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내기 오는 바다에 한 줄 굵직한 수묵 글씨

미당 시전집 강독 15: 『떠돌이의 시』에서 세 편

by 노정연

3.


시집의 두 번째 단락인 '시사시편'에는 열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시들은 이전에 『서정주문학전집』에서의 '예시' 편에 실린 시들처럼 행사시의 성격을 띤 작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 중 추석의 의의를 독특하게 노래한 「추석」이나 광복 30주년을 맞아 씌어진 「백도라지 눈 하나」, 분단 상황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마지막 남은 것」, 1976년의 신년시로서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걸어보는 내용의 「새해의 기원」과 같은 작품이 비교적 인상적이라고 생각됩니다.


「1975년 가을에도」는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이고, 이 밖에 동국대학교 개교 62주년과 전북대학교 개교 22주년, 23주년을 기념해 씌어진 「우리 고향 중의 고향이여……」, 「전북대학교 교정에 서면」, 「인사」, 동아일보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씌어진 「송시」 등이 있지만, 몇 군데 재미있는 구절이 있는 것을 제오하면 대체로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 순서로 실린 「백두와 한라의 1974년 봄 대화」는 백두산과 한라산이 남과 북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논하는 내용의 독특한 시입니다.


이어 세 번째 단락인 '산문시' 편에는 여섯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중에서 앞의 세 편은 앞서 『질마재 신화』를 다룬 부분에서 미리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합니다.


네 번째 시 「깜정 수우각제의 긴 비녀」와 다섯 번째 시 「이조진사」는, 우연히 마주하게 된 골동품을 보면서 그것의 주인이었던 과거의 사람과 자신을 이렇게 이어 주게 만든 인연을 생각하고 있는 내용의 시입니다. 이 중 앞의 시에서는 비녀의 주인이었을 이름 없는 고관 부인의 이름을 줄곧 '○○○'의 생략형으로 표기하고 있어 약간의 파격성이 돋보이고, 뒤의 시에서는 직함인 진사와 도자 제작에 쓰이는 진사의 동음이의어라는 특성을 활용해 약간의 재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시 「얌순이네 집 밥상머리」는 소소한 집안 풍경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별로 주목받아 온 작품이 아니어서 아쉽게 생각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정주의 시 중에서 이런 담백한 에피소드가 담긴 작품들에 애착이 갈 때가 많습니다.


시의 내용 자체는 이해하기 아주 쉽습니다. 식사에 앞서 얌순이의 어머니가 미리 그에게 '할머니하고 같이 밥반찬을 먹을 때는/ 맛난 것만 냉큼 먼저 집어세지 않도록 해라'라고 귀띔해 주고 그가 이 말을 따라 덜 맛난 반찬을 위주로 먹자, 할머니는 그 모습이 예뻐 녀석 속에 할머니가 열대여섯 명 들어앉았다고 말하며 허벅지를 따끔하게 꼬집습니다. 칭찬을 하면서도 자신을 꼬집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얌순이는 약이 올라서 '꼬집긴 왜 꼬집어?/ 할머니 속엔/ 속없는 계집애가 또 열댓 명 들어앉았어' 하고 대응해 주고, 옆에서 말을 배우는 그의 동생은 '하망구가, 기집애가, 들어앉았어' 하고 그들의 말을 따라한다는 내용입니다. 시 속의 장면은 정감이 넘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시인이 그때껏 윤회 속에 담긴 성장과 순환의 의미를 계속해서 탐구해 왔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4.


시집의 네 번째 단락인 '떠돌이의 시'에는 스물네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로 수록된 「모조리 돛이나 되어」는 짧지만 강한 위로의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실연한 여제자가 '낙엽 같다' 줏어 온 돌이/ 내 눈에는 돛 단 배의 돛만 같아서/ '돛'이라 새 이름 붙여 그네에게 돌리나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낙엽들이여/ 모조리 돛이나 되어 또 한번 떠 가자쿠나.' 돌의 생김새를 재해석함으로써 실연의 슬픔을 딛고 새 출발을 하기를 독려하는 화자의 말 속에는 현실은 바라보기에 달렸다는 시인의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 「망향가」는 노년의 나이에 이른 화자가 저만치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회포에 잠기는 내용의 시입니다. '회갑 되니 고향에 가 살고 싶지만/ 고향 위해 아무껏도 하지 못한 나/ 고향 마을 건너 뵈는 나룻가에 와/ 해 어스럼 서성이다 되돌아가네.' 이 시는 가령 이북 출신의 시인들이 갈 수 없는 고향 땅을 노래한 시들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자의 고향은 그야말로 저만치에 있는 것이어서 곧장 가자 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고향을 다시 만나기에는 떳떳하지 못했던 것만 같은 지난날에 대한 감회가 그곳에 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이 단락에는 시인의 회갑 무렵의 에피소드를 모티프로 한 시들이 여럿 있습니다. 세 번째 순서로 실린 「대구 교외의 주막에서」도 그러한 작품의 하나입니다.


