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사고(思考)로 빚은 사고(事故)
결국 사고를 쳤다. 내 빨간 자동차 옆구리가 깊숙이도 파여버렸다.
사고가 가장 많이 난다는 운전 3~4년 차, 나도 그렇게 오만했다. 이 정도면 초보운전 티는 안 나겠거니, 생각하면서 지난 1년 간 2만 킬로미터 가까이 뛰었는데! 내 사고는 불행 중 다행히도 주차장에서 벽에 갖다 박은 걸로 마무리됐다.
하인리히 법칙이 스쳐 지나갔다. 한 개의 큰 사고가 있으려면 몇 가지 전조증상이 있다더니, 내 차에 즐겨 찾는 이들은 알고 있던 전조증상, 그런데 내가 오만해서 듣지 않았던 그 조언! '크게 돌아라'는 말에 나름 크게 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운전을 믿고 얕게 돌면서도 '나보다 느린 놈은 멍청이고, 나보다 빠른 놈은 미친놈이다' 여기며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고가 나려면 어떻게든 난다고, 그날은 참 이상하기도 했다.
늘 후면 주차를 했으면서, 갑자기 전면주차를 하겠다고 낑낑댔다. 아니다. 집에서 무거운 짐을 내린 탓이다. 그 짐 더미는 굳이 그때 혼자 내릴 필요도 없었는데, 왜 하필 그때 꼭 내려야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사 아저씨가 오면 같이 싣고 용달에 올렸으면 될 법한 무거운 짐이었는데, 왜 그걸 내 차에 싣겠다고 아등바등했는지!
아니, 더해서 거스르면 꼭 일주일 전이다. 자동차 보험 갱신을 하면서 '설마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사고가 나겠어?' 하며 자차 보험을 빼 버린 탓이다.
어찌 되었든 내 오만한 사고(思考/thaught) 때문에 사고(事故/accident)가 났다.
인간관계에서도 나는 곧잘 이런 오만한 사고로 사고를 치곤 한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거란 착각, 내 뜻이 결국 다 맞을 거란 자만, 다른 이들 생각도 나와 같을 거라는 무식함.
믿는 만큼만 보인다고, 나는 내가 상대를 믿는 만큼 그도 보여줄 거로 생각했다. 반대로 보이는 것만 믿자니, 내가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되어 괜한 편견과 오해도 생겼다. 당연히 나를 사랑하니까, 당연히 너는 늘 내 편을 들어줄 거라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해해 줄 거라고. 그런 오만으로 관계가 찌그러지거나, 파손되거나 혹은 폐차됐다.
최근에는 한 후배가 마음에 걸렸다. 다른 후배들보다 사이가 가깝지 않아서 이 친구가 혹여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또 지극히 내 주관적인 사고 탓이었다. 덜컥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부담스럽지 않겠냐 물으면 그 친구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그때 내 딴엔 잘 챙겨주는 티를 내고 싶어 그랬다. 그리고... 자동차 사고가 났다. 이 일 때문에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말하니, 후배는 이내 기다렸다는 듯 "다음에 만나요!"를 외치고 사라졌다. 내가 또 괜히 나서서 후배 마음에 사고를 칠 뻔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방어 운전'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지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사고로 여러 사고를 칠 준비를 한다. 사고를 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꼭 사고가 난다. 꼰대 같은 나와 만나길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는 후배한테 그랬듯, 어쩌면 내 지리멸렬한 사고로 다른 불편함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은 또 쪼그라들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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