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미당 시전집 강독 13: 『질마재 신화』에서 네 편

by 노정연

3. (계속)


열아홉 번째 시 「알묏집 개피떡」과 스물한 번째 시 「신선 재곤이」는 질마재 마을에 살았던 또 다른 독특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알뫼라는 마을에서 시집와서 아무껏도 없는 홀어미가 되어 버린 알묏댁은 보름사리 그뜩한 바닷물 우에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행실이 궂어져서 서방질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은 그네에게서 외면을 하고 지냈습니다만, 하늘에 달이 없는 그믐께에는 사정은 그와 아주 딴판이 되었습니다.

음 스무날 무렵부터 다음 달 열흘까지 그네가 만든 개피떡 광주리를 안고 마을을 돌며 팔러 다닐 때에는 "떡맛하고 떡 맵시사 역시 알묏집네를 당할 사람이 없지." 모두 다 흡족해서, 기름기로 번즈레한 그네 눈망울과 머리털과 손끝을 보며 찬양하였습니다. 손가락을 식칼로 잘라 흐르는 피로 죽어가는 남편의 목을 축이었다는 이 마을 제일의 열녀 할머니도 그건 그랬었습니다.

달 좋은 보름 동안은 외면당했다가도 달 안 좋은 보름 동안은 또 그렇게 이해되는 것이었지요.

앞니가 분명히 한 개 빠져서까지 그네는 달 안 좋은 보름 동안을 떡 장사를 다녔는데, 그동안엔 어떻게나 이빨을 희게 잘 닦는 것인지, 앞니 한 개 없는 것도 아무 상관없이 달 좋은 보름 동안의 연애의 소문은 여전히 마을에 파다하였습니다.

방 한 개 부엌 한 개의 그네 집을 마을 사람들은 속속들이 다 잘 알지만, 별다른 연장도 없었던 것인데, 무슨 딴손이 있어서 그 개피떡은 누구 눈에나 들도록 그리도 이뿌게 만든 것인지, 빠진 이빨 사이를 사내들이 못 볼 정도로 그 이빨들은 그렇게도 이뿌게 했던 것인지, 머리털이나 눈은 또 어떻게 늘 그렇게 깨끗하게 번즈레하게 이뿌게 해낸 것인지 참 묘한 일이었습니다.


「알묏집 개피떡」은 그야말로 묘한 내용의 시입니다. 알묏댁이라는 인물은 하늘에 달이 잘 뜨는 보름 동안에는 서방질을 한다는 소문 때문에 외면을 당하면서 지내지만, 달이 작게 뜨는 보름 동안에 개피떡을 만들어 팔고 다닐 때에는 훌륭한 떡 솜씨 때문에 반대로 칭송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미려한 외모도 은근히 뒷받침의 역할을 해줍니다. 앞의 보름 동안 그것은 서방질에 대한 비난의 근거가 되지만 뒤의 보름 동안 그것은 그의 뛰어난 꾸밈새와 손솜씨를 거듭 칭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언뜻 보면 아이러니로 차 있는 내용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알묏댁의 사회적인 행실이라고 하는 것은 좋다고 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그의 떡 만드는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뛰어난 떡 짓는 솜씨는 얼마간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에 의해서 빚어진 것이고, 외모를 가꾸는 것 역시 상대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부차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묏댁은 자기 나름대로 견실하게 자신의 살아갈 방도를 찾아간 셈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 역시 마냥 이상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는 비판하고 언제는 칭찬하는 것이 의아하게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럼으로써 그들은 마을의 도덕 의식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알묏댁의 뛰어난 기술적 능력 역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작자에 대한 비판과 작품의 수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마재 사람들은 도덕성과 현실주의를 적절하게 번갈아가면서 받아들입니다. 언뜻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절충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의 한 면을 이룩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알묏댁의 면모는 시인 서정주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선 재곤이」는 그 자신보다도 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있을 재에 땅 곤, 앉은뱅이인 재곤이의 이름을 화자는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장애인인 그가 혼자의 힘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형편이 되자, 사람들은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에,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인정이 야박해 재곤이가 제 명에 못 살게 된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 와서는 허무맹랑한 것이 되어 있지만, 좀 허무맹랑하면 어떻습니까. 재곤이는 그 인정 덕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 재곤이가 어느 날부턴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천벌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올 것 같은 천벌은 오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자, 마을의 영감님은 그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간 것이리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재곤이는 아마 언제 어디선가에서 죽었겠지만, 질마재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는 마음씨는 은은한 감동을 줍니다. 한편으로 앞서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와 같은 작품에서 당대의 가난의 한 실상을 보았던 우리는 이 작품 속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보다 말도 안 되게 풍족해진 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너무 마음 씀씀이를 작게 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4.


