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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Aug 04. 2023

느려도 좋은 도시

42일간의 배낭여행 2 : 이스탄불

이스탄불에 5일간 있었는데, 매우 신기한 것 중 하나가 교통시스템이다. 길 한복판에 트램이 지나가는데, 현지인과 여행객과 개와 고양이가 섞여서, 어디가 차도인지 인도인지 모를 판이고, 요금시스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 전역에서 무엇을 타든 환승할인이 적용되고 전철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엄격이 구분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했는데, 며칠 지나고 느낀 거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은 서둘지 않는 것 같다.

새로운 국가를 여행할 때, 시간의 차이는 시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돈과 무질서처럼 보이던 이스탄불에는 이곳만의 시계가 흐르고 있는 거겠다. 외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질서가 없는 것은 아닐지니, 이것을 배우는 것이 여행이다.


우리는 신시가지에서 이틀을 묵으며 아시아지구까지 구경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하루에 넘나들고, 구시가지로 숙소를 옮겼다. 이번엔 3만 원대 에어비앤비. 슐탄아흐멧에서 구시가지 숙소까지는 트램을 타고 여섯 정거장, 내려서 12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35도 땡볕이라고 해도. 12분쯤이야. 그런데 그 길이 오르막일 줄이야.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신호등 없는 찻길을 조심조심 건너 몇 발자국을 걷자마자 코너를 돌아 눈앞에 드러낸 긴 계단 앞에서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짐을 모두 내가 들었기 때문에 몸이 가벼운 하하가 총총거리며 저만치 앞서가서 찍어주었다.


나는 앞뒤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사실은 신시가지에서 이집트바자르를 구경하면서, 장미오일을 잘 살 수 있다는 31번 매장을 들러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잔뜩 샀던 것이다. 알려진 곳이 아니고서는 잘 살 자신이 없어서 42일 여행의 고작 둘째 날에 튀르키예에서 살 기념품들을 다 산 셈인데, 우리의 배낭은 38리터와 18리터가 전부였으니 난 당연히 택배로 부칠 생각이었다. 중간 국가 간 이동은 더구나 화물 추가를 안 한 저가항공이다. 로즈오일을 사면서 택배로 부치는 게 가능하단 걸 상점 주인에게 분명히 확인했고, 이것저것 십만 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나를 위해 카펫을 살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걸 한국으로 배송하면서 선물로 산 물품들도 같이 배송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카펫은 사치품이라 솔직히 갈등이었는데, 톱카프 궁전 내부를 관람하고서는 안 사고 못 배기겠더라. 톱카프 궁전과 구시가지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황홀했고,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아무것도 못 남겼지만, 특히 돌마바흐체 대연회장에 들어선 순간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품은 한국으로 택배가 안된다고 한다. 오일을 30개도 넘게 샀는데. 안식년을 맞아 아이와 함께 하는 배낭여행을 응원해 주며 지인들이 노자돈을 보태줬는데, 그 마음들이 고마워 안 받기도 뭐하여 선물을 사야겠다 했던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십자가처럼 이 선물들을 이고 남은 40일을 다녀야지 마음먹을 수밖에. 내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는데도 과분하게 여행경비를 선물 받았으니, 이것도 내 업보려니 하고.


잠시 떠나 있는다고 하여도 내가 맺은 관계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로는 그것이 짐처럼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신시가지에서 숙소는 탁심광장 인근으로 잡았다. 짐을 내려놓고 나가본 이스티크랄 거리에는 인파가 가득이다. 식당도 많고 가격은 더 저렴한 편. 신시가지에서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걷다 보면 이따금씩 작고 빨간 트램이 지나가는데 이 인파들 사이에 차가 지나간다는 게 신기했다. 관광상품인지 교통수단인지 모르겠지만, 아이고 어른이고 아무렇게나 매달려서 가는 게 명물이었다. 하하도 신이 나 달려가서 매달린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지나가는 트램


맞는지 모르겠지만 튀르키예는 아이들에게 관대한 나라라고 하더라. 하하에게 최소한의 인사말은 현지말로 익혀가자고 했는데, 테쎄큘레와 멜하바 두 문장 가지고도 현지인들 대부분이 하하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하하도 튀르키예의 친절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았다. 7살 아이를 데리고 나에게도 생애 처음인 낯선 나라에 왔다는 마음의 무장이 조금씩 해제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구시가지에서 이틀을 묵고 비행기로 괴레메로 이동했다. 이스탄불에서 한 번도 택시를 안 탔기 때문에, 트램 버스 전철을 두루 이용하며 교통카드인 카르트 카드를 너무 잘 썼다. 이스탄불 전용이라 떠나면서 카드를 반납하면 좋은데, 우리나라처럼 보증금 환불 개념으로 돌려주고 환불받지 못한다. 그냥 버려지는 건데, 이스탄불을 찾는 여행인파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자원낭비다. 튀르키예는 왜 아직 이렇게 밖에 발전하지 못한 걸까. 마치 발전을 거부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을 만큼. 금은보화, 화려한 카펫, 거대한 샹들리에로 장식된 돌마바흐체 궁전의 화려함과, 안전문도 없고 휴지통을 곳곳에 놓은 바구니로 대신하는 우리나라 몇십 년 전 수준인 전철의 풍경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떠나는 날까지 나는 이스탄불이 참 알쏭달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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