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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Mar 10. 2021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될까? 제주로운 날들의 시작

(구)강남러의 제주살이를 기록합니다.



"젊은 분들이 이 시골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집을 구하러 찾은 부동산에서 건넨 첫마디.

엇,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곳이 그렇게까지 시골인 줄 모르고 왔다. 오히려 이 말을 듣고 '여기가 그렇게까지 시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 역삼에서 신혼생활을 했던 우리가 늘 했던 말은 '회사만 아니면 강남에 안 살 텐데!'였다. 혼자도 아니고 부부가 둘 다 걸어서 10분 거리 직장에 다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축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료들은 인천에서도, 의정부에서도, 일산에서도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극복하며 다니는 것을 보면 그저 감사히 다닐 수밖에.


주중에는 대부분 회사와 집만 오가는 동선이기에 꽤 만족스러웠다. 퇴근하고 10분만 걸으면 집에 닿기에 남들보다 저녁이 긴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이놈에 회사 근처는 너-무 싫은 거다. 특히 회사 건물은 일대에서도 가장 높고 뾰족한 건물이었는데, 주말에도 고개만 빼꼼하면 회사 건물이 보이는 것이 그렇게 꼴배기 싫을 수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대로변에는 높고 번듯한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그 뒤편으로는 식당가와 술집이 번창해 시끌시끌한 이 곳은 도무지 정이 들기 쉽지 않았다.


그런 곳에 살던 우리가 세계 여행을 떠났고, 그 후 선택한 보금자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딴섬인 <제주>

드디어 '회사만 아니면 강남에 안 살 텐데!'라는 말을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제주에 와서 고른 동네는 부동산 아저씨 말처럼 그렇게까지 시골이더라.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동네를 보고 고른 것이 아니고, 집을 보고 고른 것이기에 동네에 대한 사전 조사는 없이 온 것이 맞다. 제주에서 수십 개의 집을 보았고, 그중 맘에 드는 집을 발견했고, 그 동네를 둘러보니 소박하고 제주스러웠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익숙했던 강남러에게는 충격적 이리만큼 한적함이 가득한 동네였다.


도시는 도시대로의 맛이 있지만, 시골은 또 시골대로의 맛이 있었다. 일단 근처 수십 개의 오름은 좋은 산책 코스가 되어 준다. (제주 어린이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름에 간다던데,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뿐 아니라 단 10분 거리면 바닷가에 닿는다. 바다를 보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혹시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바다를 보며 답답함을 풀어야지 싶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오름이면 오름.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데로 골라갈 수 있다니! 혹여나 이것도 살짝 부족하다 싶다면 계절마다 바뀌는 꽃이 채워줄 것이다. 겨울에 빛을 발하는 진분홍의 동백, 동백이 지고 나니 피는 하얀 매화, 그리고 인생 샷 메이커인 노란 유채까지 그저 거닐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겨울을 알리는 동백과 봄을 알리는 유채꽃. 꽃으로 제주의 계절을 만난다.



특히 집 구할 때 채광에 집착하는 나에게, 날 것 그대로의 자연광은 하루를 설레게 한다. 건물의 가림막 없이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테라스에서 빨래를 탁탁 털어 널 때는 기분이 그렇게 좋다. 마른 빨래를 갤 때도 햇빛 가득 머금은 뽀송함이 그대로 느껴져 행복하다. 내가 이렇게 빨래를 좋아했던 사람인가? 갑자기 헷갈려진다.


해 질 녘 물든 노을도,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새소리도 뭐 좋은 점을 굳이 꼽기가 어렵게 사실은 그냥 다 좋은 제주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불편한 점은?

물론 불편한 점도 많다. 일단 차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물론 시내 쪽은 버스가 잘 되어 있지만, 시골 쪽으로 들어온다면 차는 필수이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우리 집은 편의점 갈 때도 차를 타야 한다는 사실.


쓰레기를 집 앞에 버리지 않는 것도 꽤 충격적이었다. (이것은 시골이어서가 아니라 제주라서 그렇다.) 클린하우스라는 이름의 정해진 곳에 가지고 가서 버려야 한다. 음식물쓰레기는 봉투가 아닌 전용 기계에 넣어야 하는 점도 신선했다. 쓰레기까지는 친환경도시를 지향하는 시스템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가장 아쉬운 점은 추가 배송비이다. 제주에 산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적게는 2천 원, 많게는 8천 원까지도 붙는 추가 배송비 덕에 인터넷 쇼핑 여왕이던 나의 소비가 확 줄었다. 뭐 돈을 덜 쓰니 사실은 좋은 점이네.






이렇게 살면 불편하지 않냐고?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이 불편함을 모두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자연이 아침마다 우리를 맞이해준다. 내가 꿈꾸었던 너른 마당이 있고, 손님이 조용히 쉬고 갈 게스트룸이 있고, 커피를 절로 부르는 자연광 테라스가 있는 제주집은 오랫동안 보금자리였던 강남집을 싹 잊게 만든다.


테라스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우리집은 제주에 살아봐야 할 이유를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의 제주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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