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전집 강독 12: 『질마재 신화』에서 세 편
서정주의 중기 문학을 대표하는 『신라초』와 『동천』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 대해서, 윤재웅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의 주요한 두 테제는 생명의 탐구와 영원성의 지향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서정주 시의 변화와 지속의 원리를 이끌어가는 역동적 상상력의 원천임과 동시에 가장 서정주적인 미학 강령이다. (…) 미당이 자신의 테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일련의 과정과 관련하여 연구자들에게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는 아마도 초기 시와 후기 시 사이의 현저한 성격 차이에 대한 해석학적 입장의 상반된 태도일 것이다. 예컨대 『화사집』에서 보이는 놀라운 갈등의 미학이 『신라초』나 『동천』에서는 '고통의 자각에 대한 정도가 점점 희박해'(김인환, 「서정주의 시적 여정」) 가는 정태적 관념주의에 빠진다고 진단함으로써 서정주의 시적 진보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는 관점과, 그의 시를 발생론적 진화 과정을 내장한 유기체적 구조로 파악하면서 이른바 '지옥에서 열반으로'(천이두, 「지옥과 열반」) 가는 미학적 관성의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관점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거리가 그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미당의 시는 미학적으로 진보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인 셈이다. (주1)
이는 『신라초』를 다룬 부분의 첫머리에서도 언급한 점이지만, 시인의 나이 40대와 50대가 되는 기간에 걸쳐서 신라정신과 불교정신을 통하여 집요하게 추구된 그의 이른바 영원주의, 그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투영된 두 시집 『신라초』와 『동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옥의 갈등을 열반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노력이었다고 말하는 찬사와 현실을 도피함으로써 고통에 대한 자각의 정도가 희박해 간다는 혹평은 그 두 측면을 집약적으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 점을 차치하고 그의 영원주의를 일단 긍정적인 것이라고 치더라도, 이 기간을 넘어선 시기의 시인 서정주가 어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정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만을 계속해서 시의 주제로 다룬다면 결국 그것은 동어반복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슬아슬한 위험성은 『동천』 직후의 소작을 모은 『서정주문학전집』 수록 시편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이 작품들이 전작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딱 『동천』만큼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작품들이 전작과 동일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까닭에, 독자들은 그 연속성 때문에 『서정주문학전집』 속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마치 『동천』의 부록을 읽는 듯한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천』의 세계는 그 자체로 지속해 나갈 동력이 적은 세계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김현 평론가의 책 『상상력과 인간』에는 『동천』이 출간된 직후에 씌어진 「1969년의 문학적 상황 1」이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그 중 『동천』을 다룬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윤회로서의 삶을 테마로 잡고 있으면서도 『신라초』와 『동천』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신라초』의 가장 큰 특색은 『동천』에 실린 그 시절의 시인 「마른 여울목」과 「무의 의미」가 내보여주듯이 윤회의 밑바닥에 불화, 냉소, 허무주의가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천』에서는 윤회의 밑바닥에 사랑이 깔려 있음을 곧 알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차이이다. 방황과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은 되풀이된다'라는 윤회 사상을 통해 겨우 정신의 안정을 바라볼 수 있었던 그가, 점차 사랑을 통해 윤회 사상의 냉혹한 비정주의를 수락,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최근에 즐겨 쓰고 있는 여성적 이미지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을 통해 사물-물질의 유전은 그 기계론적 비정성을 탈피하여 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통한 새로운 내적 공간을 획득한다. 그 내적 공간이야말로 바로 그의 '영원'이다. 이 영원은 그것이 화합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분열을 속성으로 갖고 있는 시적 언어에 수락되기 힘들다는 난점을 갖고 있다. 그의 영원이 계속 언어로써 표현될 수 있을까? 그의 시편들이 점점 짧아져가고 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관찰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2)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것이 바로 여섯 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입니다. 이 시집은 무엇보다도 이전 시집들에서 부분적으로 시도되었던 산문시의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또 '질마재'라는 시인의 고향을 모티프로 한 공간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됩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참신성은 막다른 곳에 다다른 서정주 시의 한 돌파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까지 합니다.