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불확실성, 그리고 진화 가능한 구조
기존의 시스템이 잘 정의된 명세와 규칙에 따라서 구현한 정적인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AI/데이터 중심 시스템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이터를 입력받고 학습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유기체’를 만드는 것에 가깝습니다. 시스템에 입력되는 데이터의 흐름은 시스템의 혈류가 되고, 시스템 내부에 동적인 AI 모델은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두뇌가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본질적인 차이는 과거와 다른 질문을 하게 합니다. 예측 불가능성을 안고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을까? 특정 기능의 성능 저하가 전체 시스템의 장애로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수많은 실험, 재학습, 배포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이 바로 “모듈화”에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AI/데이터 중심 시스템이 가진 고유의 특성에 맞게 모듈화를 어떻게 활용하여 복잡하고 동적인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설계 원칙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I/데이터 중심 시스템은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또는 시스템과 몇 가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집니다.
첫 번째, 데이터 의존성 (Data Dependency) 입니다. 코드의 로직만큼이나 ‘데이터의 품질과 분포’가 시스템의 동작을 결정합니다. 이는 최근 주목받는 ‘데이터 중심 AI(Data-Centric AI)’ 패러다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훌륭한 모델 아키텍처를 찾는 것보다, 고품질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개선하는 것이 시스템 전체의 성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데이터의 수집, 처리, 관리를 담당하는 모듈의 독립성과 견고함은 시스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두 번째, 실험적 본질 (Experimental Nature) 입니다. 최적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데이터 전처리, 피처 엔지니어링, 모델 아키텍처, 하이퍼파라미터 조합을 실험하게 됩니다. ‘정답’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 복잡한 생명주기 (Complex Lifecycle) 입니다. 이전 제품은 단순히 ‘개발-배포’로 생명주기가 상대적으로 간단했다면, AI/데이터 중심 제품은 ‘데이터 수집 → 전처리 → 학습 → 평가 → 배포 → 모니터링 → 재학습’으로 이루어지는 순환적인 생명 주기 (MLOps)를 갖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각 기능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모놀리식(Monolithic) 구조는 AI/데이터 중심 시스템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각 단계를 독립적으로 개발, 실험, 배포, 확장할 수 있는 모듈러 아키텍처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성공적인 모듈화를 위해서는 AI/데이터 시스템의 생명주기를 기능적 책임에 따라 논리적인 모듈로 분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핵심 모듈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및 처리 모듈 (Data Ingestion & Processing): 다양한 소스로부터 원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 변환하여 저장하는 책임을 집니다. (e.g., Apache Kafka, Fluentd, AWS Kinesis)
피처 엔지니어링 및 관리 모듈 (Feature Engineering & Management): 모델 학습에 사용될 피처(Feature)를 생성, 저장, 관리, 서비스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피처 스토어(Feature Store)가 핵심 솔루션입니다. (e.g., Feast, Tecton)
모델 학습 및 실험 모듈 (Model Training & Experimentation): 피처 스토어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모델을 학습시키고, 다양한 실험을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합니다. (e.g., MLflow, Kubeflow, Weights & Biases)
모델 서빙 및 추론 모듈 (Model Serving & Inference): 학습된 모델을 배포하여 예측 요청을 처리하는 API를 제공합니다. (e.g., TensorFlow Serving, KServe, TorchServe)
모니터링 및 피드백 루프 모듈 (Monitoring & Feedback Loop): 배포된 모델의 성능, 데이터 드리프트 등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재학습 파이프라인으로 전달합니다. (e.g., Prometheus, Grafana, Evidently AI)
독립된 모듈들이 원활하게 협력하기 위해서는 각 모듈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데이터 계약 (Data Contract): 모듈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데이터의 스키마, 포맷,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고 강제합니다.
모델 아티팩트 표준화 (Model Artifact Standardization): 학습된 모델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형식을 표준화합니다. (e.g., ONNX, PMML)
API 기반 통신 (API-based Communication): 모듈 간의 호출은 가급적 잘 정의된 API(e.g., RESTful API, gRPC)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이미 운영 중인 레거시 시스템에 AI 기능을 '추가'해야 합니다. 이때 AI 서비스를 하나의 독립된 '모듈'로 설계하고 API 기반으로 통합하는 전략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AI 모듈이 기존 시스템의 배포 주기나 기술 스택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개발, 실험, 배포될 수 있게 하여, 전체 시스템의 민첩성과 확장성을 크게 향상시킵니다.
