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전집 강독 14: 『떠돌이의 시』에서 네 편
1970년대까지의 서정주의 문학적 활동을 보면 시쳇말로 칠 때마다 홈런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화사집』에서 『질마재 신화』까지, 그때껏 발표된 여섯 권의 시집이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성취를 이룩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동천』을 다룬 부분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천이두 평론가의 말을 다시 빌려 보자면, 그때까지의 한국의 시인 중에서 일시적인 두각을 드러낸 이는 적지 않았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가면서 양적인 풍요와 질적인 우수성을 동시에 보여준 이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가령 2007년 한국시인협회에서 현대시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시도한 한국의 '10대 시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작고 문인을 대상으로 평론가 열 명의 논의 끝에 선정된 이 10명의 명단을 보면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 김춘수, 이상, 윤동주, 박목월이 나와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선정 과정에서 마지막의 열 번째로 박목월과 김종삼 중 누구를 넣을지 의견이 분분했다는 기사도 나와 있습니다.(주1)
이 중 김소월과 한용운은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이라는 사실상의 한 권만을 남겼고, 정지용은 『정지용시집』과 『백록담』의 두 권을 남겼습니다. 백석과 김수영은 각각 『사슴』과 『달나라의 장난』을 낸 뒤 시집을 묶지 못한 채로 사망했지만, 후기 시편들이 한두 권 정도로 묶일 수 있어 2~3권 정도를 남긴 채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 권만을 남겼습니다. 이상은 생전에 책을 내지 못했으나 사후에 그의 시, 소설, 산문을 묶은 『이상선집』이 출간되었으니 시집 역시 사실상의 한 권 정도만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열 사람 중에서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장수의 시인은 서정주를 비롯해 박목월, 김춘수 정도만이 있는 셈입니다. 명단에 없는 시인 중에서는 유치환이나 박두진 정도를 함께 들 수 있겠지만 많지 않은 인원이라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풍토였던 까닭에 서정주의 지속적인 문학적 성공이 당대에 찬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196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황동규, 정현종, 신경림 등 장수의 시인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지만, 그것은 당시로서는 뒷날의 일에 해당합니다.) 완성도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이루어진 그의 다작은 특히 후배 시인들에게 감탄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가령 박재삼 시인은 '나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 제일의 시인을 꼽는 데는 언제나 서정주 씨를 쳐왔었다. 또 그것은 당대만에 한하지 않고 전대에서 지금까지 가장 높은 봉우리에 좌정해 있다고 믿는다'(주2)고 말한 바 있고, 김구용 시인은 나아가 그를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인이라 극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주3)
이런 상황에서 그는 『질마재 신화』를 출간한 지 한 해 만인 1976년에 다시 일곱 번째 시집 『떠돌이의 시』를 냅니다. 시인의 나이 60세 전후에 이루어진 70년대의 작품활동은 이 두 권의 시집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만큼 이 두 시집은 반드시 상이한 저술로 인식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신라초』가 신라 시편의 1부와 그 밖의 시편들을 모은 2부로 구성되어 일종의 상보적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이 두 권의 시집 역시 질마재 시편들과 그 밖의 시편들이 같은 시기에 씌어져 이 무렵 시인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떠돌이의 시』의 특징으로서 가장 주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서정주 특유의 현실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시인의 나이와 맞물려,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칫하면 현실에 순응하려고만 하는 태도로 이어질 위험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비판적인 측면도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우창 평론가는 서정주의 이러한 현실 감각을 '구부러짐의 형이상학'이라고 지칭한 바 있습니다.
미당 선생의 본질적인 삶의 이해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참고 기다리는 유연한 자세이다. 그의 완곡의 실천철학은 「곡」에서 말한 대로 '곧장 가자 하면 갈 수 없는 벼랑길도/ 굽어서 돌아가면 갈 수 있는 이치'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완곡의 철학이 반드시 그것이 당위적인 요구가 아니라 삶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주의의 방편이라는 점이다. 이만치 미당 선생의 점진주의에는 인생고(人生苦)에 대한 절실한 느낌이 들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이 현실은 단순히 미당 선생 일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은 아니다. 그것은 좁게는 그가 살아온 시대의 현실이며, 넓게는 그 자신 그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은 한국인의 역사적 체험의 현실이다.
단지 우리가 보충적으로 말할 것이 있다면, 70년대 후반에 들어선 우리는 이존(以存)의 방책만을 유일한 인간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제는 이존보다 구부러진 자세로 참고 견디지 않아도 될 상태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근본적인 현실을 가져야 할 단계에 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주4)
『떠돌이의 시』는 '정말', '시사시편', '산문시', '떠돌이의 시'의 네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정주는 '떠돌이'라는 말을 말년인 90년대에 두 번이나 더 시집의 제목으로 쓴 바 있습니다.
