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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rewriter Dec 26. 2020

10월 13일~10월 15일

훈련 1주차

10월 13     


1

 방화복을 처음으로 입어보았다. 이것을 입고 화마(火魔)와 싸워야 한다. 방화복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제 머리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나의 몸을 직접 움직임으로써 가능해진다. 쉽지 않을 것이다. 곧 방화복에 공기통을 매고 언덕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될 거라고 한다. 검댕이 묻은 얼굴을 닦는 소방관의 모습을 내가 하게 될 상상을 하니 괜히 마음이 묘해진다. 숱한 소방관 다큐멘터리를 보았지만, 아마 직접 훈련을 하게 되면 또 다를 것이다. 몸으로 하는 일의 고귀함을 느껴보자. 적어도 1인분의 값어치를 할 수 있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     


2

 할 게 산더미다. 매듭법도 익혀야 하고, 화재대응능력 2급 관련 필기시험도 준비해야 한다. 다음 주쯤이면 본격적으로 체력단련을 하게 된다. 그동안 틈틈이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걱정 역시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정신적인 자극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그냥 시간을 내서 하면 된다.     


3

 아침은 초겨울을 방불케 할 만큼 추웠다. 창문 밖으로 한라산의 능선이 명징하게 보였다. 그 위로 새털구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해 뜰 무렵이었다. 이 차가운 날씨 속에서 붉게 피어오르는 저 아침 해를 동기 몇 명은 빤히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기억에 사람들은 아무도 휴대폰을 들고 그것을 찍지 않았다. 다들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냥 맨눈으로 바라보는 붉은빛의 하늘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에서 어떤 벅찬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관광을 온 게 아니다. 그렇지만 눈에는 담아두었으면 좋겠다. 이 묘한 기분을 동기들 모두가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체조를 하고 숙소로 들어가면서 나는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우리가 교가에서 흔히 부르는 한라산의 ‘정기’라는 것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4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았다.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강사가 인용했던 대법원 판결의 한 구절을 생각해보았다. 정확히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그것은 충분히 비틀어 볼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가해자의 죄책감이란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상쇄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가해자라는 말보다 죄책감이라는 말에 무게를 실어 생각해보았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까.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상쇄할 수 있을 만큼만 지는 것이 죄책감인가. 그 무게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죄를 저지른 사람이 갖는 죄책감의 무게, 그것은 덜어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만약 상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무던히도 생각해본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스스로 상쇄할 수 있는 죄책감이란 존재할 수 없다. 심지어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대가는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족쇄가 된다.     


10월 14     


1

 아침은 쌀쌀했다. 점점 해가 짧아지고 있다. 핑크빛 구름이 예뻤다. 구름은 흡사 거대한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꾸 그 새에게 눈이 갔다. 새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언젠가 새의 상징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의 솔 메이트다. 분명 까마득한 거리에 있는데도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동기들은 어제와 비슷했다. 간간이 사진을 찍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그들은 하늘을 힐끔거리며 체조 동작을 익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괜히 궁금해진다. 하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조금 더 마음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2

 방화복을 입고 체조를 했다. 방화복은 외부와의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한다. 살갗이 보여선 안 된다. 화재현장에서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옷은 뜨거운 열을 막는 동시에 몸속의 열기를 품고 있다. 방화복은 내 몸에 밀착된다기보다 짓누르는 느낌을 주었다. 하나 이 옷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볕 아래서 팔굽혀펴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죽는 소리를 했다. 물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사실 이제 시작이다. 이 무게감을 이겨내야만 ‘소방관’이 될 수 있다. 짊어진 만큼만 견디면 된다고 자기 위안을 삼아보지만 아직은 어림도 없다. 이 옷을 입고 버피를 할 때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그만하고 싶으면 짐 싸고 나가라’     

 아주 잠깐 그럴까도 고민했다. 양 옆을 슬쩍 보았다. 동기들은 고군분투 중이었다. 체조가 끝나고 동기들은 다들 옆을 살폈다고 말했다. 개별적인 동작을 하는데도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그것은 ‘동기애’ 때문이 아니다. 또한 어떤 ‘계기’ 때문도 아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린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냥 하는 것뿐이다. ‘사명감’이고 뭐고 들입다 하다보면 끝은 오니까. 버티자. 버텨보자.     


3

나의 나약함을 확인한 하루였다. ‘까짓것 해보자’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그게 아니다. 방화복에 공기통을 매고 오르막을 전력 질주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10월 15     


1

아침 해는 순간 구름 색과 뒤섞여 핑크색으로 변했다. 이걸 쳐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벚꽃나무가 나를 드리우는 기분이다. 광령의 어느 벚꽃 길에서 나는 아빠 어깨에 목말을 탔다. 굵은 나뭇가지 위에 올랐다. 아마 예닐곱쯤이었을 것이다. 그보다 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때를 제법 명료하게 기억한다. 엄마는 파마머리에 포니테일을 하고 동생을 업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의 몇 안 되는 행복한 장면 중 하나다. 이 찰나의 순간은 억지로 떠올린 건 아니다. 나를 과거로 이끌어준 건 구름과 해와 나무다. 저 먼발치의 풍경, 산등성이의 완만한 곡선은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것 같지만 아니다. 항상 이 장면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저 하늘 덕분에 나는 벚꽃나무에 대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몇 자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2

공기호흡기를 착용했다. 방화복을 입고 거기에 공기통을 매고 면체를 쓰고……. 갑갑했다. 하지만 이 차림새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관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모습이다. 뭐가 뭔지 몰라서 허둥지둥했다. 공기통을 내 몸의 일부로 생각해야 한다. 저것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 내 몸의 일부가 된다는 건, 익숙해진다는 말도 되고 생활이 된다는 말도 된다. 나는 후자의 편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방화복 차림으로 저 누인 공기통과 면체를 3분 안에 착용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3

학과 수업시간에 M교관님은 구조 활동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하나 늘어놓았다. 복잡한 얘기는 아니었다.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몸에 기름을 붓고 라이터를 켠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불은 다행히 붙지 않았다. ‘경유’였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이다. 그건 그렇고, 그 사람은 그 고비를 넘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뒷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그 뒤가 더 궁금했다.

사실 나는 이야기의 낭만적인 것들만 골라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 말이다. 이미 내 마음은 현장 어딘가에서 식어가는 사람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모든 현장 활동을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이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글은 글이고 소방은 소방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내가 피상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들이 이제 구체적인 윤곽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기계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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