(주3) 김현 평론가는 위의 책에 실린 또 다른 글에서, 당시 새롭게 대두된 산문시의 특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문학에서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시의 빈번한 시도와 산문시의 시적 성공이라는 두 측면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 산문시는 한국 시의 가장 큰 조류 중의 하나인 시각적 이미지의 편중을 벗어나서 새로운 한국 시의 지평을 열려는 몸부림으로 생각된다. 특히 「동천」 등의 단시 실험에 집착해 있던 서정주와 한국적 리듬 발견에 총력을 기울이던 송욱의 산문시 실험은 젊은 시인들의 산문시와 함께 주목에 값한다. (…) 그 두 시인이 비슷한 시기에 운율 탐구의 시가에서 산문시로 관심의 폭을 넓힌 것은 그들의 한국어에 대한 탐구의 어떤 결과를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 시인의 산문시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① 정형률에 관심을 보인 후에 산문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한국어가 응축된 형태와 풀어진 형태의 그 둘 다에 견디어낼 수 있는가라는 데 대한 시인의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산문시가 성공한다면 음절 단위의 한국 시에 꽤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② 그 산문시들은 식민지 치하의 그것과는 달리 실연, 좌절 등의 감정적 탄식을 노래하지 않고, 인연ㆍ주체ㆍ객체ㆍ말 등의 상관관계 등을 천착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 시가 관념적인 것을 쉬운 한국어로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려운 관념이 없이, 그리고 행과 행 사이의 거리에서 우러나는 암시력에 대한 의존 없이 쉬운 한국어로 쓰인 산문시가 가장 순정한 단계의 관념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주목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주4)
물론 서정주가 이전에 산문시의 스타일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초기의 걸작인 「자화상」부터가 나름대로 산문의 호흡을 지닌 작품이고, 『귀촉도』에 실린 「무제」나 「만주에서」 역시 리듬감을 가진 산문시체를 적용한 명편입니다. 이후 『서정주시선』에 실린 「나의 시」나 「상리과원」, 『동천』에 실린 「한양호일」과 같은 작품은 완연한 산문투를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마재 신화』는 이렇듯 시집 속에서 부분적으로 쓰이던 산문시체를 아예 완전히 시집 전체의 스타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형식만큼이나 새로운 것은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인 '질마재'의 특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질마재'가 '신라'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그곳이 비전의 공간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 무렵부터 시인은 현실을 선도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쪽으로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게 됩니다. 이것은 이후의 서정주 시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의 하나로, 많은 평자들로 하여금 그가 이 시집을 끝으로 비전에 대한 탐구를 끝낸 것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관찰자로의 변화는 후기 시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중층적인 언어에도 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시를 다소 풀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도 있습니다.
가령 『신라초』가 비판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하나의 완성된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로 와서는 그러한 일관성을 잃고 있는 것은, 시인의 기량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보다도 이러한 후기 시의 성격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자가 철두철미한 방향성의 주도 하에 완결된 세계와 왜곡의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제작된 반면 후자는 역사의 총체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관찰자로서의 무의식적인 시각 때문에, 한편으로는 방향성을 설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 시편의 논리가 서로 상충되는 양상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길어지기는 했지만 하여간 『질마재 신화』는 서정주 시의 흐름에서 중기 시에서의 막힘을 돌파하고 후기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종호 평론가는 서정주의 시를 다룬 글인 「소리 지향과 산문 지향」에서 이 시집이 시인 자신에게도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작품 자체로서도 하나의 문화사적인 보고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갑년이라면 우리 쪽에서는 거의 절필의 시기로 인정되었다. 예외적인 소수들이 그 연치에 어울리는 역사 고담에 손대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미당의 경우 『질마재 신화』에서 확립한 산문 양식을 주조로 한 변주를 통해서 한국사에 가한 시적 논평인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나 시로 쓴 자필 이력서인 『안 잊히는 일들』을 적어낸 것이다. 이들 시집 속의 시편들이 한결같이 질마재 산문투를 채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소재라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서 서슴없는 산문으로 접근해가고 독보적인 시적 행보를 60대 이후에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질마재 신화』의 실험과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질마재 신화』 제1부 33편은 그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전통사회 기층민 가난문화의 세목이다. 구접스럽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삶의 결이 경제적인 처리 속에서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 기층민에 대한 공감적 자세를 주조로 한 작품들이 편향된 시각이나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있는 대로 그리지 못한 기층민의 실상을 시인이 『질마재 신화』를 통해서 보충하며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사태이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가난문화에서 긍정의 세목을 열거하고 있는 것은 추상적 구호적인 애정과 심정적이고 축적적인 애착 사이의 거리와 차이성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기층민들의 생활에 대한 공감적 탐구와 기술을 가령 민중문학이라고 한다면 『질마재 신화』도 가장 독자적이고 성공적인 민중문학의 하나가 될 것이다. (주5)