시집의 첫 번째 단락인 '정말' 편에는 열아홉 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이 중 첫 순서로 실린 작품은 「시론」입니다.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화자는 시인의 마음을 전복을 따는 해녀에 비유합니다. 좋은 전복을 캐내서 파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이지만, 정말로 좋은 것이 있으면 님 오시는 날 주려고 캐지 않고 남겨둔다는 것입니다. 시인 역시 '시의 전복'이 있다고 해서 그걸 보이는 대로 다 캐어낼 것이 아니라, 최적의 상황을 위해 아껴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화자는 자신이 전복을 다 캐지 말라고 한 것이 단순히 '님 오시는 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은근히 내비칩니다. 시인이 '전복'을 다 캐낼 필요가 없는 것은 시인이 애초에 전복보다도 '바다' 자체를 그리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전복을 남겨놓는 것은 그것이 쓰일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순간을 위해서, 즉 가장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마음에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해녀인 시인 자신이 즐거워하는 물질 자체를 계속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남호 평론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미당은 「시론」이라는 시에서, 남김을 그의 시론의 제1원리로 삼는다. (…) 제일 좋은 시의 전복을 바다에 남겨두고 그 바다를 동경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말은, 시의 전복을 다 캐낸 자는 이미 시인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모든 시인이나 예술가들은 완벽한 작품을 꿈꾸지만 누구도 그런 작품을 창조하지 못한다. 자신의 작품이 완벽의 끝이라고 믿는 시인은 없을 것이며, 모든 시인은 항상 더 나은 작품의 창조를 꿈꾼다. 모든 시인에게 제일 좋은 시의 전복은 여전히 바닷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완벽성에 대한 시시포스적 노력이 미당의 시론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이런 점에서 미당이라는 시인의 호와 이 「시론」은 잘 어울린다.)
이 시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그러나, 너무 멋이 없다. 미당이 시인의 완벽성에 대한 시시포스적 노력을 강조하려고 이런 시를 쓴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해석은 미당적이지 않다. 보다 미당적인 해석은 제일 좋은 것은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단순한 의미다. 시의 전복은 시상 혹은 시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일 좋은 시상은 시로 써서 발표하지 않고 마음속에 그냥 품고 있어야 좋다. 다 써버리거나 취하지 않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남몰래 남겨두는 마음의 소중함을 미당은 자신의 시론으로 또 더 나아가 삶의 원리로 삼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앞서 언급한 '도달할 수 없는 완벽성에 대한 시시포스적 노력'이 더 나은 것에 대한 열망에 주목하는 해석이라면, '제일 좋은 것은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은 최상과 최선과 최후는 다 취하지 않고 남겨두겠다는 여유에 주목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5)
'겨울 바다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두 번째 시 「정말」은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담겨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정말 하기는 거북하니까
우리 모다 어느 바닷속에나 갖다가
던져 버려 둡시다.
이것은
영아 유기범의 엄마 팔에 안낀
애기와는 달라서
썩 많은 나잇값을 하노라고
소리 한마디도 지르지는 않을 겝니다.
그렇지만 언제 어느 아이들이
무슨 됫박들을 들고 와서
이 많은 바닷물을 다 품어 내서
이걸 다시 건지지요?
건져서 가지지요?
이 시의 내용은 「시론」처럼 얼른 이해되지는 않는데, 아마도 화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갖다가 바닷속에 무엇을 던져버려 은닉하는 행위에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을 하기는 거북하니까, 그는 자기 마음속의 어떤 진솔한 무언가를 바닷속 같은 데에 던져 버려두자고 말합니다. 화자의 정말을 뜻하는 '이것'은 자신만큼 나이를 먹은 것일 테니, 화자의 술수를 파악해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간 뒤라면 '애기'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집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자신이 묻어두겠다는 '이것'을 언제 누가 와서 다시 건져낼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버려두겠다면서도 그는 그것이 계속 남아 있을 것임을 생각하고, 또 실은 다시 건져져야 할 것이 맞는 일이리라는 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됫박'의 비유는 그 건져냄의 작업이 한번 숨어들어간 것을 찾기에는 매우 힘든 것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시로 앞서 『동천』에 실렸던 시 「봄볕」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정말」은 그 작품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거짓말의 성질을 독특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뻐꾹새 울음」과 「가만한 꽃」, 「산수유꽃」은 이전 시집들에서 볼 수 있었던 느낌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시들인 것 같습니다. 「뻐꾹새 울음」에서는 뻐꾹새의 울음소리가 '그대'의 비극적인 생애를 따라 지속적으로 울려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가만한 꽃」에서는 마음이 새도 구름도 모두 거두어 우물처럼 가만한 한 송이의 꽃으로 고이는 듯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수유꽃」은 산수유의 꽃핌이 병풍에 그린 닭과 소실댁의 손톱 사이에서 일어나는 '간사'를 떠는 행위라고 말해지는 내용의, 특이한 시입니다.
