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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Feb 25. 2021

장르극, 코로나19

31.  코로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트럼프 시절, 하노이 북미대화가 삐끗한 이유는 따로 있다. 북미는 핵무기협상서 서로 동상이몽임을 파악하고 한판 붙기로 합의했는데 중계권 협상서 결렬, 전쟁은 없던 일이 되었다. 북한은 북한중앙통신이 중계권을 갖기로 했으나, 문제는 미국이었다. 미국 내 중계권자로 CNN이 유력해지자, 자기를 까는 CNN을 탐탁지 않게 여긴 트럼프가 중계권 문제로 전쟁 취소를 결정했다. ‘시사인’ 남문희 북한 전문기자도 몰랐을 내용으로 ‘장르극, 코로나19’서 세계 최초로 밝히는 것으로, 이 말 자체가 사실이며 이 주장의 다른 원본은 없다. 사실, 근거는 없다. 유튜브 좀 보신 분 알겠지만, 사실, 사실의 근거란 게 머 그리 중요한가.


 1991년 벌어졌던 걸프전은 최초의 문명적인 전쟁이었다. 왜냐면, 중계되었으므로. 이제 세상에는 두 가지 전쟁밖에 없다. 중계된 전쟁과 나머지들. 스포츠조차 중계되지 않으면 동네 조기축구 시합과 다를 바 없다. ‘니네, TV 나왔어?’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순간 숱한 진보 정당이 이루지 못한 평등 세상이 탄생한다. 도쿄올림픽도 유치 단계부터 막후에서 뛴 것은 덴츠라는 기업이다. 일본 주요 스포츠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수상보다 힘이 세다는 덴츠(電通)는 일본 스포츠계의 덴노(天皇)다. 중계권이란 세상을 지배하는 엑스칼리버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되어 결국 미국 주도로 벌어지게 된 걸프전은 CNN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보드리야르’란 분이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엥! 우린 다 봤는데? 오히려 중계되지 않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거 아닌가? 그럼 우리가 본 건 뭐지? 영환가? 그렇다, 영화다. 미사일의 궤적과 폭발의 섬광만을 보여주는 것은 전쟁의 참모습이 아니다. 그곳엔 절단된 사지와, 미사일 놀이 구경 나왔다 몸통이 잘려나간 이라크 어린이의 주검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실재가 사라진 세계에 살고 있다.


 인생 타이밍이다. 맞다. 인간유듀종바이러스가 촉이 좋은 것은 주로 남녀 간의 ‘썸’을 파악하는 능력이지만, 코로나는 시대를 이해하는 바이러스다. 어떤 감염병을 장르극으로 만드는, 즉 전형적인 감염병의 클리셰(Cliché)가 작동하도록 돕는 삼종 신기(三種神技)를 간파했다. 과학의 신화와, 중계는 해야 하므로 TV와, 휴대폰이란 증폭기. 바이러스를 생명의 시조새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가장 진화한, 가장 오래된 미래인지 모른다. 인간보다 더 진화했다고? 바이러스와 인간의 차이란, 달랑 창업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젊은이와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거대한 삼성그룹의 차이랄까. ‘그나마 그 아이디어는 어디 있는데? 여기 USB에 들어있죠.’ 아, 전두엽 위에 바이러스가 있다니! 과연, 일본의 잘 나가는 인재들이 모였다는 덴츠의 엑스칼리버를 무용지물로 만들지도 모를, 올림픽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바이러스. 그 중에서도 바이러스계의 덴츠라는 코로나.


