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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에 된장찌개

아이들이 울지 않도록

by 책방별곡

남편이 잘 다니던 직장에서 사고를 쳤다. 무모했고, 어리석었고, 결국은 해고였다. 모든 걸 감추듯 도망치듯, 짐을 싸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부산을 떠났다. 무작정 올라간 서울, 그곳엔 남편의 막내이모가 살고 있었다.

구로구의 넓은 정원이 있는 드라마에서 볼 법한 이층 양옥 주택의 반지하 방 두 칸. 햇살은 잘 들지 않았고, 창문 밖으론 장미꽃이 만발한 그림 같은 정원이 보였다. 그곳이 그녀의 새로운 삶이었다. 남편의 이모는 떨떠름하게 받아들였고, 그 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투 하나, 눈짓 하나에 묘한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네 살과 여섯 살 난 두 딸은, 처음엔 반갑게 두세 살 터울 언니들을 사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장난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은근한 소외와 무언의 쫓겨남을 겪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거야,” “너는 하지 마,” 그런 말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도 알았다. 하지만 외면했다. 감히 시이모에게 불편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잠시라도 머물 곳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놀다 온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둘 다 말이 없었다. 큰아이는 말없이 방에 앉아있었고, 작은아이는 인형만 만지작 거렸다. 그 모습이 자세히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한 달에 한 번만 먹으려고 아껴둔 삼겹살을 꺼냈다. 기름기가 도는 고기 한 근, 소금만 살짝 뿌려 달군 팬에 올리자 고소한 냄새가 반지하방 가득 퍼졌다. 된장찌개도 함께 끓였다. 감자와 양파, 두부를 넣고, 큰딸이 좋아하는 미더덕도 넣었다. 된장 냄새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울음은 국물 속에 조용히 풀려 들어갔다.


“오늘은 삼겹살이다.”

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 앞에 접시를 놓았다.

“체하니까 꼭꼭 씹어 먹어.”


아이들은 말없이 고기를 입에 넣었다. 씹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작은아이는 입가에 기름을 묻혔고, 큰아이는 눈을 비볐다. 숟가락을 들고 된장찌개 한 입 떠먹는 순간, 큰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우리 그냥 부산에 다시 가면 안 돼?”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가장 아픈 말이었다. 돌아갈 수 없었다.

삼겹살을 우적우적 씹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기 한 점과 된장찌개 한 숟갈로 위로할 수밖에 없는 하루였지만,

그녀는 다시 끓일 것이다.

수없이 끓이고, 수없이 버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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