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 효형출판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으면서 독일에 가고싶어졌다. 책에서 언뜻 언뜻 나오는 독일어가 멋있어 보였고 우연히 독일이라는 나라는 개인주의 문화가 뿌리 박혀 있는 곳이면서도 '우리'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최근에 나는 '나', 그러니까 개인이라는 독립적인 주체에 몰두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벤야민을 만나 기술과 자본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던 개인들간의 연결을 끊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고 꽤나 흥분해있었다. 공동체에 대해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으면 지난 날의 공허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감각이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문화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면 그 문화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벤야민은 '이방인이 된다는 건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벤야민에 빠져있던 나는 그의 문장을 곱씹으며 꿈을 꿨던 것 같다. 낯선 곳에 가면 어린 아이의 시선이 뭔지 알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곳을 갈 때 그곳에서 낯섦을 경험한다. 해외여행을 가서 이국적인 장면들을 그냥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될 때는 오히려 쾌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그 낯섦이 생존과 관련된 거라면 우리는 불쾌감을 느낀다. 우리는 익숙한 곳에서,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에서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모스크바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벤야민이 모스크바에서 했던 경험은 기존의 익숙하고 편안한 감각들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매끈하고 속도감 있는 감각을 제공하는 파리와는 달리 모스크바에서는 좁은 인도 때문에, 빈둥대는 산책자 때문에 자꾸만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속도를 낼 수 없는 울퉁불퉁한 길 같달까.
영화는 도시의 지형학을 잘 포착하는 움직이는 이미지다. (생략) 영화가 등장함에 따라 이러한 감옥의 세계가 10분의 1초의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됨으로써,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진 감옥 세계의 파편들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모험에 가득 찬 여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292p, 그램 질로크, 효형출판)
이렇게 낯선 감각이 주는 불쾌감과 당황스러움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마치 다이너마이트처럼 폭파하여 파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 파편들 사이로 난 길을 모험하며 새로운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정체성은 쌓이고 얹어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고 부서짐으로써 구축된다.
어디에도 포착되지 않고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않고 계속해서 파괴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벤야민의 삶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벤야민이 끊임없이 자신의 습관과 익숙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 역시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외로운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채로 자신의 영토에서만 안주하고 사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자유로워 보인다. 자신의 습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파편으로 조각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벤야민을 만나 공부를 하며 나 역시도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몸의 습관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인 낯섦을 향해 가려는 용기도 얻었다. 나 역시도 경계를 넘나드는 이방인으로 살며 계속해서 다른 삶을 길을 만들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