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우유부단-맨(Man)에겐 어쩐지 체 게바라의 혁명적 선언같이 느껴진다. 때론 단호함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것이 비록 진정한 문제의 해결은 아닐지라도 일단 상황을 매듭지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액션(Action)'은 그런 것이다. 특히 자극과 반응의 견지에서 나처럼 지나치게 민감한 DNA를장착하고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두고 거기에 너무 많은 사고와 상상과 정서와 감정들을 쏟아붓곤 한다. 이것도 일종의 병이라면 병이고, 만약 병이라면 절대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쾃은 거기에 맞춰 처방된 거대한 주삿바늘과 같다. 어! 어! 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냅다 한방 꽂아 들면 정신이 번쩍하고 돌아온다.
돌아보면 나는 20대와 30대를 너무 허여멀건 정체성으로 둥둥 부유해 왔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후회되는 것은 세상의 불편과 부당 앞에 너무 쉽게 굴복했다는 것. 어느 시기엔 나를 지우는 것이 너무 잘 연마되어 마치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 된 착각마저 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시기에 내가 조직에서 가장 잘 나갔다는 점이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일이 수반되는 부서에는 소위 좋은 인력들이 채워진다. 하지만 이 '좋음'의 이면에는 어떤 일을 맡겨도 절대 배신하거나 고발하거나 저항하지 않을 안전한 인간이라는 점도 수반되어 있다. 내 자각에 의하면 이것은 '능력'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는 한 인간일 뿐이란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아마 그 시기에 나도 그런 인간으로 분류되었을 거다. 좋은 부서들을 돌아다녔으니까. 나는 애써 '돈이나 벌고 상사로부터 인정받으면 그게 다가 아닌가' 스스로를 위안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체제에 순응적이고 밋밋한, 나약한 인간이라니' 이러한 자각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수동적이고 방관적 삶이 편할 순 있어도 나는 무력감이라는 비싼 정서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것은 점차 나를 망쳐가기 시작했고, 그래도 직장을 때려치울 용기는 없으니 뭔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기호와 취향의 시대에 걸맞게 나도 좀 유니크한 인간으로 발전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우연찮게 한 사람을 만났다. 내 메시아는 1세대 크로스핏터였다. K특공이라는.
(1세대 크로스핏 ABC코치 K특공님)
지금은 유튜브 채널로 옮겨갔지만 당시엔 다음 카페에 자신의 스쾃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의 영상을 처음 봤던 날, 나는 온몸으로 속죄하듯 나의 유약함 대해 깊이 반성했다. 그만큼 그의 스쾃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여타 다른 운동 영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건 무더위가 작열하는 어느 여름 같기도 하고, 찬 공기가 폐부를 찌르는 혹한의 겨울 같기도 했다. 왜 그런 착각이 들었냐면 어느 날은 매미가 쨍쨍 울어대는데 그가 바벨을 짊어지고 나와 자세를 가다듬으며 거친 시멘트 바닥을 비빌 때, 그 셋업 자세에서 나오는 역도화의 마찰 소리가 찬 겨울의 그것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그 거칠고 메마른 소리는 너무나생생해서 이상하게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비겁한 변명이나 비벼 끄던 내 꽁초 같은 인생에 쯧쯧 혀를 차는 소리 같았다. 그는 날렵하고 단단한 체형을 갖추고 고중량 훈련을 주로 수행하는 듯했다. 가령 그는 3×3 스쾃을 계속해서 무게를 올려가며 진행하곤 했다. 고중량 훈련이다 보니 그의 스쾃은 매번 한계치를 오르락 내리락했다. 로우바 스쾃으로 바텀까지 풀로 내려갔다 중력값과 근력값이 팽팽히 대치되어 올라오는 중간에 잠시 '멈춤' 되는 순간에는 행여 '리프트가 실패할까 봐' 보는 내가 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의 스쾃은 정말 간당간당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죽기 살기로 한 회를 마치고 비로소 탑 자세에서만 단지 짧고 굵게 '츠읍'하고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는 정말 셧업(Shut Up)한 인물이었다. 카메라 사각에서 묵묵히 걸어 들어가 끝내주는 스쾃을 한 세트 진행하곤 다시 카메라 사각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주위엔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시원한 냉방이나 경쾌한 음악, 고급진 헬스기구나 반짝이는 덤벨은커녕 주위에 텀블러 물 한잔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빗물이 줄줄 새어 내릴 것 같은 낡은 옥상 바닥에 랙하나 세워 놓고 대회 일정인 듯한 현수막을 마주하고 고독하게 온몸으로 스쾃을 진행할 뿐이었다. 유약한 자기 위로나 번뇌 따위는 아마도 평생 그의 곁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육사 시인의 <절정> 속 한 구절'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처럼 아름웠다. 건물 아래선 시끄런 자동차 경적소리가 올라오고, 도시의 소음과 쨍한 햇빛이 뒤섞인 광야 같은 옥상에서 그는 홀로 웨이트와 싸우고 있었다. 나는 즉시 그에게 매료됐다.
K팝이니 K방역이니 아직 K자 뒤에 뭐가 따라붙는 게 별로 없었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11년 전쯤부터그는 이미 자기 닉네임 앞에 K자를 붙이고 삶을 전진시키고 있었다. 그의 영상은 내게 어마어마한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나는 곧장 그 길로 달려가헬스장 회원권을 끊었다. 그리고 그의 영상과 함께 스쾃을 배워나갔다. 테크닉보다 그 정신과 근성을 배워 나갔다. 아마도 내 운동의 근본이 형성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일 것이다. 웨이트를 짊어지고 걸어 나오면 그의 측면 종아리 비복근과 가자미근이 부챗살처럼 상하로 길게 갈라지곤 했는데, 그것을 볼 땐 내 손아귀에도 왠지 힘이 꽉 들어가곤 했다. 도저히 나약과 안락에 안주할 수가 없었다.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지 않으면 내가 당장어떻게 될지도 모를 것 같은 벅찬 가슴의 두근거림이 몰려왔다. 기죽지 말라고, 아가리는 닫고 그냥 주저 앉았다 일어나면 그만이라고. 그의 빛나는 스쾃은 내 인생 전체를 관통했다.
※ 그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저 옛날의 영상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난 이 글을 쓰기 위해 온 포털을 뒤지고 뒤져 저 위의 영상 하나를 마침내 찾아냈다. 당신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