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h me luck

이야기 바깥에서 눈물 흘리기

by 이승민

Wish me luck. <리틀 드러머 걸> 4화 찰리의 대사. 나는 저 대사를 마주한 순간, 결국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뜬금없는 장면들에서 엉엉 울고야 말 것이란 걸 진작에 알았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왜 그랬을까? 분명 드라마 속의 이야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 내 눈물은 이야기 바깥의 것이었다.


작품 소개만 아주 잠깐 하자면, 드라마 <리틀드러머걸>의 주인공 찰리(플로렌스 퓨)는 영국의 무명 배우다. 드라마는 그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피 튀기는 분쟁 속에서 '이중스파이' 역할을 '연기'해내는 과정을 다룬다. 그녀의 무대는 극장이 아니라 현실 세계가 되고, 대본은 없다. 예상할 수 있듯, 찰리는 점차 현실과 연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진실과 진심의 경계에서 시리도록 헤맨다.


어쩌면 이 설정은 흔하다면 흔하다. 상대 적진에 진입해 적군을 유혹해야 하는 미션을 받은 주인공이 정작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하지만 <리틀 드러머 걸>은 그런 클리셰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찰리는 단순한 스파이가 아니라 본업이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는, 장르의 껍데기 내부에서 배우와 영화에 대한 메타적 모티브가 내내 흥미롭게 작동한다.


분명 6부작의 드라마이지만 이 작품은 분명 하나의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 찰리가 기나긴 방황 속에서 테러리스트를 연기하는 단일한 긴 영화. 그 속에서 그녀는 분명 연기를 할 뿐이지만 폭탄이 터진다. 그녀가 연기를 할수록 소중한 사람들이 떠난다. 그렇게 그녀는 갈수록 혼란스럽다.

그녀는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찍을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 영화가 끝나면 현실도 이데올로기도 바뀌어 있을까.

나는 그저 전쟁이란 참상 앞에서 멋 모르고 병사들을 독려하는 북 치는 소녀-리틀 드러머 걸-인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나는 찰리가 이야기 속에서 했을 이 질문들과 이야기 밖에서 진동했던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영화라는 매체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진정 영화가 현실에 조그마한 변화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난 그저 영화라는 매체의 냉정한 현실이 아닌 낭만만을 바라보며 꿈을 꾸는 중인 것은 아닐까.


따위의 질문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찰리는 결심한 듯 말한다, Wish me luck. 처음에는 저 대사가 마치 영화가 외면받는 이 시대에 극장과 시네마가 관객들에게 하는 외침 같아서, 외면하지 말고 행운을 빌어달라는 말처럼 와닿아서. 개인적인 의미로 가슴이 아렸다. 그런데 진정 눈물을 흘린 까닭을 생각해 보면 찰리의 입장에 공명해서다. 이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녀는 연기를 계속한다. 계속해서 영화의 일부가 된다. 그 무모하고도 숭고한 결단 끝에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요약판 보면 되는데 왜 굳이 영화를 봅니까. OTT를 두고 왜 굳이 극장에 갑니까. 숏폼과 릴스로도 충분히 도파민이 터지는데 언제 적 아트하우스입니까. 영화의 미래가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왜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까?


일리 있는 독기 가득한 저 질문들 앞에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대답은 하나뿐이다. 정말 좋아하니까, 거짓이 아니라.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니까. 앞으로도 분명 영원히 있을 테니까.


영화가 분명 모두의 마음을 움직일 순 없겠지만, 특정한 영화는 그 정서적인 가치를 알아본 누군가의 마음에 정확히 닿아 사소한 변화를 싹 틔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여러분, Wish me luck.

어쩌면 나는 이 대사를 내 입으로 직접 내뱉고 싶어서 그렇게 눈물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저에게도, 영화라는 세계에도 행운을 빌어주세요.

부디 이럴 가치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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