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집에서 쫓겨났을 때, 봄이었다. 나무들은 꽃을 피웠지만, 그녀의 마음은 시들어 있었다. 남편의 사업이 무너졌고, 채권자들이 집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 담 너머로 몰래 그녀를 지켜보던 이웃들의 시선,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의 마지막엔 시어머니의 싸늘한 한 마디가 있었다.
“상속포기 사인 하고 집에서 나가라.”
10년을 시아버지의 병간호하며 살았던 집에서 쫓겨나듯 나온 날, 그녀는 아이들 손을 꼭 잡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앙다물었다. 아이들은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이미 어른이 됐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부산 중심의 작은 원룸. 창문을 열면 옆 건물의 벽만 보이는 곳. 낮에는 빛도 잘 들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가진 것도, 믿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광안리의 맛집으로 소문난 밀면 가게에 가게 됐다. 원래 그녀는 사람 앞에 나서기보단 조용히 뒷정리하는 일을 좋아했지만,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일은 배우면서 해도 괜찮습니다.”
가게 사장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솔직했다.
“그런데 손님들 많을 땐 정신없을 겁니다. 버틸 수 있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텨야 했다. 월세도, 식비도, 아이들의 등록금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낮에는 서빙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손은 물에 붇고 종아리는 퉁퉁 부었지만, 그녀는 퇴근이 아까워서 늦게까지 남아 일했다. 그날도 그랬다.
“남은 만두 좀 가져가세요. 버리긴 아깝잖아요.”
주방 이모가 건넨 스티로폼 그릇엔 찐 고기만두가 스무 개 남짓 담겨 있었다.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그녀는 집으로 걸었다. 어깨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마음에는 아이들 얼굴이 그려졌다. 좁은 원룸에 들어 가자 아이들은 각자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작은아이는 씽긋 웃었고, 큰아이는 그녀의 손에서 비닐을 받아 갔다.
“우와, 만두다! 오늘도 남았네?”
“응. 오늘은 좀 많더라.”
전자레인지에 데운 만두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아이들 앞에 놓인 접시에 하나씩 올리며, 그녀는 살짝 웃었다. 고기를 씹는 아이들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작은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안 먹는데?”
“엄마는 일하면서 많이 먹었다. 너희 다 먹어라.”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만두를 세 개 남겼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이 고였다. 이 눈물은 슬픔 때문도, 고단함 때문도 아니었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저녁이, 누구보다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무너진 집은 다시 세울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작은 만두 한 알로도 삶은 이어질 수 있다.
내일도 남은 만두가 있기를. 아니,
내일은 아이들을 위해 삼겹살을 사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