회갑 지낸 어느 날

대구 교외의 어느 주막까지 흘러와 보니

옆에 앉은 갈보 계집아이는

꼭 내 소학교 적 동기만 같고,

소학교가 내 인생에선 제일 좋았던 게 생각나고,

장난감도 군입거리도 따로 없던 내 소학생 때

가장 재미났던

또래의 계집아이들과 서로 몸에

간지럼 먹이고 놀던 게 불쑥 그리워

"뭐 더 할 거 있니?" 하며

그 갈보 계집아이와 낄낄낄낄 낄낄거리며

한 식경을 겨드랑에 발바닥에 서로 간지럼 먹이며

참 여러 십 년 만에 모처럼 한바탕 잘 웃고 놀다

내 회갑 기념 시화전에서 번

오천 원짜리도 한 장 쓰윽 끄내 주고

며칠 뒤에 또 만나자고 했는데,

또 와 보니

그 애는 그새 벌써 보따리 싸

어디론지 또 한 굽이 떠돌잇길을 떠나고 없고,

딴 애하고

시인이 똑같은 흉내를 두 번

되풀이하는 것도 뭣하고 하여,

이걸로 이것도 끝장인가 하니

못내 섭섭타.


회갑을 지낸 시인은 우연히 들른 주막에서 만난 여인과 간지럼을 피우는 놀이를 합니다. 산전수전을 거친 노년기에 들어선 그는 길었던 삶의 어느 때보다도 '소학교가 내 인생에선 제일 좋았던' 것을 생각하고, 간지럼을 피우며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즐거움을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놀이의 상대가 다름아닌 주막의 창부였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삶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노인이 속된 직업의 대표격으로 흔히 말해지는 창부와 함께 어린 시절의 가장 순수한 행복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세속의 피로 속에서 살더라도 어린아이 시절과 같은 순진무구함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여인에게 다시 만나자고 하고선 며칠 뒤에 그곳에 돌아와 보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고, 시인 역시 '딴 애하고/ 시인이 똑같은 흉내를 두 번/ 되풀이하는 것도 뭣하'다는 생각에 '못내 섭섭타'는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어린아이 시절의 순간이 한 번만 만끽되고 다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시에서의 상황은 삶에서 그런 때묻지 않은 행복의 순간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도 같고, 또 그런 순간도 중요하지만 다시 그 세상살이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도 같습니다. 같은 흉내를 다른 사람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것은 그러한 즐거움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상황이나 행동보다도 함께하는 사람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결말에 직접적인 메시지가 드러나지 않고 있어 오히려 여운을 줍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가령 앞서 보았던 「낮잠」 같은 시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한 세속의 현장을 소재로 삼아 정신적 가치를 이끌어내는 내용을 하고 있는, 그래서 매우 참신한 개성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시 「격포우중」 역시 회갑 무렵에 씌어진 작품입니다.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는 1975년 7월 부안의 격포 해수욕장에 갔을 때 모티프를 얻은 것입니다. 시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비가 꽤나 내리는 속을, '이것 더 좋다' 하며 여관 차를 빌려 타고 부안 변산 해수욕장으로 일행과 함께 달렸다. 운전수가 "변산 해수욕장이란 이름이 붙은 데보다는 변산반도의 맨 끝에 있는 격포 채석강 해수욕장이 더 깨끗하고 조용해서 좋습니다" 해서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것이라 그리로 차를 몰고 가, 소나기를 맞으며 툼벙툼벙 수묵빛의 바다에 가라앉았다.