네 번째 순서로 실린 시 「낮잠」은 여유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참신한 방식으로 표현한, 또 다른 독특한 작품입니다.(주6)
묘법연화경 속에
내 까마득 그 뜻을 잊어 먹은 글자가 하나.
무교동 왕대폿집으로 가서
팁을 오백 원씩이나 주어도
도무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글자가 하나.
나리는 이슬비에
자라는 보리밭에
기왕이면 비 열 끗짜리 속의 쟁끼나 한 마리
여기 그냥 그려 두고
낮잠이나 들까나.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법화경의 텍스트 중에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글자가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이런 문제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걸로 화자의 행위가 이어지게 마련인데, 여기서 화자의 움직임은 특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우선 '무교동 왕대폿집'에 가서 팁을 많이 붙여 주었다는 행위는 글자를 떠올리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일종의 농담일 텐데, 음식값을 더 주는 것을 어떤 자비의 행위로 판단해 불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처럼 해학적으로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듭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시의 후반부입니다. 화자는 '기왕이면 비 열 끗짜리 속의 쟁끼'나 그려 보며 낮잠이나 들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화투패 12월에서 장끼가 그려진 건 열 끗입니다. 광은 스무 끗이고요. 광을 두고도 기왕이면 장끼를 그리는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은 우선책보다도 차선책을 취하겠다는 것, 치열한 공부보다도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심리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대로 낮잠이라는 한가한 행위와 연결됩니다. 「낮잠」은 여유를 가지는 삶에 대한 예찬이라는 주제를 법화경과 화투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통해 하나로 엮어낸, 서정주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소재 포착 능력이 돋보이는 이 시기의 명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컨대 단순한 주제의 세련된 해석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곱 번째 시 「북녘 곰, 남녘 곰」은 묘한 내용의 시입니다. 시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북녘 곰이 발바닥 핥다가 돌이 되거던……/ 남녘 곰도 발바닥 핥다 돌이 되거던……/ 그 두 돌 다 바닷물에 가라앉거던……/ 가라앉아 이얘기를 시작하거던……/ 이얘기가 다 끝나서 말이 없거던……/ 말이 없어 굴딱지나 달라붙거던……/ 바다 말라 그 두 돌이 또 나오거던……' 지나치게 주관적인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7.4 남북공동성명 전후의 남북관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홉 번째 시 「산사꽃」은 연인을 잃은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산 보네 산 보네 밤낮 산 보네. (…) 그대와 나 둘이서 맞추았던 눈/ 기왕이면 끝까지 버틸 일이지/ 무엇하러 지그시 감고 마는가./ 그대 감은 눈 우에 청청히 솟는 산/ 산 보네 나 혼자 두 몫 산 보네.' 7-5조의 리듬감 속에 화자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이 밖에 「겨울의 정」은 눈 속에 묻힌 대추씨가 그립다고 말하면 하늘의 기러기며 영창 안의 난초 잎이며 산골과 이어진 바닷물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움직인다는 내용의 시이고, 「한국 종소리」는 어미 고래의 묵직한 소리를 품으면서도 땅 속에 묻히면 꽃으로 피어난다고 말해지는 한국 종의 듬직한 멋을 노래한 시입니다.
한편 「복 받을 처녀」, 「난초잎을 보며」, 「곡」, 「고향 난초」 등의 작품들은, 앞에서 언급된 구부러짐의 미학이 잘 나타나는 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들에서는 구부러짐의 성격이 담긴 대상으로서 난초라는 소재가 공통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점이 주목됩니다. 아마도 이 무렵 시인은 구부러진 난초의 모습에서 삶을 살아가는 완곡함의 멋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열네 번째 순서로 수록된 시 「곡」입니다.
곧장 가자 하면 갈 수 없는 벼랑길도
굽어서 돌아가기면 갈 수 있는 이치를
겨울 굽은 난초잎에서 새삼스레 배우는 날
무력이여 무력이여 안으로 굽기만 하는
내 왼갖 무력이여
하기는 이 이무기 힘도 대견키사 하여라.