스물두 번째 순서로 실린 시 「추사와 백파와 석전」은, 서정주 자신이 은사로 모셨던 승려 석전 박한영이 아호를 전수받게 된 실제 일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말년의 어느 날 질마재 근방에 있는 선운사에 기거하던 승려 백파를 찾아갑니다. 그는 '석전(石顚)'이라는 아호를 적어 와가지고는 '누구 주고 시푼 사람 있거던 주라'고 말하고 갑니다. 하지만 백파는 그것을 받자마자 전달해주지는 않습니다.


'백파는 그의 생전 그것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아껴 혼자 지니고 있다가 이승을 뜰 때, "이것은 추사가 내게 맡겨 전하는 것이니 후세가 임자를 찾아서 주라"는 유언으로 감싸서 남겨 놓았습니다. 그것이 이조가 끝나도록 절간 설합 속에서 묵어 오다가, 딱한 일본 식민지 시절에 박한영이라는 중을 만나 비로소 전해졌는데, 석전 박한영은 그 아호를 받은 뒤에 30년 간이나 이 나라 불교의 대종정 스님이 되었고, 또 불교의 한일합병도 영 못 하게 막아냈습니다.' 백 년을 묵혀 뒀던 석전이라는 이름은 마침내 좋은 임자를 만나 잘 쓰이게 된 것입니다. 화자는 추사 자신도 백파의 이 유지를 보고 '야! 단수 참 높구나!' 하고 감탄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또 다른 시 「시론」의 한 구절,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또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 실려 있는 「황룡사 큰 부처님상이 되기까지」와 같은 작품의 내용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송창식 가수는 서정주와의 만남에서 그가 해준 가장 인상 깊었던 말로 '시의 주제가 떠올라도 그것을 바로 쓰지 않고, 오랫동안 묵혀 두었다가 써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내용의 얘기를 했던 것을 꼽고 있습니다.(주1) 시뿐만 아니라 문화를 일구어내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완성의 시기가 될 때까지 우직하게 묵혀둘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금방 일을 처리하려고만 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한 비판이 되고도 있습니다.


그 다음 순서로 실린 「석녀 한물댁의 한숨」은 마을에 살았던 또 다른 인물인 한물댁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한물댁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까닭에 스스로 남편에게 소실을 얻어 주고 자신은 홀로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간 인물이지만, 그는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듯이 외모도 단정하게 잘 가꾸고, 얼굴엔 언제나 웃음을 띠우고 살아갑니다. 그의 웃음은 그것을 대한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말해지는데, 이는 그의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그의 처지를 딱해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한물댁이 죽고 난 뒤,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웃는 표정이던 그가 한숨 소리를 내뱉는 것을 아침 솔바람 소리 속에서 들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뒤로 아침에 솔바람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것을 한물댁의 한숨 소리로 보고, 그가 자신들의 한숨을 대신 쉬어주었으니 그 날 하루는 웃을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고자 했던 한물댁은 살아서만이 아니라 죽은 뒤에도 마을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들어주는 셈입니다. 앞서 보았던 「신선 재곤이」가 공동체의 마음이 한 사람의 일생을 따뜻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면 이 시는 반대로 한 사람의 일생이 그가 속했던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물네 번째 시 「내소사 대웅전 단청」은 내소사라는 절의 대웅보전 단청이 미완으로 남아 있게 된 경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찰 건물이 다 지어지고 단청 칠할 사람을 구할 무렵에 한 이름 모를 나그네가 나타나 자기가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겉면을 다 칠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하고 문을 걸어잠갔는데, 웬 방정맞은 사람 하나가 그것을 참지 못하고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맙니다. 그 속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새 한 마리가 단청을 칠하고 있었고, 새가 인기척에 놀라 땅으로 떨어지니 그것은 다시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승려들은 결국 단청을 칠해지다 만 채로 두기로 하고, 죽은 호랑이가 내생에 소생하라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내소사(來蘇寺)'라고 짓게 됩니다.