특히 후자의 언급은 이른바 민중문학을 내세운다면서도 서정주를 대충 어용 문인쯤으로 평가하려는 어설픈 문학인들이나 문학 독자에 대한 뼈를 때리는 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이 수록된 책인 『문학의 즐거움』에는 김동리의 초기 단편소설을 다룬 또 다른 글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김동리의 소설집 『무녀도』와 『황토기』 그리고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가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민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고 또 그것을 가장 훌륭하게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시인 작가 중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주의에 속했던 김동리와 서정주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민중의 삶을 가장 훌륭하게 담은 작품들을 썼다는 것은 다소 시사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인의 나이 예순 무렵인 1975년에 출간된 『질마재 신화』는 1부 '질마재 신화'와 2부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고향 소재의 산문시들이 실려 있는데, 이 작품들은 1971년과 1974년에 문예지 『현대문학』과 『시문학』을 통해 연재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이른바 연작시라 불리기도 하는데, 서정주의 이 연작시 형식의 시도는 이후 왕성하게 계속돼서 열세 번째 시집인 『산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2부 '노래'는 1973년 한 해 동안 잡지 『월간중앙』에 한 편씩 연재된 정형시풍의 작품들로, 나중에 열한 번째 시집인 『노래』에 재수록됩니다. 시집의 발문을 쓴 박재삼 시인은 이 시집에서 그가 산문시와 정형시를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감탄하고 있습니다.
시집의 첫 번째로 실려 있는 작품은 「신부」입니다. 『질마재 신화』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체로 화자의 유년기 일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는 것과 민간 설화의 내용을 모티프로 한 것의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합니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사실 비극적입니다. 이 시의 내용은 그냥 읽었을 때는 설화가 으레 그렇듯이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다가오기 쉽지만, 곱씹다 보면 전근대 사회에서의 한국 여성에게 부과되어 있었던 정절과 관련한 억압을 은근히 꼬집고 있는 내용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시 속에서의 신부는 사실도 아닌 오해로 인해 해명의 기회도 없이 남편에 의해 결별을 당하고 맙니다. 이후 집 안에서 같은 자세로 틀어박혀 앉아 있었다는 신부와 멀쩡히 밖에서 돌아다녔다고 말해지는 신랑의 모습 또한 대조적입니다. 혼인했다가 헤어진 아내의 재혼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던 반면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홀로 살다가 죽으면 열녀라고 높이 평가한 당대 사회의 시선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요컨대 흥미로운 허구의 이야기 속에 철저하게 현실적인 삶의 양상을 은근슬쩍 집어넣고 있는 점이 이 시의 매력이고 깊이인 셈입니다. 유종호 평론가는 그것을 두고 시인이 '구라'를 잘 친 것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합니다.
50년이나 된 시체가 썩지도 않고 매운재로 내려앉는다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대단한 '구라'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구라'야말로 민화의 불가결한 요소다.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얘기는 대체로 허풍과 과장과 얼마쯤의 거짓이 구성 요소라 할 수 있다. (…) 20세기 후반에 많은 독자를 모았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매력도 특유한 구라에서 나왔다. 가지를 잘리고 피를 철철 흘리는 수목, 젊은 유혹자의 몸을 싸고 심상치 않게 덤벼드는 누런 나비 떼,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돼지꼬리가 달린 갓난이, 당신 때문에 22년 동안 울었다고 실토하는 하녀의 삽화 등은 모두 작가의 구라다. 그의 문학을 가리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했는데 그의 구라가 생생한 구체적 사회 현실의 맥락에서 적정한 세목 구실을 했기 때문에 그런 역설적인 정의가 생겨난 것이리라.
「신부」는 전해 오는 민화에 시인이 적정한 세목을 첨가해서 마련한 것일 터이다. 언뜻 황당무계한 듯이 보이는 민화를 시인의 언어 마술사 솜씨가 어엿한 산문시로 변개해 놓고 있다. 이 작품의 밑그림이 되어 있는 민화가 전해 주는 조언이란 어떤 것일까? 까닭 모르게 방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신랑을 무한정 기다리고 앉아 있는 순종과 정절을 일변 기리면서 일변 권면하는 것이 당초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칠거지악에 대해 유권 해석을 내리는 것은 가부장적 질서의 구체제에서 남성이었다. 성적 충동의 징후도 음탕함의 범주에 속한다면 모든 것은 남성의 일방적 독단적 판단에 의해서 가늠되게 마련이다.
