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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ction Jul 17. 2023

하만의 길, 모르드개의 길

오늘 큐티 본문이 에스더 3장이었다. 내용은 모르드개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던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아 그에 분노한 하만이 모르드개의 족속을 멸하려는 내용이었는데… 여러가지로 최근 상황과 중첩되면서도 또 다른 일이 생기고, 난 나대로 멘탈이 계속 털리는 중이다.


지난 주 목요일에 근평이 결정되었다. 내심 기대했음에도 예상보다 낮은 결과가 나오자 끝없이 울화가 치밀어오르고, 주변 인간들에 대한 분노와 호구잡힘에 대한 자기혐오가 계속 생겨났다. 금요일엔 과장에게 어찌된 영문이냐고 묻다가 예상대로 다른 사람 험담만 한시간 동안 들으며 기분은 더 나빠지고, 거기에 지난 전시에 대한 혹평도 건네들으며 열만 더 받았었다. 무능한 관리자로 인해 내 성과도 제대로 못챙겨지니 화가 안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전에 외부의 K선생과 전 관장은 다들 내 덕에 이것저것 누리셨지만, 난 욕만 먹고 얻은 건 없었다. 작은 콩고물로 그들은 자기들 일은 다 했다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들 덕에 안 들어도 될 욕과 험담, 그리고 거지같은 과장놈의 일 폭탄만 떠안았었다. 막말로 지들이야 니나노 하면서 뒤에서 비선실세 놀이라도 했지, 난 뭔가. 내가 무슨 장기판의 말도 아니고. 젊다고 기다리라는 건 40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말인가.


그게 쌓여서 이렇게 온거 같고, 어디 하소연 하기에는너무 스스로가 찌질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그래도 직장인에게 다른 보상이 뭐가 있겠는가. 때에 맞는 승진과 금전적 보상 외에 다른 의미있는 뭐가 있단 말인가. 성과급이니 해외출장이니 다 때려치고 제대로 된 보상에 대한 희구가 가득 차 있었다.


목요일부터 시작한 에스더 큐티는 매일마다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게 했다. 목요일엔 선택의 중요성을, 금요일엔 여러 제약을 딛고 나아가는 것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다스려갔다. 주일 설교는 사실 좀 멍한 상태에서 들었지만 그래도 바라보는 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통해 조금씩 털어내 갔다.


물론 그럼에도 계속 스트레스는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오늘 출근하면 관장과 독대를 통해 내 밥그릇을 챙기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아침부터 정신없이 몰아치다 잠깐 큐티를 하게 되었다. 전술한대로 하만과 모르드개를 대조하며 하만의 저열한 음모가 드러나는 내용이었다. 목사님의 해설과 기도로 오늘 관장을 안만나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고, 내가 한 것에 대한 보상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려했던 것이 하만의 길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오후에 보고를 들어갔고, 예상 외로 옛날 사람 스타일인 그로 인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어쨌든 일은 해야하니 대충 괜찮은 척 하고 내부 회의로 방향을 잡아 수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잠시 화장실에 들러 K선생을 만났다. 스몰 토크를 하다 ‘일이 너무 많지 않나요’ 하며 ‘승진 이야기 했으니 신경써주겠죠’란 말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하자 ‘그럼 안되죠. 이야기 해서 잘 챙기세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한대 맞은 기분이 들며 발을 관장실로 돌렸다. 승진 이야기를 하자 이번에 어쨌든 한자리는 확보했고, 인사 교류도 한다했다. 거기에 10년 넘었으니 승진을 시키겠다고, 나는 중박에서 왔지만 여러분들을 챙기겠다 뭐 이런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도 보상이 필요하다. 다른 지부장 중에 이렇게 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말을 했는데, 그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나 짬밥이 있어서인지 ‘알고 있고, 보상이 있도록 하겠다’라는 별로 영양가 없는 답만 하였다.


문제는 관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한 뒤부터 퇴근하는 길 내내 이 문제로 계속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그 문제를 벗어났다 생각했는데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린거다.


내 밥그릇을 찾겠다는게 꼭 하만의 길은 아닐테고, 마냥 가만 있는게 모르드개의 길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석을 한다면 지나친 알레고리일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해지는 상황에서 다시 욕망과 보상이라는 일차원적 기제에 또 빠져드는 내가 초라하게 보여 더 화가 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는 이 상황이 싫어서 그럴 수도 있을테지.


나도 안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이걸 덜 생각하고 작은 기쁨에 천착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일은 계속늘고 줄지도 않는 상황에서 꾀는 말만 계속하면 무슨 낙으로 일을 할까. 정치꾼들 가득한 이곳에서 난 어떤 길을 가야할까. 아, 모르겠다. 모르드개는 출세라도 했지, 난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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