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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하게 가자

by 짱강이


병원 의자에 앉았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 정말이지 지겹고 사랑스러운 그녀. 오늘도 이렇게 뵙네요. 우연도 참. 하하. 근데 실례지만 어떤 의사셨죠? 저런... 내 질문에 진심으로 동요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갸륵한 안쓰러움이 배어 나온다... 의사 가운이 참 잘 어울리셔. 근데 저거 어디서 사서 입을 수 있는 거지? 나도 사 입고 싶다.. ...정신병원요. 네? 정신병원 의사입니다. 오, 제가 그런 병원도 다녔군요 하하. 근데 정신병원에 가려면 보통 어디가 아파야 하나요? 정신병자여야 합니다. 정신병자요? 무슨 고사성어 같아요 꺄르르꺄르르. 그럼 정신병자들은 어디가 아픈 이들인가요? 이내 의사의 눈빛이 돌아온다. 오, 저 도회적이면서 경멸에 가득찬 회기 도는 눈빛. 우리 어디서 많이 봤었죠? 대부분은 정신이 아프죠. 정신은 어디인가요? 마음이요. 마음이면 가슴이요? 네. 가슴이면, 심장이 있는 곳 아닌가요?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전 그럼 심장병 환자인 건가요? 네. 다른 정신병자 님들도요? 좋을 대로. 그럼 여기 심장도 잘 고치나요? 네. 전 어디가 문제예요? 전신이 문제입니다. 그게 뭐예요? 몸 전체요. 얼마나요? 아주 심각합니다. 정신병 말기예요. 심장에 써져 있지 않은 관계로, 객관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 심각한 정신병이 온몸 구석구석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제일 추천되는 건 죽음입니다. 그냥 죽으세요. 어떻게요? 좋을 대로. 여기 심장 잘 고친다면서요. 그랬죠. 그럼 다른 정신병자 님들처럼 치료해 주세요. 죽는 건 귀찮아요. 저런! 그럼 그 방법밖엔 없겠네요. 무슨 방법이요? 뇌를 꺼내서 박박 닦아야 해요. 지금 환자 분 상태의 뇌로는 도저히 상담도 안 됩니다. 김 간호사, 6번 병실로 들어와요. 당장 결박하고 TISB 수술을 시작하도록 도와줘요. 알겠습니다. 와! 저에게도 답은 있었군요! 정말 기뻐요! 근데 그 수술은 무엇의 약자죠? 약과 먹고 싶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김간은 재빨리 내 몸을 어딘가에 묶어 버리고, 정을 쳤다. 시끄러워요. 뻑. 와. 뻑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뻑간다는 건 정말 좋은 거구나. 정말 행복해요. 야호! 새까만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내 머리엔 붕대가 감겨 있었고, 그 붕대는 이미 피를 머금고 있었다. 히히. 붕대가 생리대 같아요. 내 머리통도 생리를 하나 봐. 피분수라는 단어 좋지 않아요? 피분수, 피분수, 피분수, 피분수, 피분수, 아 너무 많이 말했다. 이상하게 들려! 의사들은 역시 대단해요. 그쵸? 어떻게 이런 수술을 하지?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무슨 설명도 없이 나 모르게 했어요. 제가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울 정도라니까요. 시끄러 주둥이 좀 다물어! 같은 디자인의 다른 침대에 누워 있던 할머니가 큰 반응을 보였다. 김복자/ 79/ 금식 O. 나는 그녀의 신상을 알아냈다. 김복자! 영의정이 왕의 이름이라도 부른 듯, 그녀는 한참을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두 시끄러! 그니까 같이 떠들자! 깔깔. 그녀의 얼굴에 회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 얼굴도 저런 색일까. 근데 나는 노말한 인간이 아닌데, 저런 색깔이 나올 수 있나? 나오면 재밌겠다. 노말한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냥 파라노말 액티비티나 본 여자가 됐지. 김복자는 노말한 여자. 나는 그냥 파라노말 액티비티 본 여자. 그래서인지 김복자는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등을 돌려 벽을 보고 눕는다. 꽤 친해진 것 같아. 귀엽고 노말한 인간. 복자는 어디가 아파요? 이번엔 이불까지 덮으시네. 더운데 뭐하러 머리 끝까지 덮지. 나는 한겨울에도 저러면 덥던데. 노말한 인간은 신기하다.

링거 줄은 너무 답답해. 세상에! 이게 몇 개야? 아니, 얼마야? 나 돈 없는데, 그럼 평생 이 병원에서 살다 죽을 수 있는 건가? 재미있겠다! 강제로 뽑힌 링거는 피칠갑, 지랄맞은 고무 호스처럼 병실 바닥을 휘저으며 영양을 뿌린다. 아깝다. 멈춰 놓고 이따 와서 마셔야겠어. 샤워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TV도 있고! 여기 진짜 근사한데? 게스트 하우스 같아! 건강까지 책임져 주는 게스트 하우스. 진짜 최고다. 세상 좋아졌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일단 붕대에 감긴 이 머리가 너무 간지럽고 답답해. 그리고 피가 굳어서인지 더 찝찝해. 붕대를 풀어야지. 머리도 벅벅 좀 긁어야지. 안 돼요! 김간이 소리치며 들어왔다. 왜요? 수술해서 당분간은 머리에 물 묻으면 안 돼요. 특히 수술한 곳은요. 왜요? 수술을 했으니까요. 왜요? 수술을 했으니까요. 왜요? 갈갈이 찢은 다음에 다시 바늘로 한땀한땀 마무리해 놓은 거니까요. 왜요? 한땀한땀 꿴 옷들도 막 세탁기에 넣어서 탈탈탈 돌려 버리던데요? 피부는 옷과 달라요. 왜요? .... 김간은 또 나를 경멸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나가 버렸다. 아, 맞다맞다, 질문. 저기요! 저 소주 좀 마셔도 돼요? 안 돼요! 그럼 소맥 마실게요! 그것도 절대 안 돼요! 코너로 사라진 김간. 어차피 술은 준비돼 있으니 그냥 마시면 된다. 그냥 안 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게 안 된다는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지. 다들 은근히 어리광쟁이란 말야. 샤워도 하고 술도 마셔야지. 여기 게스트 하우스 경치가 끝내줘. 못 나갈 바엔 뽕이라도 뽑고 가자. 노래도 좀 듣고. 그래그래. 역시 난 환장하게 노말한 여자야. 환장하게 파라노말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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