AI 모듈의 역할: AI 관련 복잡성을 모두 내부적으로 캡슐화하고, 외부에 단순하고 명확한 API 인터페이스만을 노출합니다.
기존 시스템의 역할: AI 모듈을 외부 서비스처럼 취급하여, 약속된 API를 호출하고 그 결과를 받아 비즈니스 로직을 처리합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개인화 상품 추천 시스템'을 앞서 설명한 모듈들로 구성하는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각 모듈은 Kafka, 피처 스토어, 모델 레지스트리 등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독립적으로 작동합니다. 이처럼 각 컴포넌트가 명확한 책임을 가지고 분리되어 있으면, 추천 알고리즘을 새로운 모델로 교체하거나 데이터 수집 소스를 추가하는 등의 변경 작업을 훨씬 안정적이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해당 시스템은 데이터 수집 모듈, 피처 엔지니어링 모듈, 모델 학습 모듈, 모델 서빙 모듈, 모니터링 모듈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모듈: 사용자의 클릭 로그, 구매 기록, 상품 메타데이터를 Kafka와 같은 메시지 큐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피처 엔지니어링 모듈 (피처 스토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별 최근 1주일간 클릭한 상품 카테고리', '상품별 구매 전환율'과 같은 피처를 계산하여 피처 스토어에 저장합니다.
모델 학습 모듈: 매일 밤 배치(Batch) 작업으로 피처 스토어에서 학습 데이터를 가져와 추천 모델(e.g., Matrix Factorization)을 재학습시키고, 모델의 성능 지표와 함께 학습된 모델 파일을 모델 레지스트리(Model Registry)에 등록합니다.
모델 서빙 모듈: 모델 레지스트리에서 가장 최신 버전의 승인된 모델을 로드하여, 사용자 ID를 입력받으면 추천 상품 목록을 반환하는 API 서버를 운영합니다. 이 API 서버가 바로 기존 쇼핑몰 시스템과 연동되는 'AI 모듈'의 인터페이스가 됩니다.
모니터링 모듈: 추천 API의 응답 시간, 클릭률(CTR)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특정 상품 카테고리의 데이터 분포가 급격히 변하는 '데이터 드리프트' 현상이 감지되면 운영팀에게 경고를 보내고, 필요한 경우 자동 재학습 파이프라인을 촉발한다.
이처럼 각 컴포넌트가 명확한 책임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추천 알고리즘을 새로운 모델로 교체하거나 데이터 수집 소스를 추가하는 등의 변경 작업을 훨씬 안정적이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AI/데이터 중심 시스템의 본질은 '변화'와 '불확실성'입니다. 어제의 최적 모델이 오늘의 최적이 아닐 수 있으며, 오늘의 데이터 분포가 내일도 유지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모듈러 아키텍처는 시스템이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진화 가능한 구조'를 제공하는 핵심 철학입니다.
최근 거대 언어 모델(LLM)과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러한 ‘진화 가능한 구조’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기존 MLOps의 모듈에 더해, 이제는 벡터 데이터베이스(Vector DB) 모듈, 프롬프트 템플릿 관리 및 엔지니어링 모듈, 임베딩 관리 및 서빙 모듈 등 새로운 차원의 모듈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AI 시스템 아키텍처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춰 진화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아키텍트는 정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견고하고 유연한 '뼈대'를 만드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 시스템의 본질: AI/데이터 중심 시스템은 정적인 ‘건축물’이 아닌,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으며,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핵심이 바로 모듈화입니다.
모듈화의 필수성: AI 시스템은 데이터 의존성, 실험적 본질, 복잡한 생명주기(MLOps)라는 특성을 가지므로, 각 기능이 얽힌 모놀리식 구조보다 독립적으로 개발, 배포, 확장이 가능한 모듈러 아키텍처가 필수적입니다.
5가지 핵심 모듈: 성공적인 AI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데이터 수집/처리, 피처 엔지니어링, 모델 학습/실험, 모델 서빙, 모니터링/피드백 루프라는 5가지 핵심 모듈로 구성됩니다.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레거시 시스템에 AI 기능을 추가할 때는, AI 서비스를 독립된 모듈로 설계하고 API 기반으로 연동하여 결합도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화하는 아키텍처: 생성형 AI의 등장은 벡터 DB, 프롬프트 관리 등 새로운 차원의 모듈화를 요구하며, 결국 AI 시대의 아키텍트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진화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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