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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섭 Jan 14. 2021

나의 여행을 멈추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 유감(有感)

여행담론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속성이 있다.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더 떠들고 싶고, 나가지 말라고 하면 더 나가고 싶어진다. 나도 그런 속성을 고스란히 몸에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때문에 많은 모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일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오게 되는데, 평소라면 쉬기 바쁘던 내가 요즈음은 누구를 불러서 ‘술 한 잔’ 먹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연락이 뜸하던 사람들에게 괜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게 되고, 혹시나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면 만남을 제안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긴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누군가와 마시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나도 ‘청개구리’과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가 두려운 건 사망률 때문이 아니라 그 누구도 어떻게 전개되어 갈 지 앞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개월만 진득하게 기다려서 해결될 문제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가 있다. 밖으로 나갈 때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실내로 들어갈 때 무조건 써야 하는 마스크의 답답함도 한몫 제대로 거든다. 마스크를 통해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왕관 모양을 한 ‘못된’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창궐(猖獗)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勸告)사항을 넘어 누구나 꼭 지켜야 할 의무가 된지 오래지만, ‘의무’라는 말이 풍기는 무언의 압박감은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은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작년 4월부터 현재까지 예정되었던 여러 가지 행사에 참석을 못함은 물론, 심지어 지인으로부터 빈소에 직접 오는 문상(問喪)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메시지를 꽤 많이 받았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을 와주신 분들의 경조사에 참석을 못하다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제 모든 종류의 회동이나 경조사도 화상회의 방식으로 하든가 ‘온라인’으로 해야 할 판이다. 모든 것의 ‘판’이 바뀐 것이다.       

  

  선생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오죽이나 답답할까. 초중고를 포함해 대학교까지 기존 교육체계의 붕괴를 암시하는 서막이 활짝 열린 것 같아서 슬프기까지 하다. 그런데 상당히 현실화된 슬픔이라는 것이 문제다. 단순히 온라인 교육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미 기존의 학교 교육보다 양질(良質)의 콘텐츠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실제적인 공간이 주는 ‘Authenticity’가 희미해지면 ‘학생이라는 이름의 소비자’들은 더 이상 학교라는 공간에 오지 않을 것이고 올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 학교가 아니라 가장 좋은 콘텐츠가 올라오는 곳에 훨씬 ‘가성비 좋은’ 가격으로 링크하면 된다. 다소 ‘오버하는’ 상상만으로도 무서움이 몰려온다. 모든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가 지금 휴교를 했거나 온라인 수업 중인데, 계절마다 훨씬 더 강력해진 ‘변이 바이러스가’가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면 학교는 환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미 국내의 몇 개 대학은 기숙사를 환자들의 병실로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의 도시여행을 멈추게 했다. 작년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무려 26박 27일 동안 EBS 세계테마기행 라오스 편을 촬영하느라 고생 좀 했지만, 귀국해서는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에 ‘올인하여’ 경주에 있는 골굴사도 가고, 완도군 소속의 보길도에도 여행하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이 사악한 바이러스 때문에 현재까지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나마 막간의 시간을 내어 당일치기로 구례 산수유마을과 광양의 매화마을에 다녀온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이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최소 몇 년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더군다나 이미 촉발된 아시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여행의 즐거움을 크게 반감시킬 것이고, 이런 편견은 여행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면으로 보나 나의 여행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딱 한 가지는 예전에 비해 집에 오래 머물다보니 그동안 등한시했던 ‘서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20년 전에 읽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총,균,쇠>를 다시 펼쳐 석학(碩學)의 탁견에 감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균이라는 사악한 선물이 인류 역사 변화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아 탄복할 뿐이다. 1981년 중국 우한이라는 도시를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했던 딘 쿤츠(Dean Koontz)의 어둠의 눈(The Eye of Darkness)을 주문했고 배송이 완료되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물론 이런 현실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나의 도시여행을 멈추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속히 종식되어서 코로나 바이러스 유감(有感)이 유감(遺憾)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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