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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7월의 시

by 책방별곡

그녀는 평생 글보다 밥 짓는 데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시가 자라고 있었다.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다 불쑥 떠오른 한 줄,
베란다에 이불을 널며 적은 참새 울음 같은 문장들.
그것들을 수첩 한쪽에 눌러쓰다 말다 어느새 일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녀는 이번 여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햇빛이 거칠게 쏟아지는 오후 그녀는 휴대폰 노트 앱에 시를 썼다. 키보드로 천천히 눌러쓴 단단한 문장들.
7월의 생명들은 과하게 치열하다 / 그 생애가 짧은 줄 누가 모를까...

그리고 그 시를 딸에게 조심스레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엄마, 이 시... 정말 좋다. 계속 써서 시집 내보자. 내가 도와드릴게.”
딸의 말 한마디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이 나이에 무슨... 됐다. 치워라."
그녀는 알았다. 과한 욕심이고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고작 시 한 편에 응원을 해준 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다.
언제나 여름이 되면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
숨이 콱 막힐 만큼 새콤하고 시원했던 열무김치가 떠올랐다.
'그래, 열무김치를 담자. 입맛 없을 때 비빔밥으로 잘 먹었으니.'

그녀는 다음 날 아침에 시장으로 향했다.
햇볕은 이글이글했고, 발바닥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마음은 뿌듯했다. 가장 신선한 열무를 고르기 위해 손끝을 바쁘게 움직였다.
줄기가 통통하면서도 연한 열무, 입술에 닿으면 뽀드득할 것 같은 푸르른 것들.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싱싱한 열무 다섯 단을 골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무를 큰 고무 대야에 풀어넣었다. 수돗물에 퐁당 빠진 열무는
마치 여름을 통째로 품고 있는 듯했다. 손으로 조심스레 휘저으며 묵은 흙을 닦아냈다. 찬물에 씻긴 열무에서 풋내가 코끝에 맴돌았다.

굵은소금을 한 줌 쥐고 열무 사이사이에 뿌리기 시작했다. 소금 알갱이가 잎 사이로 사르르 흘러내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열무는 살짝 축 처졌고 그때가 그녀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다음은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멸치젓을 손수 만든 풀국에 넣으니 진홍빛 국물이 진득하게 끓어올랐다. 커다란 보울에 이 모든 걸 모아
양념을 천천히 절인 열무에 부었다.

입 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매콤하면서도 깊고 여름을 한 입에 넣은 듯한 냄새. 그녀는 손으로 열무를 집어서 한입 먹었다.

“조금만 더 맵게.”

혼잣말을 하며 고춧가루를 한 숟갈 더 얹었다.

열무김치가 거의 완성되었을 즈음,
방안 가득 매콤하고 시원한 냄새가 여름 공기를 타고 퍼졌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치를 통에 옮겨 담았다. 김치통 속에 차곡차곡 쌓인 열무는 단지 반찬이 아니라, 그동안 말 못 한 마음들이었다.

그녀는 그날 딸에게 김치를 전해주러 갔다.
무거운 통을 들고 현관 앞에 섰을 때 딸이 문을 열었다.
“엄마, 이게 또 뭐야?”
“그냥, 네가 고맙기도 하고. 이 더위에 시원하게 한 그릇 말아먹어라.”
딸은 투명한 김치통을 들여다보다 어릴 적 여름방학 점심상을 떠올렸다. 그녀가 그릇에 덜어준 열무김치를 소면 위에 털썩 얹고 얼음 동동 띄운 국물을 부어 호로록 먹던 그 기억. 딸은 말했다.
“이건 그냥 김치가 아니네. 엄마의 7월이네.”
그녀는 그 말에 웃었다. 어느새 손끝에 배인 고춧가루 냄새가 그녀의 마음마저 뜨겁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도, 김치를 담그는 것도 결국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

7월의 그녀는 시인이고, 엄마다.
그리고 이제 누구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열무김치처럼 그녀의 문장도 천천히 세상 밖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무제-
7월의 생명들은 과하게

치열하다.

그 생애가 짧은 줄 누가 모를까?

해님을 독차지하고픈

열망들로 넘쳐난다.


푸르름은 검정에 가깝고

알맹이 들은 돌에 가깝다.

활화산 같은 대기에

무지개색 닮은 숨소리들이

바다로 산으로 직진뿐이다.


이 채증을 다스리려

몇 번쯤 빗님들이 출두하신다.

이 또한 요란하니

그 이름 소낙비

7월은 그저 분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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