여기에서의 화자는 난초 잎을 보면서 곧장 가는 길만이 유일한 사는 이치는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벼랑길을 곧장 가는 용은 못 되더라도, 돌아서라도 가는 이무기 같은 자신의 힘도 알고 보니 그만하면 괜찮은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무력(無力)'이 사실은 삶을 살아내는 '힘'으로 작용했었음을 역설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들에서는 여기에서 출발한 생각이 타인 또는 사회를 향하여 전개되고 있습니다. 「복 받을 처녀」에서는 세상의 풍파를 나름대로 비껴가며 살아가려는 지혜를 가진 여인들에게 복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고, 「난초잎을 보며」에서는 우리 민족 전체가 그런 풍파를 누구보다도 잘 견딘 민족이므로 세상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고향 난초」에서는 아버님 산소에서 캐어 온 난초에 아버님의 눈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화자 또한 죽고 나면 자신의 눈도 난초 안에 담길 것인가 하고 묻고 있고, 「한란을 보며」에서는 이북으로 간 동포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내용을 하고 있습니다.
'불기 2517년 첫날에 부쳐'라는 부제가 붙은 열여섯 번째 시 「바위와 난초꽃」 역시 난초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 속에서 화자는 살아가는 방식을 바위와 난초의 두 가지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바위가 저렇게 몇천 년씩을/ 침묵으로만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난초는 답답해서 꽃 피는 거라. (…) 역사 표면의 시장 같은 행위들/ 귀 시끄런 언어들의 공해에서 멀리멀리/ 고요하고 영원한 참목숨의 강은 흘러/ 바위는 그 깊이를 시늉해 앉았지만/ 난초는 아무래도 그대로는 못 있고/ "야" 한마디 내뱉는 거라.'
세상이란 '역사 표면'에서 '귀 시끄런 언어들의 공해'가 난무하는 곳이고, 그런지라 바위는 그것에 대한 거부 의사를 굳은 침묵으로써 표명합니다. 이 침묵에서는 지사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멋이 느껴지지만, 난초는 오히려 거기에서 오는 어떤 답답함을 못 견뎌합니다. 그는 침묵을 깨고 마치 목소리를 내듯이 꽃을 피웁니다. 세상의 공해를 싫어하면서도, 바위처럼 견고함을 유지하는 삶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시입니다.
그 뒤의 순서로 수록된 「소나무 속엔」은 솔바람 소리가 단군할아버지의 한숨 소리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시이고, 마지막으로 「다섯 살」과 「애기의 꿈」은 아이를 시의 소재로 삼으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은/ 다섯 살이면/ 논어도 곧잘 배웠다 한다./ 우리도/ 다섯 살이나 나이를 자셨으면/ 엄마는 애기나 보라고 하고/ ㄱㄴ이라도 부즈런이 배워야지/ 그것도 못하면 증말 챙피다.'라고 말하는 「다섯 살」에서의 해학적 어투의 교육 권유나 '애기의 꿈속에 나비 한 마리/ 어디론지 날아가고 햇빛만이 남았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애기는/ 창구멍으로 방바닥에 스며든 햇빛을/ 눈 대 보고 뺨 대 보고 만져보고 웃는다./ 엄마도 애기같이 이렇다면은/ 세상은 정말로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애기의 꿈」에서의 따뜻한 시선은 저마다 매력적인 울림을 줍니다.
1) 「시인은 잠들어도 시는 영원하리」, 『문화일보』(2007.10.15.)
2) 박재삼, 「자유자재한 것」, 서정주의 시집 『안 잊히는 일들』(현대문학, 1983)에 수록됨.
3) 사진작가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열음사, 2007)에서 언급되는 내용.
4) 김우창, 「구부러짐의 형이상학」, 『궁핍한 시대의 시인』(민음사, 1977).
5) 이남호, 『남김의 미학』(현대문학, 2016). 여기에서 그는 이어서 「시론」과 내용이 거의 유사한 작품으로 시집 『노래』에 실려 있는 시 「구약」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앞에서 본 해녀의 비유와 함께, 보리밭에서 보리를 거둬들일 때는 약간씩 남겨 두어야 새들이 주워 먹을 수 있고,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캐낼 때도 작은 건 남겨 놔야 어린아이들이 캐서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그의 남김이 자신의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이 시 전반부의 모티프가 된 것은 아마도 『홍찬법화전』에 실린 신라의 한 일화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정주, 「숙명통」, 『풍류의 시간』(전집 10권, 은행나무, 201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