「풍편의 소식」과 「죽창」은 『삼국유사』에 실린 일화를 모티프로 하여, 일화 속의 내용이 후대에 끼친 여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내용의 시들입니다. 「풍편의 소식」은 앞서 또 다른 시 「내 데이트 시간」의 바탕이 되기도 했던 포산이성 설화의 내용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포산의 남쪽과 북쪽에는 승려 관기와 도성이 각각 살고 있었는데, 한쪽에서 상대방을 보려고 움직일 때면 산의 나무가 그쪽으로 기울어져 상대방 쪽에서도 마중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화자는 설화를 인용하면서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이라는 이름을 '기회 보아서'와 '도통이나 해서'로 재미있게 바꿔 놓은 뒤, 이야기의 영향으로 후대의 질마재 사람들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거 자네 어딜 쏘다니다가 인제사 오나? 그렇지만 풍편으론 소식 다 들었네' 하고 관용적으로 말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죽창」은 유명한 경문왕의 귀 이야기에서 내용을 얻고 있는 시입니다. 왕의 귀를 가려준 모자 제작자가 참다 못해 대수풀 속에서 비밀을 발설하자 나중에 대숲에 바람이 불면 그 소리가 들려왔다는 내용의 일화처럼, 후대인 지금에 와서 대나무로 엮어 놓은 창틀을 보면 마치 한용운의 시 「비밀」의 구절들이,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걸궁배미」는 농민들의 어법에 담긴 가치관을 추적하고 있는 시입니다. 민요 속에서 등장하는 말인 '걸궁배미'는 논배미 중에서도 공동으로 경작하는 곳을 뜻하는데, 걸궁은 무속에서의 굿판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자는 여기에서 농민들이 논배미의 이름을 걸궁에서 따온 것을 두고 그들이 자신의 땅을 무당 음악과 동류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 걸궁은 불교 민속에도 있으며 그것은 마치 '부처님의 고오고오 음악'과 같은 것이니, 그들이 그것까지 헤아려 말을 만들었다면 참으로 단수가 높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사숙고」는 어부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백순문네 집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맏형 순문이 풍랑으로 목숨을 잃자 세 아우는 심사숙고에 잠기는데, 여기에서 세 사람의 대처 방식이 눈길을 끕니다. 둘째 관옥과 셋째 사옥은 술에 빠져 버리고, 넷째 준옥은 특이하게도 자기 딸의 아양을 연습시켜서 '이 집 웃음과 아양을 왼 마을에서도 제일 귀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들의 심사숙고는 그들 일생에 끝맺지 못하고, 누이와 같이 눈웃음의 아양이 좋았다고 하는 준옥의 아들이 바닷일을 생계로 하면서도 어선으로 가지 않고 나룻배 사공 일을 하기로 정하면서 비로소 끝을 보게 되었다고 말해집니다. 이들 가문의 일화 속에는 전통 사회에서의 생업 전환의 어려움이 엿보이고, 또 불안정한 생활 환경 속에서 방탕이 아니면 처세 지식의 연마라는 갈림길 이외의 다른 길을 찾기가 극히 어렵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물아홉 번째 시 「침향」은 여러 대에 걸친 문화의 전승의 모습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시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령 「나그네의 꽃다발」과 같은 영원주의의 시와 내용이 이어진다고도 생각됩니다.


