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 프란치스코 Feb 16. 2021

장르극, 코로나19

28.  풍선효과, 코로나 시대의 풍선은 타원형이다

 K-방역은 우리 사회의 장점을 잘 살린 영역이다. 감염병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빨리’다. 천천히 퍼지는 전염병은 손 쓸 여유가 있지만, 빠르게 퍼지는 전염병에서는 시간이 생명이다. 지구 상에 우리보다 더 ‘빨리빨리’ 감염자를 추적하고(Trace), 검사하고(Test), 치료할(Treat)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 월드에 영업부가 있다면 한국지사장은 아마도 회장 바이러스에게 스파이크 표면 단백질을 죄다 뽑혀, 가장 많은 변이를 겪은 바이러스로, 동시에 역사상 가장 불행한 바이러스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빨리빨리’의 대가는 혹독하다. 화장실도 못 가고, 식사도 거르고, 집에 누가 아파도 당장 달려가지 못할 수도 있다. 추운 겨울날 문 앞까지 배달된 따듯한 치킨은 누군가가 위험한 빙판 위를 오토바이로 달려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빨리빨리’는 ‘갈아 넣음’과 동의어가 된다. ‘빨리빨리’가 좋다는 것은 1인칭 소비자 시점이다. 전지적 공동체 시점에서 보면 ‘갈아 넣어야’ 하는, ‘빨리빨리’ 해야 하는 누군가는 힘들고 고달프다. 세상은 풍선과 같다. 여기가 따듯하려면 저기가 춥다. 


 브라질의 아마존은 지구의 폐라고 한다. 아마존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양한 생물종들의 서식처가 소와 콩과 댐과 도로와 광물을 위해서 그 자리를 내놓고 있다. 지구는 지금 폐렴을 앓고 있다. 다행히 아마존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나쁜 소식 가운데 그나마 나쁘지 않은 소식은 아마존 파괴 면적 증가율이 다소 낮아진 점이다. 하지만 세상은 풍선과 같다. 브라질의 세하도는 커피 브랜드 이름만이 아니다. 남미에서 아마존 다음으로 생물종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역이다. 아마존을 보호하면 다른 곳이 파괴된다. 그렇게 피해를 입은 곳이 세하도다. 아마존을 푹 누르자 세하도가 부풀어 올랐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발생하는 질병의 30%는 토지의 용도변경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숲은 소 사육장으로, 콩 재배지로 바뀌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브라질 아마존과 세하도 지역의 생태계 파괴로 인류가 미지의 병원균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힘든 일을 하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코로나 시대는 극한 직업을 또 하나 늘렸다. 코로나 병동 근무를 위해 사람이 필요한데 그냥 오라면 오지 않을 것 같아, 파견직은 인센티브로 '하루' 5만 원의 위험수당을 주겠노라고. 그러고 나니 세상은 풍선이라 여기를 부풀려놓으니 저기가 쑥 들어가 보인다. 본래 위험한 일을 하던 사람들은 본래 하던 일이라 더 주기가 어려우나, 미안한 마음에 ‘월’ 5만 원의 위험수당을 준다면. 세상은 동그란 풍선 같은 정의를 원하지만, 현실의 정의는 타원형이다.


 방호복은 방호를 목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감염 예방을 위한 매뉴얼은 행동의 자유를 규제한다. 자유가 없는 곳은 어디나 힘들다. 코로나 격리 병동 이야기다. 하지만 코로나 병동만 힘든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는 코로나 병동이 메인이라 인력을 우선 배치하고 남는 인원이 일반 병동을 맡는다. 결국 일반 병동을 맡는 인력이 부족해진다. 한 사람이 심지어 삼사십 명의 환자를 돌보는 경우까지 있다면. 코로나 병동에 차출되면 힘들어도 남들이 알아주고 어디 가서 말도 할 수 있지만,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넌 코로나 병동도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이렇게 짧은 기간에 백신을 만든 것은 인류 역사의 신기록이다. 신기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구별에 사는 한 종의 포유류가 단시간 내에 단 하나의 질병에 대하여 이렇게 많이 백신을 맞는 일도 신기록일 것이다. 다른 포유류들이 ‘얘들 왜 이래? 우리도 맞아야 해?’ 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므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 때문에 홍역 등 필수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다. 1억 가까운 사람들이 접종 시기를 놓치고 있다. 브라질의 아마존과 세하도에서만 생물종 다양성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별에서 백신 다양성도 사라져 가고 있다.    


 곧 다가올 3월 신학기부터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등교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회는 왜 아이들을 다시 학교로 부르려고 할까? 학교는 건물일까? 아이들이 굳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교육용 TV를 켜주면 되는 거 아닐까? 이제 세상은 모니터로 만나는 무엇이 아닌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이나 학교가 아니라 스크린에서 배우는 거 아닐까? 어쩌면 우리 사회는 코로나바이러스들이 제안한 대규모의 학교 안 다니기 실험 끝에 학교의 가치를 재발견했는지 모른다. 

 학교란 교과서 외에도 많은 것을 배우는 곳이라는 것을. 학교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을. 학교란 많은 것을 주고받는 공간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 가운데 착한 미생물들도 포함될지 모른다. 그러다 코로나에 감염이라도 되면 어떻게 하냐고?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풍선이다. 아이가 학교라는 여기에 없으면, 아이는 저기에 있게 된다. 감염을 예방하고자 등교를 금지하지만 학교 밖이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학교는 돌봄의 공간이다. 바이러스는 돌봄의 공간 바깥에 더 많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학교는 무서운 학주가 바이러스가 못 들어오게 ‘이놈!’ 하며 지켜주기도 하고, 키다리 교감선생님이 건널목에서 스파이크 헤어스타일을 한 코로나 일진들이 건너오지 못하게 빨간 신호등만 켜놓을 수도 있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핀셋으로 뒷목에 박힌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를 뽑아줄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백신만이 아니다. 우한을 방문한 WHO 조사단은 ‘코로나19가 동물로부터 우한 화난시장으로 퍼진 과정은 대단히 복잡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도 코로나 1인칭 시점만으로는 알 수 없는 복잡한 사정들이 있다. 전지적 공동체 시점까지는 가지 못한다 해도, 시점 다양성이 필요한 때다.

작가의 이전글 장르극, 코로나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