나도 인제는 묵내 나는 동양 선비의 전통이 어느 만큼은 몸에 배었음인가, 내 영육이 한 수묵 글씨로 쓴 시일 뿐임을 느끼며 쏘내기 속 황해변에 가라앉아 있는 것은 꽤나 두두룩히 호젓해 좋았다. 이조 방랑 여류 시인이며 창녀였던 황진이가 웬일인지 이 우중충한 날의 호젓함 속에 문득 생각히어 '조금만 더 견디어 점잔하고 말지 그랬냐'고 마음속으로 웅얼거려지기도 했다.'(주1)


여름 해수욕이면

쏘내기 퍼붓는 해 어스럼,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변산 격포로나 한번 와 보게.


자네는 불가불

수묵으로 쓴 싯줄이라야겠지.

바다의 짠 소금 물결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어

벼락 우는 쏘내기도 맞어야 하는

자네는 아무래도 굵직한 먹글씨로 쓴

싯줄이라야겠지.


그렇지만 자네 유랑의 길가에서 만난

사련 남녀의 두어 쌍,

또 그런 소질의 손톱의 반달 좋은 처녀 하나쯤을

붉은 채송화 떼 데불듯 거느리고 와

이 뇌성 취우의 바다에 흩뿌리는 것은

더욱 좋겠네.


짓이기어져 짓이기어져 사람들은 결국

쏘내기 오는 바다에

한 줄 굵직한 수묵 글씨의 싯줄이라야 한다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채송화들에게

예행연습 시켜야지.


그런 용묵 냄새 나는 든든한 웃음소리가

제 배 창자에서

터져 나오게 해 주어야지.


1연에서 화자는 비 오는 격포 해수욕장의 검은 물빛을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에 비유합니다. '창녀 시인'이라는 표현은 가령 '노예 철학자' 같은 말처럼 어떤 충격을 주는 데가 있습니다. 황진이가 기생으로서 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을 두고 창녀 시인이라고 일컫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화상」에서 시인의 모습을 병든 수캐에 비유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창녀의 속된 성격과 시인의 탈속적인 성격이 구분되지 않고 합일되는 모습을 화자는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연과 3연에서는 이 두 가지 성격을 대변하는 인간상이 언급됩니다. 먼저 '수묵으로 쓴 싯줄'에 비유되고 있는 '자네'는 가령 「바위와 난초꽃」에 나왔던 '바위'처럼, 바다의 소금기를 견디고 소나기의 타격을 맞아야 하는 지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 시집에 와서 비로소 '난초'나 '수묵으로 쓴 싯줄'과 같은 유교 문화와 밀접한 시어들이 얼마간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3연에서 나타나는 '붉은 채송화 떼'에 비유되고 있는, '사련 남녀의 두어 쌍,/ 또 그런 소질의 손톱의 반달 좋은 처녀' 같은 이들은 세속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자네'로 하여금 이 비 쏟아지는 바다에 '채송화들'을 데리고 와서, '짓이기어져 짓이기어져 사람들은 결국/ 쏘내기 오는 바다에/ 한 줄 굵직한 수묵 글씨의 싯줄이라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줌으로써, 거기서 우러나오는 삶의 힘을 얻게 해 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수묵 글씨의 싯줄'의 강직한 삶에 '붉은 채송화'의 낭만적인 삶을 더해 서로 조화시켜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눈 오는 날 밤의 감상」, 「회갑동일」, 「향수」, 「이마의 상흔」 등의 시들은 「망향가」에서처럼 노년기에 접어든 시인의 감상이 주로 드러나고 있는 시들입니다.


여덟 번째로 실린 「우중유제」는 『떠돌이의 시』에서 여유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에 해당합니다.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라의 어느 사내 진땀 흘리며/ 계집과 수풀에서 그 짓 하고 있다가/ 떨어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 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 버리듯/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 쏘내기 속 청솔방울/ 약으로 보고 있다가/ 어쩌면 고로초롬은 될 법도 해라.' 화자는 연인과 진땀 흘리며 하는 '그 짓'보다도 또그르르 굴러가는 홍시와도 같은 삶을 더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 「'거시기'의 노래」는 『삼국유사』에 실린 거타지 설화를 거의 그대로 시로 옮겨 쓴 작품입니다. 시의 주인공 '거시기'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운도 없이 용왕을 달래기 위해 바쳐질 사람으로 뽑혀 혼자 섬에 버려지고 맙니다. 용왕은 그에게 자신보다 힘센 마귀가 자기 식구를 거의 다 잡아먹었다고 말하고, 가만히 서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으로 거시기는 그 마귀를 상대해, 화살로 죽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용왕 딸을 마누라로 얻어 살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서 「저 거시기」로 다시 씌어지기도 했습니다.


