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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Jan 08. 2024

길 위에서 만난 천사들(Camino Angels)

D+65 북쪽길 24일 차

✔️루트 : Llanes - Piñeres de Pría (약 22km)

✔️걸은 시간 : 6시간 17분







이 분은 게임을 하시는 행인이 아닙니다... 잔돈을 거슬러 주시려는 카페 주인 분 ㅋㅋ
모닝커피 :)
그리고... 길바닥에서 아침 식사!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오믈렛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파는 곳이 없었다. 큰일 났다 생각하며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다행히 마을 끝무렵에 슈퍼가 있어 먹을 것을 구할 수 잇었다. 순례길 위에서 슈퍼에서 쇼핑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에 꽤나 까다롭다. 가격 대비 영양가, 영양가 대비 포만감, 포만감 대비 무게, 특히 무게가 중요한데 사자마자 바로 내 배낭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너무 무거워도 안 되고, 금방 상하는 음식이어도 안 된다. 그렇기에 까다롭게 고르는 것에 비해 사는 것은 매번 똑같다. 포만감이 좋은 바나나, 변비용 요거트, 가장 저렴하고 가벼운 빵, 견과류 등이다. 오늘은 특별히 배가 고팠기에 요거트 통에 담기 신선치즈를 사보았다. 간편하게 먹기에 좋았다. 슈퍼에서 나오자마자 길 건너 도보에 앉아 아침을 때웠다. 







어제 해안길을 걸으며 절경에 황홀한 경험을 했기에 오늘도 해안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해안길은 계속 걸어도 비슷한 듯하면서 또 다르게 아름다웠다. 풍경이 좋은 절벽이 보일 때마다 잠시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어제 바닷가에서 노느라 별로 걷기 못 했기에 오늘은 조금 더 걸어 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다의 요정의 유혹에 홀린 것처럼 Playa de Borizo라는 예쁜 해변이 내 발목이 잡혔다. 




맑게 반짝이는 바닷물과 바다 반대편 하늘로 높게 솥은 산새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내가 순례 중이라는 것을 잠시 깜박했다. 물에서 나오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어 있었다. 물놀이를 실컷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탄산음료를 한 잔 마시러 들린 카페에서 어떤 부부가 먹고 있는 생선 요리가 맛있어 보여 Menu del Dia를 먹고 가기로 했다. 블랙빈 요리와 생선 튀김을 시켰다.





와… 너무 맛있어. 무슨 일이지? 




디저트는 치즈케이크를 시켰는데, 와… 이렇게 꾸덕하고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먹어 본 적이 있던가? 하는 센세이션 한 존맛탱이었다.



그저께 Cantabria 지방에서 Asturias 지방으로 넘어왔다. 어제저녁에 먹은 음식이 맛있던 게 식당 운이 좋았던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 음식까지 맛있으니 우리나라의 '전주'처럼 Asturias가  음식으로 유명한 지방인가 싶었다.



다시 걷기 위해 배낭을 메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할아버지 무리가 얼마나 더 걸을 예정이냐고 물었다. 나는 두 손바닥을 하늘로 크게 들어 올리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지만 두 달 정도 걷다 보니 언어 대신 텔레파시 능력이 는 것 같다.)  



‘이 동네에도 알베르게가 하나가 있고, 7km 정도 더 걸으면 또 하나가 있어’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더 걷는다고 하니 걱정되셨나 보다. 그들이 보여준 숙소가 비싼 호텔인 것 같아 적당히 고맙다고 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내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는지 영어를 할 수 있는 종업원에게 번역을 맡기면서까지 나에게 정보를 주시려고 노력하셨다.
 나는 비싼 곳은 가지 못 한다고 이야기했고 갑자기 할아버지들과 식당의 모든 종업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갈 수 있는 숙소 찾아주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스페인어로 ‘거기에도 순례자 숙소 있지 않아?’ ‘거기는 너무 비싸’라는 대화를 이어가더니 심지어 숙소에 전화를 해서 가격과 예약 가능여부를 물어봐 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열정에 순례길 어플에 해당 정보가 잘 정리되어있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결국 카페 주인 분이 내가 갈 수 있는 알베르게 하나를 찾아주셨고 10시 마감이니 쉬지 말고 걸으라고 하셨다. 16km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나는 ‘문제없어!’라고 대답하고 감사 인사를 한 후 식당에서 나왔다.




걷는데 발이 아팠다. 그럼에도 컨디션이 괜찮았고 하늘이 예뻐서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9시가 넘어가니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는데 언덕 위 성당 하나가 노을과 함께 아름답게 솓아있었다. 걷다 보니 내가 묵기로 한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성당이었다.


알베르게에 가기 위해서는 언덕을 올라야 했는데 그냥 잔디밭을 걸어 올라가니 알베르게 관리자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나와! 길로 올라가!‘



말은 못 알아 들어도 저게 그냥 크게 말하는 건지, 짜증이 섞인 호통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 경우에는 후자였다.




언덕에 오르자 알베르게 관리자가 시계를 또 톡톡 쳤다. 늦었다는 뜻이었다. 관리자는 퉁명스럽게 구글 번역기에 무슨 말을 하더니 화면을 나에게 보여줬다.



'찬물로 샤워하기 싫으면 5분 내로 샤워해야 해'



9시 55분이었다. 그는 침실로 안내할 때까지 엄청 퉁명스러웠는데 나는 미소와 함께 그를 안으며 '고마워. 좋은 밤 보내' 라고 말했다. 정말 신기하게 절대 안 웃을 것 같은 그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미소와 포옹은 정말 큰 마법인 것 같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샤워를 하러 갔다. 오래된 건물인 것에 비해 샤워실은 꽤 좋았다. 뜨거운 물도 잘 나왔는데 진짜 10시 정각이 되자마자 찬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김에 찬물에 아픈 발을 식혔다. 다행히 넓은 방에는 아무도 없어서 편안하게 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 너머의 하늘 높이 솓은 아름다운 산맥은 알프스를 연상시켰다. 방의 작은 창문으로 노을 묻은 산을 한번 더 눈에 담은 후 침대에 누웠다. 카미노 엔절들 덕분에 무사히 좋은 알베르게에 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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