민화에는 반드시 체제 옹호적 요소만이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민중적 전복적인 관점이 들어 있기도 하다. 칠거지악이란 비인간적 제도에 의해서 희생된 한 여성의 일생을 통해서 전통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물밑 항의를 꾀하고 있다고 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신혼 초야에 정사를 서둘렀다 해서 소박맞는 여성의 얘기는 곳곳에 전해 오고 김동인의 미완 장편 『잡초』에도 나온다. 어쨌거나 「신부」는 전통적 구체제 아래서의 여성의 운명을 몇 줄로 집약해서 보여 준다. 열녀나 효부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여성의 수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신부」의 양면성은 주목과 검토에 값한다. (주6)
두 번째 시 「해일」에서는 이보다는 조금 나은 연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바로 화자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동천』에 실린 시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과 같은 소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외할머니네 집 마당에는 바닷물이 넘치면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흥건히 고이는 날이 있었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그때만 되면 웬일인지 한 마디도 않고 얼굴빛이 불그레해진 채로 바다 쪽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는 지금에 와서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하면서, 어부였으며 화자가 태어나기 전 바다에 빠져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묻힌 바닷물이 마당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어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견 감동적이면서도 거친 삶을 살아야 했던 옛적 사람들의 슬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입니다.
세 번째 시 「상가수의 소리」는 질마재 마을에 살았던 독특한 인물의 하나를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질마재의 상가수(上歌手)는 이승은 물론 저승에까지 뻗칠 만큼 기막힌 노랫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해집니다. 화자는 그가 노래를 하지 않는 날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상가수는 뒷간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왜, 거, 있지 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 작파해 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오줌 항아리, 거길 명경(明鏡)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똥오줌 항아리를 거울삼아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밀어올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화자는 거울도 이만큼은 특별했기에 그런 노랫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 속에서 줄곧 가수로 지칭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직업은 투박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투박하나 견실한 삶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솜씨의 멋 때문에 그를 가수라 불러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해학적인 장면 속에서 높은 경지의 예술의 창출 가능성을 보는 화자의 시각은 흥미롭습니다. 이남호 평론가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가수는 똥오줌 항아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다듬는다. 똥오줌 항아리는 인분을 받아두는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항아리다. 그것을 명경으로 삼아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는 가수의 행위는 어쩌면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을 피워내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달리 생각하면, 똥오줌은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아주 좋은 거름이다. 가장 더러운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을 북돋우는 셈이다. 그렇다면 똥오줌 항아리는 아름다움도 만들어내고, 생명력도 북돋워주는 힘을 지닌 항아리다. 이 똥오줌 항아리를 잘 이용할 줄 아는 가수였으니 그의 노래가 이승과 저승에 두루 무성할 만큼 탁월한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주7)
이어지는 시 「소자 이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에서는 또 다른 독특한 인물, 이 생원네 마누라가 등장합니다. 이 생원네 무밭에서 자란 무는 질마재 마을에서 제일 무성하고 굵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그 집 마누라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말해집니다. 화자는 이 마누라가 기골이 장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신라의 지증왕 부부 같은 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마을 아이들이 무밭을 질러가려다가 그에게 들키면 '저놈을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더운 오줌을 대가리에다 몽땅 깔기어 놀라!' 하는 엄포를 듣고서는 다들 도망가기 일쑤였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이 생원네 마누라는 앞서 「신부」에서 등장했던 여성과는 정반대의 면모를 보이는, 아주 여장부 스타일의 인간형을 보여줍니다.
다섯 번째 시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는, 화자가 소년 시절에 겪었을 미묘한 연정의 감정이 느껴지는 한 순간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동이 갓의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그 애는 그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겠지요.