침향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낸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이삼백 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 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와 조류가 합수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뿐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이 시가 「심사숙고」의 다음 순서로 실려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장의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심사숙고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으면서도 질마재 사람들은 한편으로 머나먼 미래를 위해 침향을 만들어 준비하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침향을 선물하는 대상이 몇 촌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자손들이 아님은 강조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침향 선물의 대상이 지극히 불분명한 존재라는 것은 그들의 노력의 공적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이남호 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침향」은 『질마재 신화』 중에서도 생태적 삶의 태도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향은 더욱 좋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긴 시간은 향내만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세상도 좋게 만든다. 왜냐하면 몇백 년 뒤의 얼굴도 모르는 후손을 위해서 지금 열심히 참나무 토막을 만들어 바다 속에 넣어두고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고운 마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침향의 좋은 향기는 참나무와 바닷물이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먼먼 후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오늘의 수고와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의 고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2)


이러한 따뜻하고도 멋스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은 「꽃」입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꽃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가르친 까닭에 이곳 사람들은 꽃을 꺾기는커녕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예뻐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유일한 예외가 있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소가 얼마쯤 잘 자랐을 때, 새로 자란 뿔 사이에 꽃을 매달아두고 싶을 때에는 꽃을 꺾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꽃을 바라만 보며 예뻐해야 하지만, 정말로 필요할 때면 꽃을 꺾어도 된다는 마을의 규율은 흥미롭습니다. 이는 가령 앞서 보았던 「알묏집 개피떡」에서 마을 사람들이 알묏집에게 거리를 두면서도 그의 솜씨만큼은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중용의 멋을 보여줍니다.


서른한 번째 순서로 실린 「대흉년」은 가난했던 지난 시절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시입니다.


흉년의 봄 굶주림이 마을을 휩쓸어서 우리 식구들이 쑥버무리에 밀 껍질 남은 것을 으깨 넣어 익혀 먹고 앉았는 저녁이면 할머님은 우리를 달래시느라고 입만 남은 입속을 열어 웃어 보이시면서 우리들보고 알아들으라고 그분의 더 심했던 대흉년의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밀 껍질이라도 아직은 좀 남었으니 부자 같구나. 을사년 무렵 어느 해 봄이던가, 나와 너의 할아버지는 이 쑥버무리에 아무것도 곡기 넣을 게 없어서 못자리의 흙을 집어다 넣어 끄니를 에우기도 했었느니라. 그래도 우리는 씻나락까지는 먹어 치우지는 안했다. 새 가을 새 추수를 기대려 본 것이지…… 그런데 요샛것들은 기대릴 줄을 모른다. 씻나락도 먹어 치우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이 그리 살다 죽으면 귀신도 그때는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낼 것이고, 그런 귀신 섬기는 새것들이 나와 놀면 어찌 될 것인고……"


먹을 게 없어 쑥버무리에 밀 껍질을 으깨 넣어 익혀 먹었다는 설명은 당시 흉년 때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지금보다도 더 심한 흉년이 닥쳐왔던 때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얼핏 보면 할머니의 화법은 자칫 잔소리로만 들리기 십상이지만, 화자가 그의 말을 '우리를 달래시느라고', '우리들보고 알아들으라고' 한 말이라고 표현한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할머니의 말은 결국 고통스러운 현실 상황을 위로하고 극복하기를 바라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노인네의 잔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적절하게 새겨들을 것인지는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연장자의 고언을 마음에만 안 들면 우선 배격하고 보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라면 할머니의 말씀은 단칼에 무시당하기 십상이었을 것입니다.


「소×한 놈」은 마을에 살던 한 쾌활한 인물의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소×한 놈'이라는 말은, 굳이 설명한다면, 소랑 ×한 놈, 소랑 그 짓을 했으리라는 소리가 돌 정도로 자기 소를 아껴 주던 놈이라는 소리입니다. 사람 좋게 우직하고 튼실한 사내였다고 묘사되는 그는 어느 날 밤에 자기 소와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화자는 그를 두고 '아마 틀림없는 성인(聖人) 녀석이었을 거야. 그 발자취에서도 소똥 향내쯤 살풋이 나는 틀림없는 틀림없는 성인 녀석이었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자연과 어울려 살아갔던 그를 높이 평가합니다.


