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오이 Mar 26. 2024

한 권의 밤

아내가 책장을 넘기는 밤이면 곁에 누워 책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밤은 어쩐지 둘인 듯 혼자인 듯한 밤이 되곤 합니다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밤 말입니다


차악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는

때론 밤을 찢는 소리 같습니다

날카롭게 찢기는 틈사이로

차악 저녁 세숫물을 뿌리던

유년의 밤과 노동과 그리고 뒷마당들이 들어옵니다


아버지와

엄마와

동생이,

세숫대야 같은 한 방을 쓰던 그때에는 책 같은 건 읽지 않았지요

우리끼리 그냥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었으니까

우리가 우리를 읽을 필요는 없었지요

이야기가 찢길 일 같은 건 생각지 않았습니다

두터운 하루를 덮고 곤히 잠들 뿐이었죠


그래서 아내가 책을 읽는 밤이 오면

차악차악 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밤이 오면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차가운지 알 것 같습니다

아내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만나고

나는 헤어진   몸들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정부 공모사업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