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한 작은 소고 (3)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일반적으로 마냥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글쎄, 나이를 먹었다는 게 '이야 기분좋다!' 할만한 사람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나이를 정말 충분히 먹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5년 전 쯤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1년 전인 2019년, 내 첫 해외여행지이자 유학 경험의 첫발을 내딫었던 호주의 케언즈를 16년만에 다시 찾아갔던 때였다.
케언즈는 내게 제2의 고향같은 곳이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내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이 마땅히 없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분당 토박이(?)로 인생을 보내고선, 20대 중 2년은 군대에서 있다가 나머지 8년은 해외에서 있었으니 내 가치관이 변할만큼 충분한 시간이었기도 하고, 내 마음을 온전히 한 군데 둘 곳이 마땅치 않았던것 같기도 하다.
케언즈는 그러했던 나의 유목민 시간 속에서 내 기억속에 강렬히 남아있는 땅이었다. 나는 케언즈에 처음 입국할 때 내 코에 스며드는 특유의 유칼립투스 향을 기억한다. 그리고 16년 만에 다시 찾아간 케언즈는 그 향기를 오롯히 간직하고 있었다.
케언즈는 여전히 내게 익숙한 곳이었다. 한적한 시내, 변하지 않는 건물들, 해변 옆에 있는 브런치 카페, 에스플러네이드 옆의 산책로와 삼삼오오 모여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내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시내를 걸어다니다보면 뭔가 내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때에 왜 나의 마음이 아려올까. 나는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시내를 무작정 걸으며 예전에 내가 즐겨 찾던 곳들을 하나 둘씩 방문해보았다.
먼저 에스플러네이드 옆에 내가 자주 갔었던 브런치 카페에 들렀다. 16년전과 같이 나는 수란을 곁들인 브런치와 잘 마시지도 않는 플랫화이트 커피를 주문했다. 그때 당시 나는 Thin Lizzy라는 영국 밴드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카페 사장이 그걸 알아보고는,
"Oh, Thin Lizzy, my favourite band as well."
이렇게 말을 걸며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를 알아봐준다는 것, 별거 아닌 일이지만 Thin Lizzy가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밴드이기도 하거니와 내 고향같은 곳에서 내 마음을 누군가 공감해주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식사를 뚝딱 해치우고선 바로 옆의 라군으로 향했다. 케언즈 라군은 야외 수영장으로 생각해보면 쉽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핫플레이스인 만큼 친구들, 가족단위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나는 여기서 16년 전에 한번도 하지 않았던 걸 해보기로 했다. 바로 수영이다. 나는 야외에서 대뜸 물에 들어가는 걸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라군에서 첫 수영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이기도 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 나는 저렴한 수영복을 대충 구해와서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물은 왜 그리고 차가웠던지. 처음에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다가 이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내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자유형으로 라군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어떤 남자아이들은 비치볼을 튕기며 놀고 있었고, 어느 가족의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튜브를 씌워주고 함께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가족, 친구, 연인들. 그리고 혼자라는 어느 누군가의 공간.
나는 수영을 멈추고는 라군 저 편에 보이는 케언즈의 바다를 지켜보았다. 케언즈 시내의 바다는 물 들어오는 때가 정해져 있는건지 간혹 갯벌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강렬한 태양이 비치는 그 갯벌의 바다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호주의 태양은 여느때와 같은 모습으로 불타올랐다.
한 30분 정도의 수영 후에 나는 샤워를 하고 다시 시내를 둘러보았다. 마침 방문했던 시점이 주말이었던지라 케언즈의 시장격인 러스티 마켓도 다시 둘러보고, 관광객들의 1번지인 나이트마켓도 둘러보았다. 여전히 관광객으로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일본인들 많은 것도 여전했다.
나는 나이트마켓에서도 생전(?)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려고 했다. 바로 마사지였다. 호주에서의 5년 간 매우 가난했던 유학생이었던 나에게 마사지 같은 서비스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관광객 코스프레를 해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성공하고 상경하여 '나 이정도는 쓸수있어~' 하는 뜨내기의 모습이랄까.
나는 아무 마사지샵에 들어가서 발마사지 30분 서비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꽤 어려보이는 일본인 남성이 내게 배정되었다. 케언즈는 워낙 일본인들이 많기도 하고, 지역사회에도 상당히 많은 일본계 이민자들이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이 일본인 마사지사는 이민자는 아닌 것 같고 워킹홀리데이로 온 듯한데,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 질문들 있잖은가. 어디에서 왔는지, 뭘 하러 왔는지, 나이는 몇인지.
마사지사의 나이는 스물 한 살이었다. 내가 유학을 왔던 그 때와 동일한 나이었다. 워킹홀리데이로 1년 체류하려고 왔고, 케언즈에만 있다가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You're so lucky. Don't go anywhere else in Australia. Cairns is the best city I've ever been to."
물론 케언즈가 호주 최고의 도시이고 말고.
좋은 추억이 있다면 더더욱.
2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