절로 장면이 그려지면서 미소가 지어지는 시입니다. 소녀가 물동이의 물을 안 흘리고 갔을 때에만 웃음을 짓는 것은 화자인 소년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자기 일을 온전히 성취한 데에서 오는 희열에서 오는 기쁨이 더 컸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잘 수행하고 이에 기뻐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소녀의 모습은 건강한 생활의 바탕에서 출발하는 사랑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또 소녀가 자신의 목표에 성공해 자기에게 눈웃음 짓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화자인 소년의 모습 또한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신발」 역시 유년 시절에 일어난 한 사건을 회상하고 있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신발을 개울물에 떠내려 보내고 만 뒤로 그 뒤로 사 신은 신발이 모두 그것의 대용품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화자가 추억하는 옛날은 가난한 시절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은 뒤에 와서는 그것보다 훨씬 비싸고 좋은 신발을 충분히 사낼 수 있었을 것이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모두 '대용품'이라고 의식하게 되는 것은 그때 신발을 떠내려보내고 만 기억의 아쉬운 여운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며, 또 그 이후로 신은 모든 신발들이 그때에 신었던 바로 그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의 '신발'은 화자를 비롯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향이 갖는 의미를 잘 드러내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어린 시절 떠내려간 신발을 통해 사람들에게 고향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어떤 비유보다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시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는 또 다른 정감 가는 추억의 한 장면을 툇마루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어머니한테 훈계를 받고 마음이 괴로워질 때마다 화자는 외할머니네 집에 있는 뒤안의 툇마루를 찾아가 그가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먹으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여러 대 전부터 반들반들하게 닦여 와서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부연합니다. 신발의 일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시에서의 툇마루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두 개씩 추억하곤 하는 유년 시절의 위로를 주는 공간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에게 있어서 고향 또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정감만큼이나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 어린 생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합니다. 해학적인 어조 때문에 간과하기가 쉽지만 가령 이어지는 시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도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질마재 마을의 여든 살 먹은 눈들 영감은 손자가 가끔씩 마른 명태를 사다 주면, '어떻게 그렇게는 머리끝에서 꼬리끝까지 쬐끔도 안 남기고 목구먹 속으로 모조리 다 우물거려' 먹어치우는 용한 기술을 선보인다고 말해집니다. 치아도 성하지 않고 깡마른 체구에 머리에는 귀신 같이 낡디낡은 탕건이 씌워져 있었다던 묘사가 덧붙여집니다. 영감의 이러한 기술은 실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빚어진 것일 터입니다. 뼈도 많은 마른 명태를 단번에 삼켜 버리는 그의 재주는 웃기고도 슬픈 심정을 줍니다.
「내가 여름 학질에 여러 직 앓아 영 못 쓰게 되면」은 전근대 사회의 또 다른 전유물인 민간요법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화자가 학질을 지독하게 앓고 있으면,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가 난데없이 바람이 잘 통하는 커다란 바위 위에 엎드리게 하고는 복숭아 잎을 밥풀로 붙여 놓고서 한참 동안 꼼짝 말고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면 아버지가 그를 다시 업어 데리고 갔고, 그러면 또 어느새 화자는 낫더라는 것입니다. 이 시는 특이하게도 대놓고 완전히 잘못된 문제 해결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시집의 매력적인 어투에 이끌려 질마재 마을을 살고 싶은 곳으로 느끼려는 독자들에게 다시 비판적 거리를 만들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점 또한 이 시집의 작품들이 고향의 좋은 모습을 가려 쓴 것이기보다도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마을의 미신을 소재로 다룬, 이어지는 시 「이삼만이라는 신」 역시 그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이삼만은 영조 대에 살았던 명필인데, 질마재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름이 생뚱맞게도 여름에 징그러운 뱀을 쫓아내는 목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음 정월 처음 뱀날이 되면, 질마재 사람들은 먹글씨 쓸 줄 아는 이를 찾아가서 이삼만(李三晩) 석 자를 많이 많이 받아다가 집 안 기둥들의 밑둥마닥 다닥다닥 붙여 두는데, 그러면 뱀들이 기어올라 서다가도 그 이상 더 넘어선 못 올라온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이삼만이가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그 붓 기운을 뱀아 넌들 행여 잊었겠느냐는 것이지요.'