마지막 순서로 실려 있는 시는 「김유신풍」입니다. 『삼국유사』에는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져 사람들이 불안해하자, 김유신이 종이연에 불을 붙여 날려 보내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연출하여, 사람들을 다시 안심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시의 주인공 황먹보는 가난한 집의 자식일뿐더러 무식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총각입니다. 그는 어느 날 울타리 사이로 본 부잣집 장자의 딸에게 첫눈에 반해, 그 집에 장가를 들 속셈을 꾸리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부탁해 매 한 마리에 말방울에 종이등에 까만 찰흙을 구하게 해 놓고는, 매와 방울과 등불은 서로 연결해 놓고선 자기는 흙탕에 들어가 온 몸을 까맣게 칠해 버리고, 밤중에 그 집 대문간에 있는 감나무 위로 몰래 올라가서는 장자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장자야! 장자야! 너 저녁 먹었냐? 아마 벌써 먹었을 테지? 장자야 너는 내가 누군지 내 소리만 듣고 아직 모를 테지만 인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면 잘 알게 되야. 나는 딴 사람이 아니고, 누구냐 허면 바로 하눌님의 사자다! 되창문 좀 열어 보아라, 나를 보고 싶거든 어서 냉큼 그 되창 좀 열고 보랑게.'


장자가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보이자, 먹보는 손에 거머쥐고 있던 매를 하늘에 풀어 날립니다. 그때의 장면을 화자는 이렇게 늘어놓습니다. '아 장자 눈귀가 제아무리 밝은들 하늘로 올라가는 불하고 방울소리밖에 무얼 보고 또 들어? 그때를 놓치지 않고 년석은 아주 썩 점잖게 또 한마디 했지. "장자야 내가 하눌님 사자란 건 인제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응게 알 테지만, 일이사 딴 별것 아니고, 왜 느이 앞집에 미련둥이 황먹보 있지? 말이사 바로 말이지만 그 사람이 아직은 때를 못 만나서 그렇지 인제 두고 봐라, 쓰기는 크게 쓸 것잉게. 여러 말 할 것 믓 있냐? 왜 너의 집 큰가시내 딸 있지 않냐? 그 가시내를 덮어놓고 황먹보한테 주어라 주어! 어기면 하눌에서 큰 벌이 있을 줄을 알렷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작전은 성공합니다. 이어지는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그래 그 하늘로 날아오르는 불에, 그 방울 소리에, 이 먹보의 이 한마디가 서로 잘 어울려 가지고, 이때만 해도 너무나 지나치게 사람들의 마음이 형이상학적이던 때라 놔서 장자는 "예." 하고, 그 이뿐 딸과, 그 잘 여무는 논밭과, 좋은 요이부자리에, 살림 세간을 주어 그 먹보를 사위 삼았다는 이얘긴데, 글쎄 어땠었는지 우리 두 눈으론 똑똑히 보지 못해서 뭐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서두, 하여간에 저 김유신의 삼국유사 속 이얘기가 이렇게 번안되어 내려온 걸 들어보는 건 꽤 재미가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민담이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하여간 이 시는 줄거리 자체의 재미와 함께 시인 특유의 기가 막히는 입담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의 마지막 문장에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이라는 말은 근대 이전의 신비주의적 가치관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가령 『서으로 가는 달처럼…』에 실린 「런던 탑의 수수께끼」와 같은 작품에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시집의 2부인 '노래'는,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나중에 그의 열한 번째 시집인 『노래』에서 다른 시들과 섞여서 묶이게 됩니다. 집필 시기에 있어서 십여 년의 시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들은 편의상 시집 『노래』를 다룬 부분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밖에, 『질마재 신화』의 이듬해에 출간된 일곱 번째 시집 『떠돌이의 시』의 '산문시' 편에 질마재 시편의 속편 격인 시 세 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여기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앞 순서로 실린 시는 「당산나무 밑 여자들」입니다.


질마재 당산나무 밑 여자들은 처녀 때도 새각시 때도 한창 장년에도 연애는 절대로 하지 않지만 나이 한 오십쯤 되어 인제 마악 늙으려 할 때면 연애를 아조 썩 잘한다는 이얘깁니다. 처녀 때는 친정부모 하자는 대로, 시집 가선 시부모가 하자는 대로, 그다음엔 또 남편이 하자는 대로, 진일 마른일 다 해내노라고 겨를이 영 없어서 그리 된 일일런지요? 남편보단도 그네들은 응뎅이도 훨씬 더 세어서, 사십에서 오십 사이에는 남편들은 거이가 다 뇌점으로 먼저 저승에 드시고, 비로소 한가해 오금을 펴면서 그네들은 연애를 시작한다 합니다. 박푸접이네도 김서운니네도 그건 두루 다 그렇지 않느냐구요. 인제는 방을 하나 왼통 맡아서 어른 노릇을 하며 동백기름도 한번 마음껏 발라 보고, 분세수도 해 보고, 김서운니네는 나이는 올해 쉬흔하나이지만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이뻐졌는데, 이른 새벽 그네 방에서 숨어 나오는 사내를 보면 새빨간 코피를 흘리기도 하드라구요. 집 뒤 당산의 무성한 암느티나무 나이는 올해 칠백 살, 그 힘이 뻗쳐서 그런다는 것이여요.


