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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은 집에 엄마란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민이도 보고 싶다.
그러다 갑작스레 떠오른 혁.
제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징~~~ 메시지 들어오는 소리가
머리로도 느껴진다.
베개 사이에 넣어둔 핸드폰.
제이는 울려대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 확인하지 않는다.
분명 민이일 테지...
민이 밖에 없다.
아주 어릴 적 철없이 집이
세 개나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에게 우리 집이라 했던 할머니집
종종 가게 되는 엄마집
드문드문 가게 되는 아빠집
친구들 집과는 조금은 다른 상황이란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머리를 예쁘게 빗어주시는 할머니가 있었고
따스히 안아주시는 할머니가 있었고
갓 한 뜨끈뜨끈 밥을, 반찬을
해주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엄마란 사람이 방문하는 날은
불편한 속마음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최대한 비위를 맞춰 기분 좋게 엄마란 사람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할머니 집 안방을 차지해 누워있는
엄마란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기분이 상해 누워 있는 거였으니
어떤 말이든 상처로 받을 것이고
제이가 내뱉은 어떤 말도 꼬투리 잡혀
잘근잘근 씹혀댈 것이기에.
지금 돌이켜 보니 엄마란 사람은 우울증이다.
결혼 실패와 이후 계속되는 연애 실패.
일 마저도 잘 풀리지 않는 듯했다.
어쨌든 그녀의 거친 언행은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한
무기 같은 거였다.
"제이야. 엄마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우리 제이가 좀 참아라.
미안하다. 할머니가 딸 교육을 못 시켜서."
할머니는 어린 제이에게
엄마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알려주었고
마음 건강한 제이가 참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라 불리는 그 사람은
적어도 남자 보는 눈이 더럽게 없다.
하지만 그 여자가 좋다고 달라붙었던
그들 역시 여자 보는 눈이 더럽게 없는 건
매 한 가지라고 제이는 생각했다.
엄마라는 사람이 말하길
늘 엄마는 피해자였고.
가해자는 아빠거나
할머니거나
이모거나
아저씨거나
늘 그랬다.
엄마란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빠는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다.
할머니도 나빴고
이모도 이기적인 사람이고
엄마가 만난 아저씨들도 쓰레기였다.
하지만 제이는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직접 만나 느끼는 아빠도 할머니도
이모도 아저씨들도 도통 모르겠다고
나쁜 것도 쓰레기인 것도.
오히려 엄마보다 좋았을 때가 많았다고.
제이는 한참을 울리다 잠잠해진 핸드폰을 열고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를 누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세요."
그렇게 제이는 받지 않는 전화에
혁아~ 부르고는
소리 내지 않고 울다 잠들었다.
그날 밤 제이는 혁이 아닌 민의 꿈을 꾸었다.
장난스레 어깨에 손을 올리는 민이 있었고
간당간당 초록불에 손을 잡아주는 민이 있다.
서울 밤길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민이 있었고
종종 반지하 B101호 냉장고
반찬을 채워주는 민이 있다.
그리고 그런 민을 제이는
밀어내려 하고 있다.
꿈속에서 민의 "응 , 알았어." 란
대답은 다시는 제이를
만나러 오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제이는 엉엉 울며 꿈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