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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ction Dec 18. 2020

밥벌이의 중함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하는 아재의 푸념

2020.12.16.


밥벌이의 중함


글을 두 달 만에 쓴걸 보니 그간 살만 했었나 보다. 보통 내가 글을 쓰게 되는 건 빡치거나, 열받거나, 힘들거나, 외롭거나 등의 부정적 감정이 많을 때인데, 이번도 빡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번에 글을 썼을 때도 별로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장이 숫자 때문에 뭐라고 했던 차제에 일필휘지로 글을 썼던 것으로 생각이 나고. 오늘도 내년도 예산 배정안 때문에 또 사람을 물고 늘어져서 그런 건데... 아 진짜 지**에선 좀 안 넘어왔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내가 짜서 하는 거면 다 하겠지. 근데 다들 자기들 마음대로 제각각 해서 오는데 어쩌란 말인가. 처음 받을 때도 엉망이었고 지금도 엉망이고, 나인들 할 때마다 고치긴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그래도 밥벌이의 중함이 있기에 또 참고 삭히는 건데...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라... 뭐 나름 관리자로서 이유는 있는 거라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어쨌든 순한맛 **장으로 이름 붙인 건 나름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나 싶다. 퐁당퐁당의 규칙이 있으니 다음번엔 좀 나은 사람이 오려나 싶기도 하고... 내년 하반기엔 부서이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자료과로 옮겨질지는 모르겠다.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노조 지부장이면 그 정도 능력은 있어야 하지 않으려나. 전에 *식*가 어설프게 인사로 장난치다 나랑 완전 쌩까게 된 것도 있는데.


기질적으로 맘 자체가 모질지 못하고 싫은소리 듣는 거나 하는 걸 워낙 싫어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매번 회피하게 되는 거 같다. 어지간하면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넘어가고 싶고. 사실 노조도 나 몰라라 하고 가만있었으면 오히려 내 한 몸은 편했을 거 같은데 뭔 영화를 보겠다고 설치게 된 건지. 대의명분 따위 뭔 소용 있다고. 어쨌든 밥벌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게 된 건 아닐 거고, ‘배워서 남주자’라고 했던 스승의 가르침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서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 때문에 이리된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장이란 놈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선생님 돌아가신 후에 했던 그 막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분이라고 해서 과오가 왜 없겠는가. 나도 충분히 알고, 아쉬움도 분명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쓴 추모글을 보고 한 거라면 정말 나쁜 **인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물색없는 인간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라고 고인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게 적절한 언행은 분명 아닐 건데 말이다. 나는 그 인간을 ‘자기밖에 모르는 나보다 훨씬 더 처먹는 인간’으로 나중에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밥벌이의 중함은 결국 그 상황에서도 ‘아쉬운 점도 있었다...’로 소심하게 대응하고 그냥 그걸 덮어버리게 하였지. 신형철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상황에서 들이받진 못했을 터이니 말이다.


오늘은 또 아침부터 보안점검 때문에 연락이 득달같이 왔다. 좀 싸우지 말고 좋게 좋게 지내면 좋겠지만, 이미 프레임을 잡고 너죽자라고 달려드는 인간들한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는 이 상황에서 어쨌든 ‘내 새끼 건드리지 마’ 모드를 발동해야 하는 거고. 그나마 C선생이라도 있어서 같이 힘 보태주니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육휴 들어가고 강릉으로 아예 옮기게 되면 어찌 되려나.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지금은 노조 이용해서 뭐라도 해 먹으려는 놈들이 천지라... 인간적인 정리는 있으나, 그와 별개로 나를 방패로 하려는 인간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K모 선생처럼 얼굴이 두껍고 의뭉지면 모르겠지만, 내가 그럴 내공(?)의 소유자도 아닌데... 586들은 그런 면에선 참 난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잘 하는 걸 해야하지 않겠나. 어차피 그들만큼 마음이 굳지도 않고, 얼굴이 두껍지도 않은데. 태생적 유약함이 있는 인간인데 어쩌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결과는 받아들일 줄 아는 분별력과 용기가 있길. 40대가 되어서도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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