시의 처음과 끝에는 마을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사실이 부연되어 이 희한한 광경이 주는 해학성을 키워 줍니다. 민간요법이나 미신을 설명할 때에도 화자의 일견 긍정적인 어조가 잃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고향의 재미있는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고 한편으로 그것이 기록될 만한 민속적 혹은 정신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낡은 인습 속에서 긍정적 세목을 찾으려는 것은 과거의 전면적 부정에 대한 유보감이라기보다 과거 속에 묻혀 있는 지혜의 습득에서 가난 문화를 떠받쳐 온 실체를 눈여겨보자는 태도의 소산일 것이다'라고 유종호 평론가는 말하고 있습니다.(주8) 질마재 사람들이 대체로 글을 읽을 줄은 몰라도 '사람이 무얼로 어떻게 신이 되는가를 요량해 볼 줄 아는 사람은 퍽이나 많'다고 말해지는 것은 그들이 지식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삶의 안목에 있어서는 고단수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간통사건과 우물」은 마을의 풍습을 소재로 한 또 다른 독특한 작품입니다. 마을에서 드물게 누구누구가 간통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마을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아파해야만 했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그런데 그 뒤로 이어지는 마을 광경의 묘사가 아주 특이합니다. '맨 먼저 동네 나팔이란 나팔은 있는 대로 다 나와서 "뚜왈랄랄 뚜왈랄랄" 막 불어자치고, 꽹과리도, 징도, 소고도, 북도 모조리 그대로 가만 있진 못하고 퉁기쳐 나와 법석을 떨고, 남녀노소, 심지어는 강아지 닭들까지 풍겨져 나와 외치고 달리고, 하늘도 아플밖에는 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외양간에 있는 여물을 죄다 가져와 마을에 있는 모든 우물에 뿌려 메꾸어 버리고, 그 뒤로 한 해 동안은 우물물을 길어 먹지 못하는 채로 다른 방법을 통해서나 물을 얻어서 써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됩니다.
아마 앞부분의 설명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하늘에 요란하게 제사 비슷한 것을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간통사건이 개인 또는 가정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전체가 이런 풍습을 벌이는 것은 공동체적인 책임을 통해 앞으로는 부정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히 무거운 분위기로 나갈 것 같은 장면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김주연 평론가는 희극적인 처리가 서정주 후기 시에서의 주요한 특성의 하나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 앞에서 '하늘은 웨- 하니 쏘여 몸써리가 나야만 했던 건 사실입니다'는 대목에서 간통사건으로 인한 비극성을 예감했던 독자들은, 뒤이어 계속되는 사건의 진행을 보면서 홀연히 미소를 머금게 된다. 비극이 슬그머니 희화되면서 희극으로 바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간통사건에 관한 마을 분위기의 묘사도, 그것은 마치 축제의 한 장면 같다. 하늘이 몸서리를 쳤다는 말에서 하늘의 슬픔, 하늘의 분노를 예감했던 우리는 그 몸서리가 나팔, 꽹과리, 징, 북 등이 법석을 떨어대는 과정에서 몸살이 났다는 것임을 알고서는 얇은 배신감과 더불어 잠시 웃지 않을 수 없다. 비극의 희극화 - 미당 신비주의의 성격은 이 근처에서 결정된다. (주8)
열두 번째 시 「단골무당네 머슴아이」는 초라한 신분의 아이가 생활의 산전수전을 거치면서 애늙은이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시입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단골무당네 장고와 소고, 북, 징과 징채를 늘 항상 맡아 가지고 메고 들고, 단골무당 뒤를 졸래졸래 뒤따라 다니는 게 이 아이의 직업이었는데, 그러자니, 사람마닥 직업에 따라 이쿠는 눈웃음 - 그 눈웃음을 이 아이도 따로 하나 만들어 지니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웃음 속엔 벌써 영감이 아흔아홉 명은 들어앉았더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능글맞은 성격을 지니게 된 그는 어느샌가 말투도 걸쭉하게 바뀌고 걸음걸이도 아주 능청스럽게 되어 갔다고 말해집니다. 이러한 내용은 이 아이가 어린 나이에 지독할 정도로 현실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까치마늘」은 단군신화의 내용을 변용한 설화를 모티프로 다루고 있는 시입니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있을 적에 까치도 찾아와 신부를 지망하려 했다가, 마늘을 못 먹겠어서 그 대신으로 먹었던 것이 지금의 까치마늘이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고 아린 걸 못 참아서 날뛰어 달아난 호랑이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한테도 대들고 으르렁거리게 되었지만, 까치는 그래도 못 견딜 걸 먹지는 안했기 때문에, 말씨도 행동거지도 아직도 상냥한 채로 새 사람이 보일 때마닥 반갑고도 안타까와 짹짹거리고 가까이 온다는 것입니다.'