「구례구, 화개」는 재미있는 내용의 시입니다. 겨울날 구례에서 길을 가던 화자는 유난스럽게 넘어져서 일행으로부터 욕을 먹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데, 도착하고 나서 만난 노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이 신라 시절 겨울날 유난스럽게 꽃을 피워 화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걸 듣고 나서는 거리에서 봤던 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 「김치 타령」은 김치를 먹고선 총각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하는 내용의 특이한 시입니다.


열세 번째와 열네 번째 시 「꽃을 보는 법」과 「어느 늙은 수부의 고백」은 시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꽃을 보는 법」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혼자서 고향을 떠나/ 어느 후줄근한 땅의 막바지 바닷가나 헤매 다니다가,/ 배불러서는 무엇하느냐?/ 먹는 것도 어줍잖은 날이 오거던/ 맨발 벗고,/ 설움도 차마 아닌 이 풀밭길을/ 인제는 혼잘 것도 따로 없이 걸어오너라./ 그리하여 어디메쯤 뇌여 있는 천년 묵은 산의 바윗가에/ 처음으로 눈웃음 웃고 오는 네 오랜만의 누이 - 꽃나무를 보리니……' 이 시의 심상은 과거의 시편들과 맞닿아 있는 면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설움도 차마 아닌' 풀밭길은 '서럽지도 아니한 푸른 하늘'(「골목」)을 연상케 하고, '천년 묵은 산'이나 '누이'의 비유 또한 그렇습니다. 화자는 꽃이 제대로 보이려면 아주 배가 불러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서럽고 외로워서도 안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느 늙은 수부의 고백」에서의 화자인 수부(水夫)는, 바다를 누비고 살기 위해서는 바다를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달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앙리 룻소의 달밤 사막의 집시가/ 달려오는 사자를 달래 맨돌린을 울리듯/ 먼저 한 자루의 피리를 마음속에 지니고/ 나는 바다에 떴다.' 그리고 그는 '바다의 신의 일족 가운데서도/ 그 주인이나 마누라를 직접 서뿔리 느물거리지 않고/ 간접으로 그 딸의 로맨틱한 마음을 사려/ 연거푸 연거푸 내 마음속 피리를 불고,' 끝내 '한 개의 순금반지'를 그녀의 약지손가락에 끼우는 데 성공했다고 말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낀 반지의 빛을 신호로 다녔을 뿐이고,/ 내가 바다에서 거두어 온 것이란/ 모조리 그녀의 손이 먼저 닿은 것뿐이다.// 이렇게 나는 바다에서 뺏거나 훔친 것이 아니라/ 늘 항상 은근히 얻으며 살아왔으니/ 이 앞으로도 끝까지 또 그럴 것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직접적인 힘의 방법이 아니라 간접적인 유도의 방법으로 강력한 자연의 힘을 이겨내는 수부의 슬기'(주2)를 보여줍니다.


그 밖에 「내가 타는 기차」는 어린 시절 시골 소년의 눈으로 기차를 탔을 때 보았던 도시 소녀의 깨끗한 모습을 나이가 들어서도 그려 본다는 내용의 시이고, 「슬픈 여우」는 서양적인 삶과 동양적인 삶 사이에서의 고민을 독특한 비유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시입니다. 이 밖에 변영로 시인에 대한 추도시인 「절벽의 소나무 그루터기」를 비롯해 「박용래」, 「제주 이용상의 음주 서」 등에서는 시인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섯 행에서 여덟 행의 짧은 시들인 「찬술」, 「구멍 난 고무겅」, 「?」는 삶에 대한 친근한 성찰이 묻어나는 재미있는 작품들입니다. '밤새어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 가나니/ 한 수에 오만 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라고 말하는 「찬술」은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서정주 특유의 솔직함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돈 벌러 해외로 떠난 제 아버지를 따라 떠난 손자가 가지고 놀던 고무공이 바람이 빠진 것을 보고 다시 동그랗게 해두었다는 내용의 「구멍 난 고무공」이나, '무엇을 하려고 문밖을 나서다가/ 그만 깜박 그게 무엇이었던가를 잊어버린다./ 그 대신에 생각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인생이란 바로 이렇게 걸어 나와서/ 그만 깜박 그게 무엇이었던가를/ 잊어버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 역시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스물세 번째 시 「뻔디기」는, 서정주의 시로서는 예외적이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작품에 해당합니다.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고 박히우듯이

그렇게라도 산다면야 오죽이나 좋으리오?