가부장적 가치관이 지배적인 과거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유를 제한당한 채 살아갔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이 마흔에서 쉰이 다 되도록 연애는커녕 일에만 치여서 살아가다가, 남편이 먼저 죽고 나면 그때가 돼서야 연애를 시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한가해 오금을 펴'게 될 수 있고, '방을 하나 왼통 맡'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이뻐'질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이 하는 연애는 앞서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에서 다뤄졌던 풋풋한 연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들의 연애는 젊은 시절 제한당해야 했던 성욕을 분출하는 목적으로 이뤄집니다.


마을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두고 화자는 마을의 당산나무가 지닌 힘 때문이라고 말해진다고 설명하지만, 우리는 이 또한 현실을 재치 있게 포장해 내는 시인의 '구라'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 「단골 암무당의 밥과 얼굴」에서도 화자는 마을의 여자 무당이 누구보다도 하얀 얼굴을 지닌 것이 귀신이 먹다 남긴 쌀로만 밥을 지어 먹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시 「사과 하늘」에서는 사과나무 하나 없는 마을에 누가 사과 한 알을 들고 오는 날이면 하늘이 온통 사과 맛으로 변하곤 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령 후자의 서술이 가난 문화의 또 다른 일면에 대한 비유임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앞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질마재 신화』가 『신라초』나 『동천』에 대하여 갖는 강점의 하나는 이 시집의 '구라' 섞인 산문시체가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내용 속에 현실과 허구가 섞여 있음을 인식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신라초』와 『동천』 시절의 서정주를 샤머니스트로까지 오해하게 만든 것은 시인이 설화의 내용을 실제로 믿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지만, 이 시집에 와서는 그 '구라'라는 성격 덕에 시인이 그것을 얼마간 허구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거기에 억지스러운 감이 없지 않은 '신화'라는 이름까지 붙이고 있는 것은, 물론 귀신을 곧 신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의 '구라'가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들을 특별한 존재로 승화시키고픈 마음에서 일어난 것임을 생각하게도 합니다. 「당산나무 밑 여자들」에 관해 신범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산나무 밑 여자들'은 초월적인 영원에 자신의 정신을 담고 있던 귀족적 존재인 사소나 선덕여왕과는 달리 이 지상의 밑바닥에서 노예처럼 자신의 육신을 닳게 했던 여인들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노예처럼 자신들의 생을 차압당한 채 이리저리 다른 사람들의 뒤치다꺼리에 몸을 바치지만, 그 고난을 통해서 더욱 다져지게 된 삶의 씨앗들을 얻는다. 그녀들은 젊음의 세월을 모두 보낸 뒤에 비로소 '연애'를 시작한다. 늙었을 때 발아하는 이러한 열정은 그녀들을 영웅적인 존재처럼 보이게 한다. 그녀들은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이 요구하는 것에 마침내 다다른다. (…) 그녀들은 우리나라의 저 가난한 대지의 살결로 만들어진 질그릇들이다. 미당은 그 질그릇들에 이 땅에서 이루어진 삶으로서의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 찬사를 덧붙이고자 한다. (주3)


어쩌면 서정주가 질마재 시편에 능청스럽게 '신화'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러한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 EBS '싱어즈: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에서의 송창식 편(2020) 참조.

2) 이남호, 「생태마을로서의 질마재」,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현대문학, 2012).

3) 신범순, 「질기고 부드럽게 걸러진 '영원'」, 『한국 현대시의 퇴폐와 작은 주체』(신구문화사, 1998).

keyword
이전 13화지는 게 한결 더 멋이 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