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책장을 넘기는 밤이면 곁에 누워 책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밤은 어쩐지 둘인 듯 혼자인 듯한 밤이 되곤 합니다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밤 말입니다
차악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는
때론 밤을 찢는 소리 같습니다
날카롭게 찢기는 틈사이로
차악 저녁 세숫물을 뿌리던
유년의 밤과 노동과 그리고 뒷마당들이 들어옵니다
아버지와
엄마와
동생이,
세숫대야 같은 한 방을 쓰던 그때에는 책 같은 건 읽지 않았지요
우리끼리 그냥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었으니까
우리가 우리를 읽을 필요는 없었지요
이야기가 찢길 일 같은 건 생각지 않았습니다
두터운 하루를 덮고 곤히 잠들 뿐이었죠
그래서 아내가 책을 읽는 밤이 오면
차악차악 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밤이 오면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차가운지 알 것 같습니다
아내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만나고
나는 헤어진 한 권의 몸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