 작년 7월 전 세계 과학자 239명이 코로나가 공기 전파 감염성이 높다는 공개서한을 세계보건기구에 보냈다. 코로나19가 비말 크기와 관계없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며, 호흡 때 사람들을 감염시킨다는 서한이다. ‘바보들아 코로나 비말이 공중에 떠있는데, 왜 이걸 인정하지 않아, 이건 과학이야!’ 동의한다. 그건 과학이다.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는 WHO를 융통성 없고, 느리며, 회피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비난한다. 그 과학의 뒤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창문 틈새에 테이프를 붙이고, 자동차는 절대 창문을 내려서는 안 되며,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처럼 화약이 대기 정화에 좋다는 이유로 감염예방을 위해 요새에서 십오 분마다 대포를 쏴야 할까? 보수적이고 느려 터졌다는 WHO가 공기 오염을 인정하고 세계의 모든 창문을 닫을 것을 권고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집들은 창문만 닫으면 밀폐가 될까? 가난한 사람들의 집도 그럴까? 물론 조금 덜 감염될 수는 있겠다. 과학이 최종 심급이 되는 것이 가장 명백하고 쉬운 일이지만, 동시에 가장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다. 과학은 객관적이기도 하고 때로 신화이기도 하다. 순전히 참고로, 공기오염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홍역처럼 장거리 이동을 하며 독자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지질막에 싸인 코로나바이러스 RNA처럼 우리도 갇혀 있다. 우리는 이중의 막에 싸여 있다. 하나는 코로나가 만들었지만, 또 하나의 막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막이다. 세상엔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하루 24시간이 끝날 때쯤엔 3,000명의 사람들이 전 세계의 도로에서 아차 하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고 썼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가 달리는 도로로 나설 것이다. 어떻게 해서 코로나는 세상의 많은 위험 중에 오직 이것만을 두려워하기로 인간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았을까? 


 코로나가 끝난 뒤 우리는 SNS에서 세상의 두려움이 끝났다고 메시지를 보낸 뒤, 퇴근하듯이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결핵과 말라리아가 아직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죽이는 세상에서, 그건 너희들의 질병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어쩌나, 우리의 피부에만도 1조 개의 미생물들이 우글거린다. 흙을 만지고 노는 아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두려움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미생물 지옥이다. 근대적 봉쇄는 있지만 탈근대적 공존은 없는 것일까.  


 사실 팬데믹이라고 하는 것은, 질병의 심각성이나 사회적 영향도 살피지만, 기본적으로 치명률이 아니라, 전파력이 기준이다. 앞의 말처럼 WHO가 느려 터져서 팬데믹 선언이 늦었다고 비난이 쇄도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나의 두려움에 WHO가 빨리 동참하지 않은 원망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어서, 예전보다 더 오래 살게 되면서 폐렴 유발자들에 취약한 것일 수 있다. 코로나 희생자의 절반이 80대에서 나오는 이 상황은 인류 역사상, 바이러스들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바이러스들도 당황했을 수 있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TV 뉴스 시간에 국가물류센터로 첫 출하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들어가는 장면이 보도된다. 호송 차량이 붙고,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영화의 장면이다. 보이지 않게 드론이나 전자감시로 입고되는 장면은 비록 더 안전하다 할지라도 실제의 장면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화물차 한 대가 물류창고로 쓱 들어가는 장면은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와 맞지 않다. 


 우리 사회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말이 오히려 환상일지 모른다. 한국은 아직도 코로나 양성률이 1%라니. 100명 중 한 명이란 뜻이다. 백신 꼭 맞아야 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지금 이 한국사회가 소설보다 낯선 세계일지 모른다. ‘코로나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의 전제는 실제의 코로나가 있고, 상상의 코로나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니다. 이 둘이 하나였다. 이중막이 아니고 단일막이다.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 아닐까? 돌아가신 분들은 대부분 자연사에 가까울지 모르고, 그 숫자도 한 해만 따지면 결핵 사망자보다 적은 거 아닌가. 그냥 우리가 목격한 우리 사회의 이 세계가, 이 실재가 영화를 닮았고 허구를 압도할 뿐이다. 비눗방울처럼 얇지만 우리를 가두고 있는 어떤 허구에 갇혀 있다 생각했는데, 이 거대한 모라토리엄의 삶, 유예된 삶, 대기실의 삶이 실제의 삶이었다. 남을 모방하며 집단 전체가 한없이 동질화되어가는 것에 깊은 희열을 느끼는 인간들이라고 떠들든 말든 우리는 또 한 번 1등을 한 것 같다. K-방역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결이 다른. 성과라고 좋아하기에는 피곤하고 두려운.


 코로나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갇혀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손잡이가 없는 문에 갇혀있다. 어깨로 툭 밀면 열릴 수도 있는데,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려는 마음이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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