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조금은 쌉쌀한.
“엄마, 가방에 물 넣었어?”
등굣길 현관 앞, 거울에 비친 아이가 명찰을 매만지며 묻는다. 그 말에 덜 깬 정신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한다. 투명한 물병에 생수를 따르고, 유기농 보리차 가루를 뜯어 넣는다. 두세 번 대충 흔들어 아이에게 건네며 문득 오래 전의 냄새가 스친다. 따뜻하고 구수한 조금은 쌉쌀한 냄새. 보리차 냄새다.
엄마의 아침은 언제나 보리차 끓이는 소리로 시작됐다. 부엌 구석에서 들려오는 부글부글 끓는 소리,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공기 중으로 퍼지는 향. 반쯤 잠든 나를 깨운 건 알람시계가 아니라 그 냄새였다. 다락방까지 올라오던 고소함은 어느새 엄마의 냄새와 뒤섞였다. 그 시절엔 몰랐다. 그 냄새가 곧 엄마의 하루였다는 것을.
보리가 타는 냄새와 삶의 냄새는 닮아 있다. 처음엔 은은하게 달고 곧 진하게 구수해지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쓴 내가 난다. 엄마는 그 경계를 참 잘도 지켰다. 피곤에 절어 있던 새벽에도, 쌀뜨물 냄새가 배어 있는 부엌에서도, 늘 그 황금빛 주전자에서 일정한 향을 피워냈다. 일곱 식구의 목을 축이던 그 향은 이 집안의 온기를 대신했다.
생수는 차갑고 맑지만 아무 맛도 없다. 반면 엄마의 보리차는 묘하게 따뜻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도 남는 여운이 있었다. 그것은 불 앞에서 식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삶이 가진 온기였다.
오늘 나는 생수에 보리차 가루를 넣었다.
끓이지 않아도 되는 간편하고 빠른 방식. 하지만 향은 없다. 맛도 어딘가 밍밍하다. 그걸 마시며 아이의 가방을 닫는다. 보리차 냄새가 없는 아침 그 부재가 슬며시 허전하다.
주전자 뚜껑이 들썩이며 새어 나오던 김, 그 안에서 피어오르던 보리차 냄새. 그 속에는 엄마의 말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이 녹아 있었다.
아이는 문을 나서며 손을 흔든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전기포트에 물을 채운다.
볶은 보리 대신에 넣은 보리차 가루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엄마의 새벽이 내 아침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