「분질러 버린 불칼」은 민중에게 각각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에서 무력을 가진 존재인, 의적과 오랑캐와 관련된 일화를 다루고 있는 시입니다. 화자는 질마재 사람들의 대부분이 천둥번개나 벼락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역적인지 의적인지 누군가가 어느 번개 치는 날에 내리치던 벼락의 불칼을 잽싸게 붙잡아서는 분질러 버린 일이 있은 뒤로는 그렇게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에 들어앉아서 천둥이 멎을 때까지 숫자를 계속해서 세어야 하는데, 하나에서 열까지의 단어를 변형해서 세는 숫자의 내용은 오랑캐와 관련된 비속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꽃 시간」은 질마재 여자들 사이에서 쓰이는 '박꽃 때'라는 은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내용의 시입니다. 화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꽃 핀다 저녁밥 지어야지 물 길러 가자." 말하는 걸로 보아 박꽃 때는 하로 낮 내내 오물었던 박꽃이 새로 피기 시작하는 여름 해 어스럼이니, 어느 가난한 집에도 이때는 아직 보리쌀이라도 바닥나진 안해서, 먼 우물물을 동이로 여나르는 여인네들의 눈에서도 간장에서도 그 그뜩한 순백의 박꽃 시간을 우그러뜨릴 힘은 하늘에도 땅에도 전연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은어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여유가 곧 정신적 여유의 밑천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말피」에서는 정분이 있었던 이성을 떼어내기 위해 말 피를 뿌리는 방법을 쓰는 풍습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써 마흔에도 예쁜 외모를 품고 있었다는 감나뭇집의 막동이네 과부 어머니가 이 방법을 잘 써먹은 얘기가 언급됩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성적 파트너를 두고 그 덕으로 전답 마지기나 좋이 사들인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에 상대의 집 사립문에다가 말 피를 쫙 뿌려 놓았고, 그걸 본 사내는 분해하면서도 그에게서 떨어져나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과거 사회에서 일어났을 법한 연애의 성립과 결별의 내용을 진진하게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열일곱 번째로 실린 「지연 승부」는 연날리기 놀이의 장면을 통해 전통 사회에서의 가치관을 되새겨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싸움에는 이겨야 멋'이란 말은 있습지요만 '져야 멋'이란 말은 없사옵니다. 그런데 지는 게 한결 더 멋이 되는 일이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 마을에선 하늘에 만들어져 그게 일 년 내내 커어다란 한 뻔보기가 됩니다.
승부는 끈질겨야 하는 거니까 산해의 끈질긴 것 가운데서도 가장 끈질긴 깊은 바닷속의 민어 배 속의 부레를 꺼내 풀을 끓이고, 또 승부엔 날카론 서슬의 날이 잘 서 있어야 하는 거니까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새금파리들을 모아 찧어 서릿발같이 자자란 날들을 수없이 만들고, 승부는 또 햇빛에 비쳐 보아 곱기도 해야 하는 것이니까 고은 빛갈 중에서도 얌전하게 고은 치자의 노랑 물도 옹기솥에 끓이고, 그래서는 그 승부의 연실에 우선 몇 번이고 거듭 번갈아서 먹여야 합죠.
그렇지만 선수들의 연자새의 그 긴 연실들 끝에 매달은 연들을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 우에 날리고, 막상 승부를 겨루어 서로 걸고 재주를 다하다가, 한쪽 연이 그 연실이 끊겨 나간다 하드래도, 패자는 "졌다"는 탄식 속에 놓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해방된 자유의 끝없는 항행 속에 비로소 들어섭니다. 산봉우리 우에서 버둥거리던 연이 그 끊긴 연실 끝을 단 채 하늘 멀리 까물거리며 사라져 가는데, 그 마음을 실어 보내면서 '어디까지라도 한번 가 보자'던 저 신라 때부터의 한결 같은 유원감에 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의 생활에 실패해 한정 없는 나그넷길을 떠나는 마당에도 보따리의 먼지 탈탈 털고 일어서서는 끊겨 풀려 나가는 연같이 가뜬히 가며, 보내는 사람들의 인사말도 "팔자야 네놈 팔자가 상팔자구나" 이쯤 되는 겁니다.
