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커다란 늙은 호박을 두 손으로 잡아 단단한 껍질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올해는 호박이 참 잘 됐네. 속이 노랗게 꽉 찼을 거야.”
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가 엄마 옆에 섰다. 그녀가 칼로 호박을 반으로 가르자, 촉촉한 단내와 함께 노란 속살이 드러났다. 씨앗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는 소리는 사각사각 귀에 경쾌하게 울렸다.
“엄마, 씨앗 다 버리나?”
“응, 그냥 두면 떫어서 맛이 없다. 나중에 말려서 볶아 먹으면 고소하긴 하지.”
호박은 찜통에 올라가 뜨거운 김에 푹 익어갔다. 부엌 가득 퍼지는 달큼한 향이 벌써부터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엄마는 익은 호박을 퍼내어 고운 체에 내리며 말했다.
“이게 손이 많이 가도 맛은 있거든. 곱게 걸러야 죽이 부드럽다.”
노란 호박이 체를 통과하며 부드럽게 으깨지는 모습은 마치 햇살이 가루로 흩어지는 것 같았다.
큰 냄비에 호박과 찹쌀가루를 넣고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저을 때마다 보글보글 소리가 경쾌하게 튀어 올랐다. 나는 옆에서 냄비를 들여다보며 침을 삼켰다.
“엄마, 다 됐나? 얼른 먹고 싶다.”
“조금만 더 끓여야 한다. 찹쌀이 퍼져야 진짜 호박죽이지.”
드디어 완성된 호박죽을 그릇에 담아내자 주황빛이 고요히 출렁였다. 뜨거운 김이 내 얼굴을 감싸며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숟가락으로 한입 떠 넣는 순간 고운 결이 혀끝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고소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속이 포근하게 데워졌다.
창밖에서는 바람에 흔들린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엄마는 맞은편에서 나를 보며 웃었다.
“가을에는 역시 호박죽이지, 그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끓여준 그릇 속 주황빛 호박죽은 마음을 온전히 채우는 나만의 가을 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