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게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20대의 마지막 여름이 지나고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는 이 무렵,
너의 모습은 어떤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싶었어.
어렸을적부터 많은 사람들이 너에 대해 물었었는데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명쾌하게, 진심으로 소개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네가 많이 서운했겠다 싶어. 미안해.
유년시절에 너를 소개 할 때는 보통 직업이었어.
건축가, 검사, 기장, 항공정비사 등등. 당시에는 멋있어 보이는 어른을 만나면
그날부터 한동안 너는 그 사람의 직업이 되곤 했지.
학창시절에는 너를 사치라고 생각했다?
너를 소개하는 게 마냥 부끄러웠어. 그 당시에 뭐가 그리 중요했는지
지금은 너를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쓸데없이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덜컥 성인이 되어 버린 뒤, 나는 애타게 너를 더듬기 시작했어.
그동안 너와의 거리가 많이 멀어져서 였을까. 너는 내 옆에 없었고,
너는 왜 내 곁에 없냐며 주변의 것들을 탓하기도 하고 자책도 했어.
네가 보이지 않을 때는 문득 불안해져서 네 모습을 억지로 그려보곤 하다가도
과연 내가 그린 네 모습이 맞을까를 계속해서 의심하며 너를 어떻게든 정의하려고,
너를 괴롭혔던 것 같아.
사실 나는 이제서야 네 모습이 조금 보이기 시작해.
보이기 시작할 뿐 아니라 약간 구체적이기까지 해.
아, 먼저 이 말을 해야지.
나에게 항상 큰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
편지로나마 29년 만에 마음을 전해.
누군가 너에 대해 물어본다면 이제는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고,
지금은 누군가에게 너를 소개할 때면
너를 가득 담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
나에게 사는 이유를 물어볼 때 너를 언급할 수 있게 뚜렷하고 선명해져서 고맙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며 방향을 의심할 때 한결같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어줘서 고마워.
물론 이러다가도 네 모습을 몇 번이나 더 바꿀 수도 있어. 알지?
하지만 그 모습 또한 내 찬란할 인생에 방향을 제시해 줄 거고,
덕분에 난 행복할 거야.
그리고 살아갈 힘을 얻을 거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