변동폭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함께 상하 변동하는 것이니, 선망하는 집의 가격과 폭이 좁아질 때 갈아타는 지혜를 갖추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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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통계청 주택소유통계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소유 가구비율은 56.4%임.
(2) 2023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자가 거주 가구 비율은 57.4%임.
(3) 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다주택자의 여분 주택은 임대수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보유하는 부동산으로서, 자가 거주 주택과는 목적ㆍ기능 면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이는 순전히 ‘수익용 부동산’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리를 통해 투자자는 그 주택들을 자산 포트폴리오의 한 부분으로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다.
(4) 마셜 k = 통화량(M2) / 명목 GDP
(5) 행정안전부가 2021.10.18.에 전국 89개 시ㆍ군ㆍ구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지방 소멸 추세를 공식화했다. 이후 5년 마다 이를 갱신하여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6) KB부동산 DB에 따르면, 2002~2024년에 서울 전체 아파트 값이 2.63배 오를 때, 강남구 2.85배, 서초구 2.81배, 그리고 송파구 2.79배의 상승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