그렇지만 여기선 그 못도 그만 빼자는 것이야.

그러고는 반창고나 쬐끔씩 그 자리에 붙이고

뻔디기 니야까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뻐억, 뻐억, 뻔디기, 한 봉지에 십 원, 십 원,

비 오는 날 뻔디기는 더욱이나 맛좋습네."

그것이나 겨우 끌어 달라는 것이야.

그것도 우리한테뿐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6학년짜리 손자놈들에게까지 이어서

끌고 끌고 또 끌고 가 달라는 것이야.

우선적으로, 열심히, 열심히, 제에길!


이 시가 이른바 유신 시절에 씌어지고 발표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적인 데가 있습니다. 3행에서의 '여기'를 당시의 한국 사회로 치환한다면 시의 내용은 금방 해석이 됩니다. '여기'에서는 인간적인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예수처럼 살 것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번데기 리어카 같은 것이나 끌면서 돈 버는 데에만 '우선적으로, 열심히' 집중하라는 요구만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세대만이 아니라 자식 손주들에게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말입니다. 이 현실에 시인은 분노합니다. 이숭원 평론가는 서정주가 특히 이 작품을 통해 뚜렷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점에 주목합니다.


국민의 기본권이 억압된 채 경제개발과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현실 앞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 리 없다. 그는 그의 창작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사회 현실에 대한 불만을 시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뻔디기」라는 작품이다. 이것은 그의 생애 처음으로 발성된 일종의 저항시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이 시에 제시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시대에는 길거리에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번데기를 파는 행상들이 있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뻐억, 뻐억, 뻔디기" 하고 외치고 다녔다. 미당은 이 우스꽝스러운 외침을 현실 풍자의 도구로 활용했다. 미당의 삶의 내력을 잘 아는 사람은 이 시에 나오는 "제에길!"이라는 부사가 그의 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부정의 시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당시의 상황에 염증을 느낀 것이 분명하다. (…) 회갑을 앞둔 그의 입에서, 더군다나 살벌한 유신시대에 "제에길!"이라는 욕설이 나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어쩌면 그는 유신시대의 엄혹한 탄압의 실상을 미처 지각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을지 모른다. 이후 이런 시는 그에게서 다시 나오지 않았다. (주3)


여기에서 그는 서정주가 이런 뚜렷한 비판 의식을 가진 작품을 더 쓰지 않은 것을 아쉽게 바라보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 쓰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서정주에게 있어서 저런 시들은 쓰려면야 얼마든지 더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런 내용의 시 한 50편만 썼으면 그도 이른바 '저항시인', '민족시인'으로 칭송을 받았을 테지만, 시인 자신은 그런 작품은 한 편이면 족하고,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삶을 보다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그리는 데 더 열중해야 한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시집의 마지막 순서로 실린 작품은 「한 발 고여 해오리」입니다. 화자는 명창 이동백의 새타령 속의 한 구절 '월명(月明) 추수(秋水) 찬 모래/ 한 발 고여 해오리'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두루두루 늦가을 찬물이면/ 두 발 다 시리게스리 적시고 있어서야 쓰는가?// 한 발은 치켜들어 덜 시리게 고였다가/ 물속에 시린 발이 아조 저려 오거던/ 바꾸아서 물에 넣고 저린 발 또 고여야지.// 아무렴 아무렴 그렇고말고./ 슬기가 별 슬기가 또 어디 있나?'


부득이하게 찬물에 발을 담그고 살아야 할 노릇이 되면, 한 발씩 번갈아 빼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돌아서 가는 길을 추구하던 「곡」에서의 삶의 태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인에게 비판 의식도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그에게 주류가 되어 나타나는 것은 세상을 보다 방어적으로 견뎌내려는 관점입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후기 시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1) 서정주, 「문치헌 일기초」, 『안 잊히는 사람들』(전집 9권, 은행나무, 2017). 1974~1975년의 일기를 모은 이 글에는 같은 해에 씌어진 「대구 교외의 주막에서」나 「망향가」 등의 바탕이 된 에피소드들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2) 김우창, 「구부러짐의 형이상학」, 『궁핍한 시대의 시인』(민음사, 1977).

3) 이숭원, 『미당과의 만남』(태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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