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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Jul 02. 2021

연극 이야기 5_ 240 245를 보고나서

경계를 넘나들 수 있나요?

7/2

두 번째 연극

240 245/신촌극장/박은호 연출


가지고 있던 신발이 찢기고 색이 바래

새 신발을 사러 갔었다

딱 마음에 드는 신발이 있어서 사이즈를 부탁드렸으나

285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 신발이었다

내 발은 280을 신기는 크고, 285면 어느정도 맞고, 290에는 작은 애매모호한 발이다.

280과 285 사이 어딘가에 내 발이 있는데 지정된 사이즈에 내 발을 맞출 수 없었다.


지정된 지점, 지점과 지점의 사이, 지점으로 가까워질수록 밀려나게 되는 이상한 힘 속에 경계가 있다.

경계를 만들고, 경계를 넘으려고 노력하고,

그러다가 훌쩍 넘을 수 있는데,

막상 넘으려고 하니 이 경계 너머의 것들이 내가 원했던 것일까, 아니 애초에 경계는 존재했을까,

온갖 의문을 뒤집어쓰고 헤매다가 다시 명확히 인식하게 되는 이상한 힘 속에 경계가 있다.


이 선을 넘지 않으면 나는 헤테로고,

넘게 되면 오롯이 퀴어일 뿐인가.

내 안에는 규범적 헤테로의 마음도 존재하고,

뭐라고 규정되기 싫은 퀴어의 마음도 존재하는데,

그래서 규범왕이자 때때로는 퀴어 전사로 변모하기도 하는데.


이 경계를 넘으면 나는 규범왕으로서 나를 완전히 부정하고, 퀴어전사의 마음만 긍정할 수 있을까

다시 경계 안으로 돌아오면 정상적 규범왕으로서 마음만 긍정하고 퀴어한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는가.

부정하고 파괴하고 미워하고 쓰라려했던 나로부터,

날 것의 욕망을 받아들이고

“맞아요, 나 원해요” 라고 말할 용기가 있을까

나의 모든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고 싶은데.


맞아요, 나 원해요

격하게 원하는데 숨기고 있는 거예요.

경계가 있는지, 내가 경계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그 위에 서 있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나는 서 있습니다.

걷고, 뛰고, 달리고, 지치고, 다시 걷고, 달려서,

여기 서 있습니다.


280인지 285인지 모를 내 발.

내 발은 하나의 단위이고

그 자체로 역사입니다.

더 이상 나의 발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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