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돌아온 밤
그녀는 한때 믿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자신처럼 조용하고 성실하게 자라길 바랐다.
첫째가 그렇게 자라주었을 때, 어쩌면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육아란 건 생각보다 간단하구나.' 스스로 착각하며 안일해졌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처음부터 그랬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울었고,
이유식을 거부할 땐 두 손으로 식판을 엎었다.
눈빛은 또렷했고, 의사는 분명했다.
“싫어. 안 먹어. 하지 마.”
처음엔 웃으며 말했다.
"누굴 닮았노? 고집이 장난 아니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강한 의지는 갈등이 되었고, 상처가 되었고, 말끝마다 부딪히는 불씨가 되었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대화가 점점 줄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은 늘 세 글자.
“몰라.”
“그냥.”
“됐다.”
그녀는 자주 화를 냈고,
그 애는 더 자주 방문을 닫았다.
“언니는 말 한마디 안 해도 척척 알아듣는데, 넌 맨날 왜 그러는데?”
그녀가 소리쳤다. 그 애는 침대에 엎드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 앉지 않고 등교한 딸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저거 진짜 어떡할꼬…”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그날은 유난히 더웠다.
모기까지 지쳐 날아다니던 늦여름 저녁, 그 애가 사라졌다.
책상에는 몇 문장이 적힌 쪽지가 있었고,
아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도 모른다고만 했다.
큰딸은 당황한 채 방 안에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찬물에 얼굴을 몇 번이고 박았다. 불안이 허기를 삼키고, 공포가 혈관을 타고 돌았다.
그러다 밤 12시 27분, 현관문이 열렸다.
딸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인 채,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어디 갔었노…?”
그녀가 물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질문은 곧 눈물이 되었다.
“몰라. 그냥 여기저기 걷다 왔다.”
“왜 그러는데? 도대체 왜?”
“엄마는 맨날 언니처럼만 살라고 하겠지.
나 같은 애는, 그냥 좀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정답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아예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엉뚱한 답변이 나와버렸다.
“씻고 온나. 밥 먹어야지.”
그 말만 간신히 내뱉고 부엌으로 갔다.
시장에서 사 온 고등어가 있었다. 둘째가 어릴 때 유독 잘 먹던 반찬. 가시를 조심히 발라 먹으며
“엄마, 고등어가 생선 중에 제일 맛있다.”
하던 어린 그 애가 떠올랐다.
무를 도톰히 썰어 바닥에 깔고 고등어 토막을 가지런히 얹었다. 물과 간장을 붓고 매운 걸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고춧가루를 많이 뿌렸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풀어 넣고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그 애는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멈췄고, 고등어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아이는 잠시 입안에서 고등어 살을 천천히 굴렸다. 그녀는 말없이 딸의 입을 바라봤다.
“엄마… 나 많이 힘들었다.
언니처럼은 안 되겠고, 엄만 자꾸 비교하고,
나도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고…”
그녀는 그 말을 기다려온 걸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도 미안하다. 앞으로는 니한테 그런 말 안 하도록 노력할게. 돌아와 줘서 진짜 진짜 고맙다.”
딸은 말없이 울었다. 그녀는 국물에 젓가락을 적셨다. 간장이 깊숙이 배어든 무는
모서리마다 부드럽게 깨어지고 있었다.
사랑은 늘 거창한 문장보다
짭짤한 국물 한 모금에 담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날 밤, 그 애에게 가장 엄마다워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