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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Jan 26. 2021

38만 원짜리 퇴사 선물

발리행 '편도' 티켓




나는 대한민국에서 항공권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매일 오전 신문의 헤드라인을 살피 듯, 나는 매일 오전 경쟁사의 항공권 요금을 모니터링했다. 그리곤 내가 관리하는 채널의 요금을 최저가로 맞추는 작업을 한다. 여행사에서 나오는 특가 소식은 누구보다 빨리 알 수 있었고, 항공사와 단독특가를 협의하고 프로모션 하는 것은 가장 자신 있는 일이었다.


우리 이렇게 싸요. 그러니까 여행 좀 갈래요? 하고 부추기는 역할을 한지 햇수로는 9년. 특가가 나오면 알려달라는 알람을 신청하는 지인은 늘어갔다. 그들을 누구보다 싸게 바다 건너편으로 보낼 수 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다 보니 행여 누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티켓을 산 것을 알게 되면 내 돈인 양 안타까워했다.


그런 나이기에 내 티켓을 살 때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요금 모니터링 용도가 아닌, 지극히 사적인 나의 편도 티켓을 검색한다. 고민 끝에 정한 목적지는 발리. 돌아오는 곳은 인천이 아니라 ‘알 수 없음’이다.


그런데 이것 보자, 인천에서 발리 덴파사 공항까지 왕복은 64만 원인데, 편도는 38만 원이라고?! 똑같은 거리를 가는 건데 칼 같이 반으로 나눠서 32만 원이어야 하는 것 아니야? 게다가 60만 원 이상이면 3만 원까지 할인되는 쿠폰이 있는데, 편도는 고작 1만 원 할인이라니. 보통 때 같으면 이건 좀 억울하지 않냐며 옆 동료에게 주저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비싸도 편도여야만 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왕복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동안 왕복이라는 굴레는 꽤 컸다. 금요일 퇴근 후 떠났다가 월요일 출근 전 새벽에 도착하는 밤도깨비 항공권을 한 번이라도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5년 만근하면 받는 한 달간의 안식휴가로 남미까지 떠났을때도 아쉬움에 출근 바로 전날 밤 인천에 도착하기도 했다.


그만큼 도착일에 쪼이는 사람이 직장인인데, 38만 원이면 어떻고 48만 원이면 어떠하리. 내가 가진 것이 편도 항공권인데! 여러분 저 편도 항공권 샀어요! 하고 동네방네 알리고 싶을 정도로 편도라는 이름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편도 항공권을 사게 된 이유


퇴사라는 마음을 조금씩 키워나갈 때 남편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같이 퇴사하고 세계여행 가는 거 어때? 난 이왕 퇴사하는 김에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데... "


보통의 남편이라면 그럼 돈은 누가 버느냐, 너무 낭만 속에 사는 것 아니냐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 내 남편다웠다.


"그래, 뭐 잠깐 쉰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어차피 나중에 아이 생기면 못할 텐데 이왕 쉬는 김에 하고 싶은 거 다 하지 뭐. "


어떻게 이렇게까지 내 맘 같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부부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뼛속까지 긍정적인 그가 고마웠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의 방향은 확고해졌다. 돌아온 후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우리는 그동안 일한 경력이 어디 가겠냐며 자신감이 넘쳤다. 이상하게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100년 인생에서 잠시 방학을 가지는 건데 뭐 어때!

나중에 돌아봤을 때 티도 안 날 거야.


그렇게 6개월이 될지 1년이 모르는 시간을 우리만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이다. 꼬부랑 할무니, 할부지가 되었을 때 같이 곱씹을만한 강력한 건수 하나 만들어보자며.


나는 그렇게 발리 가는 편도 티켓을 2인으로 발권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요,


세계여행과 발리행 티켓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앞으로 글의 내용은 세계여행 다니는 이야기이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물론 여행이라는 큰 배경에서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여행이 아예 배제될 수는 없지만)


편도 항공권이 의미하는 것은 돌아오는 날짜도, 도착지도 정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인연을 만날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앞으로의 이야기는 발리행 편도 티켓이 인도한  '세계 속의 인연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눈물나도록 따뜻한 기억도 있고, 머리 끝까지 분노했던 기억도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도 언제가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그저 테헤란로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우리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떤 인연을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인연의 첫 단추, 발리



<해당 글은 코로나19 발생하기 이전, 2019 7월의 이야기임을 참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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