시를 읽으면서 먼저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연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입니다. 재료들을 모아 만드는 묘사의 세세함도 세세함이지만, 연 만들기의 재료와 승부의 특성을 서로 연결 짓는 설명은 단순한 묘사에 그칠 수 있는 문장들에 그야말로 시적인 매력을 배가시켜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산문시의 독자들은 이야기의 내용에 홀려 말씨의 매력을 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곧 산문시가 시라는 당연한 사실에 대한 망각과도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연날리기의 묘미는 말할 것도 없이 한 연의 줄이 다른 연의 줄을 끊어버리면서 이기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연이 끊어졌을 때의 지는 것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끊어진 연은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 된 셈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멀리 날아가는 연은 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곧 그것은 사람들에게 탈출 심리의 욕구를 해소시켜 줍니다. 그것은 가령 별 일도 없이 살아가며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고 말하던 「봄」의 화자의 심리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을 구성원의 불가피한 떠돌이 생활을 일견 부러워하는 태도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유종호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싸움에서 패배한 연은 실을 끊기고 끊긴 연 실을 단 채 하늘 멀리 까물거리며 사라진다. 보통 연싸움에서 진 쪽은 열패감을 느끼게 마련이지만 질마재 사람들은 '어디까지라도 한번 가 보자'는 유원감에 젖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신분의 고정성으로 사회 이동이 불가능하고 또 직업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어 지리적 이동도 희귀했던 재래식 음력의 세계에서 하늘 높이 도망가는 연은 그대로 고향 탈출과 자유해방의 기호가 된다. 따라서 개화 이후 마을의 생활에서 실패해 나그넷길을 떠나는 사람도 가뜬히 실 끊긴 연처럼 떠나며 고향 잔류자들도 떠나는 사람을 일변 부러워한다. (…)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꿈꾸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경험이듯이 도망친 연에 대한 자기 동일화는 해방적 기능을 갖는 것이다. 「지연 승부」는 젊은 시절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고 적은 시인이기에 설득력 있게 쓸 수 있었던 시편이다. 연날리기나 연싸움의 놀이 기능이 국민 대다수가 항공편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대에 쇠퇴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10)
이어지는 시 「마당방」은 마당을 일종의 토방의 용도로 쓰던 시절, 전통 사회의 주거공간에서 마당이 가지고 있었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내용을 하고 있습니다. 마당방의 다양한 기능에 대한 화자의 설명은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전통 가옥이 주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게 해줍니다. 「소망(똥깐)」 역시 같은 맥락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소망이라는 말을 변소의 의미로도 썼던 모양입니다. 화자는 가장 더러운 것으로 느껴지기 쉬운 변소 항아리가 사실은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의 하나이고 또 집안에서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이 놓이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킵니다. '상감 녀석은 궁의 각장 장판방에서 백자의 매화틀을 타고 누지만,' 거기에 비하면 해와 달이 잘 비치는 곳에 큼지막하게 포근하게 땅에 묻혀진 이곳의 항아리가 훨씬 자연스럽고 오붓한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1) 윤재웅, 「바람과 풍류」, 『미당 서정주』(태학사, 1998).
2) 김현, 「1969년의 문학적 상황 1」, 『상상력과 인간』(일지사, 1973).
3) 유종호 평론가는 『질마재 신화』가 『신라초』와 『동천』 시절의 한계에 대한 돌파구가 되어 주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라초』, 『동천』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미당 자신의 『질마재 신화』라고 생각된다. (…) 이제는 역사적 과거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시절의 삶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소상한 기억과 해석이 이 산문시집의 특장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미당의 신라 시편에 결여되어 있는 바로 그 요소이다. 신라 시편들은 구체적 경험을 상상력과 서지적 참조와 자의적 해석이 대체하고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모호한 신비화로 빠져들고 그만큼 지상적인 삶의 실감과는 멀어져 있다. 『질마재 신화』의 문학적 박력은 그대로 신라 시편의 취약점을 압도하여 비판하고 있다.' 유종호, 「서라벌과 질마재 사이」,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민음사, 2001).
4) 김현, 「산문시 소고」, 앞의 책.
5) 유종호, 「소리 지향과 산문 지향」, 『문학의 즐거움』(민음사, 1995).
6) 유종호, 「가난문화의 시적 성찰」,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 2019).
7) 이남호, 「생태마을로서의 질마재」,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현대문학, 2012).
8) 유종호, 주5)의 글.
9) 김주연, 「신비주의 속의 여인들…… 시? 시」, 『사랑과 권력』(문학과지성사, 1995).
10) 유종호, 주6)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