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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y 20. 2024

오월 어느 날 불현듯

고향나들이

  

아침 여덟 시, 고향집을 향해 출발했다.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에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다. 좀처럼 전화를 먼저 걸지 않는 어머니여서 무슨 일일까 싶었다. 그냥, 너 보고 싶어서. 버스 타고 갈란다. 나올 거 없어, 터미널에서 택시 타면 돼.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내게 아무 일 없단다. 구순의 어머니가 버스와 택시를 어찌 탈까 싶어, 망설이지 않고 나선 참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야는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어느새 이렇게 되었을까. 아파서 고통받고 있는 사이, 산야에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저렇게 변하다니. 모든 게 순식간이다. 모내기한 논에는 땅심 받으며 벼 포기가 검푸르고, 왜가리는 논바닥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본다. 평화로운 풍경. 자랄 적엔 예사롭게 보던 풍경이었는데, 이젠 새롭기만 하다. 아까시꽃 핀 모습이 희끗희끗 산자락에 나부낀다. 봄날 허기를 달래주던 향긋한 꽃.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고향, 사람이 거의 없다. 한적하다 못해 절간 같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친구들이 뛰어나올 것만 같지만 고요하기만 하다. 장다리꽃 무성했던 옆집 상희네 텃밭엔, 장다리꽃이 없다. 너도 나도 밭으로 뛰어 들어가 장다리꽃 대궁 꺾고 껍질 벗겨 잘근잘근 씹다, 지린 맛에 후딱 던지곤 했던 텃밭. 그때 날던 노랑나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니 현관문이 겨 있다. 어머니가 혹시 서울로 향하신 걸까. 문을 두드렸다. 아무 소리 없다. 다시 쾅쾅 두드렸다. 인기척이 들렸다. 시골집에서 무슨 문을 잠그고 있단 말인가. 언제나 대문이 활짝 열려 있던 집이었는데. 새삼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노인이 뭐가 무서워 문을 잠글까 해서. 잠시 후 문을 연 어머니가 아이구, 이게 어쩐 일이야! 화들짝 놀라신다.


화단엔 금낭화와 작약이 어머니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피어 있다. 끈끈이대나물도 꽃봉오리 터뜨리기 직전이다. 사철나무는 더 무성해졌고 돌 틈에 돌나물이 지천으로 자랐다. 손길이 가지 않은 화단은 자연스럽다 못해 무질서하다. 작년만 해도 저렇게 두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힘이 이젠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마당 한쪽에 일군 텃밭엔 가지 모종 세 포기, 상추 모종 열 포기가 심겨 있다. 지실 든 듯 힘없어 뵈는 상추 포기, 꼭 어머니 같다.


어머니를 홀로 살게 두는 게 맞을까. 아직 수족을 놀릴 만하니 혼자 살겠다고 고집부리시니 말릴 수 없다. 이렇게 가끔 찾아뵙는 걸로 자식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모시고 살 자신도 없다. 남동생이 못 모시겠다면 나서겠지만 자청할 수 없다. 형제 사이의 미묘한 감정 때문이다. 모두 다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시설에 가지 않겠다고 못 박은 어머니는 아직 아들네 집에도 가지 않으시겠단다.


기왕 왔으니 어머니와 하루 보내기로 했다. 어머니 따라 교회에 갔다. 11시 예배. 목사님 부부와 사모님의 여동생, 성도는 어머니 한 사람이다. 나까지 다섯 사람이 예배를 드렸다. 그 교회에서 어머니는 특별한 성도다. 단 한 사람이니까. 피아노는 덩그러니 놓여 있고, 아무도 반주를 하지 않는단다. 오랜만에 반주로 봉사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나라도 자리에 앉아 채우는 게 나을 듯했기 때문이다.


예배 후, 윗동네 사는 작은엄마와 셋이서 점심 식사하러 산속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풍광 좋은 산골이라 그럴까. 골짜기마다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음식점 주차장엔 차가 즐비하다. 진풍경이다. 산골짜기 내 고향이 마치 유원지 같다. 산나물 뜯고 나무하던 산자락에 이토록 예쁜 집들이 지어지고, 음식점이 들어서다니. 어머니와 작은엄마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끼는 듯하다. 늘 보는 풍경이라 그럴까. 어느 집이 무슨 음식을 잘하는지 다 꿰고 계셨다.


불현듯 찾은 고향의 오월 하루해는 짧았다.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차 한 잔 마신 것밖에 없는데 벌써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뒤란이 보고 싶었다. 앵두나무에 푸릇한 앵두가 줄줄이 매달려 있다. 앵두나무 아래 고들빼기 꽃이 긴 목을 빼고 나를 쳐다보았다. 울타리 밖으로 내가 뛰놀던 뒷산자락이 보였다. 숲이 무성했다. 모두 다 이젠 기억 속에만 온전하다. 달라졌다. 이때쯤 뒷산에 오르면 다 핀 고사리가 손가락을 쫙 펴고 바람에 흔들리곤 했는데. 노랑매미꽃과 함께.


백미러로 보이는 어머니 모습은 가슴만 아프게 한다. 굽은 허리로 서서 마른 손을 흔드신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눈이 씀벅거린다. 간신히 참아도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는 저렇게 서 계시리라. 만남의 기쁨은 잠깐, 헤어지는 아쉬움은 길기만 하다. 고향에서 보낸 오월 하루, 긴 해와 달리 짧았다. 그 짧은 만남이라도 자주 가져 이어 붙일 수 있다면. 아쉬움을 해결하는 해법은 그밖에 없는 걸까.


앵두 붉으면 오라는 어머니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내렸다. 내 가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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