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덜어주고 가세요.
공연을 끝내고 ‘막이 내렸다’ 라는 구절로 글을 시작하는건 조금 식상합니다.
지난 시간의 노력들은 대사로, 빛으로, 소리로
제 모습을 바꾸어 극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 모습을 스스로 바꾸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저릿 저릿한 고통이 동반합니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아닌데, 꿋꿋하게 두 발 딛고 서 있던건,
연극이 좋아서 였을까요,
사람이 좋아서였나요,
아니면 막중한 책임감이었나요,
하지만, 저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각자가 각자만큼 책임감을 가졌을 것이고,
각자만큼 좋아했을 것이고,
각자의 부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구도 빈 곳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제일 미안했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구절도 참 식상하지만,
그럼에도 고마웠던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빈 칸으로 놔둬야 할까요,
뭔지 알면서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뭐라 할 지 몰라서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내 마음을 알기도 어렵지만,
상대의 마음은 함부로 유추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 곳을 뭐라고 채워넣기 보다는
빈 칸 그대로 놔두고 싶습니다.
당신이,
공연을 함께했던,
소중했던 당신이,
이 글을 읽어준다면,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 빈 칸을 채워주세요.
당신이 느꼈던 감정을 이 빈 칸에 조금 덜어두고 가주세요.
각자의 빈 칸이 각자의 감정으로 채워지다보면
그래서 오색 빛깔이 빈 칸 속에서 뿜어 나오면
그것이 새로운 무대를 비출 조명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의 진심이 여기 있어서,
이렇게 영광인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진심이 모여 여기 있다면
바보라고 불려도 나쁘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