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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Jan 07. 2021

장르극, 코로나19

13.  코로나, 'Possible' 과  'Probable' 의 차이 

 공포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과잉반응을 하게 된다. 자원의 적정한 분배는 평화시의 원칙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서는 어떤 비용도 생존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전쟁에서 비용을 따지지 않는 이유다. 코로나19는 이성적인 대뇌피질을 뚫고 들어가 피질에 싸인 변연계를 장악하여, 우리의 두려움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포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생존을 지켜주었지만 다른 한편 많은 비용을 지출토록 하였다. 공포가 비용의 증대를 일으키는 방식의 하나는 이론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것(Possible)을 현실적으로 있음직한 것(Probable)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이런 논쟁 중의 하나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기 전파 가능성의 문제다. 공기 전파 가능성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보균자가 배출한 ‘비말’이 공중에 남아 있느냐의 문제다. 처음에 전문가들은 공기 전파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여기에는 WHO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비말’은 단순한 일상적 용어에 가깝고, 과학은 세밀한 것이다. 비말은 다시 공기보다 작은 에어로졸로, 미세 비말(microdroplet)로 나뉘었다. 과학은 원래 발전할수록 세밀해지는 법이다. 최근에는 유체물리학’(Physics of Fluids)이 등장하여 코로나19 감염자를 좁은 복도에서 뒤따라갈 때 미치는 영향까지 연구되고 있다.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을 출 수 있을까’를 다루는 중세 유럽의 신학 논쟁을 연상시킨다. 


 논의가 보다 정치해질수록 더 ‘과학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과학만이 최종 판단자는 아니다. 정말 바이러스 입자를 ‘락앤락’ 용기처럼 차단해야 하는가의 판단이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정밀성이 필요한가에 대한 태도도 이 논쟁에 포함되어 있다. 단 하나의 바이러스가 입이나 코로 들어왔다고 당장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공기 전파도 가능하다고 본다. 좁은 밀집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밖의 많은 생활의 장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드물지 않을까? WHO는 공기 전파 가능성에 대해 ‘이 분야에서 새로 나타나는 증거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동시에 추가적인 증거와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산책로에서 마스크를 쓴 채 뛰어야 한다니 착한 시민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보통 우리는 어떤 병에 걸리면 그 병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고 말한다.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온 항원에 대하여 항체가 만들어져서 같은 항원이 다시 침입하여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렇고, 이게 정상이다. 방송에서는 재감염 사례가 발생했다고 보도한다. 재감염이라기보다는 처음 들어온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된 경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양성사례’라는 용어를 사용한 보도들도 있다. 이 표현이 더 중립적이고 두려움을 덜 준다. 


 재양성이란,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확진된 사람이 완치 판정을 받고 나중에 다시 양성 판정을 받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 검사의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 검사는 바이러스 입자를 검출하지 않고 RNA 유전자를 검출한다. 몸에 바이러스는 없지만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찌꺼기만 있어도 양성이란 결과가 나온다. 이런 경우 검체를 이용해서 바이러스를 배양해도 바이러스가 배양되지 않고, 피검사를 해보면 항체가 형성되어 있다. 


 홍콩, 벨기에, 미국 등에서 재감염 사례가 발생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확진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사례 건수가 매우 희귀하다. 그에 비하면 재양성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만 몇 백 건이 넘지만 거의 다 앞의 경우에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예외적 사례를 주목해야 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한 희귀 사례를, 현실적으로 있음직하다고 믿는 것은 로또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며 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젊은 사람들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에 걸린 젊은 사람에게 사이토카인 폭풍이 생기는 경우를 가지고 하는 말이다. 사이토카인은 우리 몸에 ‘나쁜 놈’이 들어왔을 때, 우리 몸이 초기에 이를 막아내고자 방출하는 강력한 물질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면역 반응이 너무 예민해져 오히려 우리 편을 공격하기도 한다. 열흘 넘게 갑호 비상령이 내려 피곤한 상태에서 너무나 예민해진 경찰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사람들을 범법자로 마구 잡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이토카인 현상은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사람 리노바이러스는(리노는 코를 뜻한다) 유전자가 달랑 10개밖에 안 되는 바이러스로, 2만 개의 유전자를 가진 인간 몸에 침입하여, 면역계의 허를 찔러 감기를 일으킨다. 뉴욕타임스의 칼 짐머는 ‘바이러스 행성’이란 책에서 ‘리노바이러스는 비교적 적은 수의 세포를 감염시키므로 사실상 거의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리노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온갖 고달픈 증상에 시달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감염된 세포는 사이토카인이라는 특수한 신호 분자를 분비하며, 이 분자는 주변의 면역세포를 끌어들인다.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면역세포들이다.’라고 답한다. 


 코로나19의 경우에서도 사이토카인 폭풍은 드물다. 바이러스성 질환에서는 사이토카인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드문 사례를 걱정하는 것이 사회적인 사이토카인 반응일 수 있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스스로를 공격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 사태의 일부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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