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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Mar 27. 2023

발리 굿바이, 여행 굿바이

우리가 26일간 본 것은 무엇일까

날이 밝자, 마지막 날에만 묵으려고 했던 꾸따의 리조트로 하루 먼저 움직였다. 여행 말미에 큰 고비를 넘었기 때문인지, 가볼 곳을 더 찾고 싶은 마음도, 더 옮겨 다닐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한 곳에서 차분히 남은 여행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리조트가 이번 여행에서 예약한 가장 비싼 숙소였고 여독을 풀기 위해 마지막 날만 잡아 놓았던 것인데, 너무 그렇게 쥐어짜지 말자 싶었고, 개에 물린 사고와 숨 가쁘게 움직였던 지난밤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밝고 넓고 복작거리는 장소에서 남은 이틀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큰 통창 유리로 햇살을 보며 소파에 깊숙이 몸을 맡기고 앉아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2인분의 짐을 담아 배낭 메고 간 여행이다 보니, 짐이 느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인도네시아까지 4개국을 돌면서 변변한 기념품도 못 샀다. 저녁이 되면, 영수증을 정리하고 간단한 메모를 하고, 사진을 옮기고 그리고 빨래를 하고 나야 그날의 마무리였고, 그다음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동선을 결정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쳤다. 당연히 하하를 씻기는 일도 전적으로 내 일이었고, 옷을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챙겨줘야 했다. 좀 놓고 싶었다.


어린이 풀장에서 가장 가까운 그라운드 플로어로 배정해 달라고 하고 2박을 결제했다. 1층으로 해야 하하가 혼자 안과 밖을 드나들기 좋다. 우리는 짐을 놓고 마트부터 가서 맥주와 과일과 하하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불안은 내 마음속에만 있었지, 하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한결같이 신나는 여행객이었다. 

우리는 리조트 내 풀장을 순방하고 전용비치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저녁에 벌어지는 쇼를 즐겼다. 


이발소에 가서 어느덧 자란 하하의 머리를 시원하게 잘랐다. 여유 있게 쇼핑몰을 구경하며 하하가 원한 장난감을 사주었다. 내 눈에 비친 꾸따는 맑고 투명하고 청정한 그런 곳은 아니었다. 여행객들의 젊음과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 하하가 나를 닮았던 거구나, 나 역시 그림 같은 해변보다는 이런 곳이 좋았다. 

다시 에너지 게이지가 가득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26일 동안 4개국에 걸쳐 열다섯 번 숙소를 옮기며 다녔지만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한 번을 찾아가지 못했다. 삼각대와 DSLR을 큰맘 먹고 챙겨갔지만 명소에서 제대로 포즈 잡고 찍은 사진 한 장을 남기지 못했다. 한 달 살기로 유명한 치앙마이에서 클래스 체험도 해보지 못했고,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갔어도 변변한 놀이기구 하나 타지 못했다. 길리 섬에서 그 유명한 거북이도 못 봤고, 그 많은 바다를 거치면서 스킨스쿠버는 커녕 스노클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26일간 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여행이 끝난 후 한참 뒤에 알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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