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러한 나를 이해한다.
혹독한 자기성찰 중입니다.
한국, 내가 나고 자란 곳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아직 직장을 다니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아서인지, 무언가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남들이 하는 것들을 안하고 있으니 쫄리는 건지도. 드디어 쫄리는 타임이 온 것인가 싶기도 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범생으로 자라고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평범하게 살았던 인생 히스토리로 인해 이런 성향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인트로벌트 성격도 한 몫한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프리랜서는 절대 못한다.
나는 나를 잘 안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니 무엇이 당장 중요하고 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진다. 비록 알지라도, 나태해서 금방 미뤄버리고 만다.
영어 단어 중에 'Procrastinate' 라는 단어가 있는데, 무슨 일이 하기싫어 질질 끌고 미룬다는 뜻의 동사이다. 이렇게 상황을 자세하고 적절하게 설명하는 영어 단어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영어 단어들은 이렇게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냥 그때 쓰이는 적절한 단어를 골라 쓸 뿐이다. (적어도 Native가 아닌 나한테는 그러하다) 아무튼 'Procrastinate'라는 단어는 너무 친절하다. 특정 상황을 아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가슴 찔리면서도 마음에 들면서도 짠하면서도 멀리해야 하는 단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들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질문.
1. 내가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가?
2. 내가 재미있는 일은 무엇인가?
3.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답.
1. 아직 모름. 아직도 모름.
2. 글쓰기, 근데 이건 내가 너무 막 재밌기다기보다 스트레스 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요즘 딱히 재미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것도 재미있게, 저것도 재미있네, 애써본다. 왜냐, 재미있다고 흥미롭다고, 자기최면을 열심히 하는 긍정적인 인간이 결국엔 승리하니까.
글쓰기 외에는 뭐 먹는거? 이런. 할말 딱히 없어진다. 예전엔 재밌던 것들이 이제는 아니다. 누가 그러던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그때는 아닌데 지금은 맞던가.
굳이 찾지는 말자. 흘리다 보면 이게 재밌을 수도 있고, 그러다 재미없을 수도 있고, 재미 없다, 재미있을 수도 있고. 없다고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남들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다만 좀 심심하다.
3. 13년 8개월의 기나긴 UX 디자이너 경력이 있으니 이거 써먹어야지. 취직을 해야겠지. 그리고 딱히 다른 재주도 없으니 이걸로 밥벌이를 하는 게 가장 적절하고 쉬웁다.(의식의 흐름대로 잠시 말하면, '쉽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굳이 '쉬웁다'가 좋다. 그래서 오늘따라 브런치 맞춤법 검사가 더 매섭게 나를 째려본다. 이곳에 글을 쓸 때마다 째려보는 저 뭉치를 매번 무시하면서도 바른말 고운말을 써야 한다는 한국식 교육을 받은 한 사람으로써 온전히 무시하지 못하고 설설기며 요리 조리 눈치본다. '발행'을 잽싸게 누르자마자 맥북 커버를 탁 닫아버리고 도망간다. 하지만 오늘은 왼쪽 귀퉁이에 고집스럽게 자리잡은 너를 대놓고 무시하겠다마. 나는 고집하겠다마. 이런 것도 내 맘대로 못하냐마.)
그리고 회사 그만두고 미국까지 갔으니 뭐는 해야마시. 이건 또 나만의 스트레스인건가. 이건 남들 눈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딱한 나란 인간의 솔직한 고백이니 뭐 너무 뭐라하지 말자. 나만 그러는거 아니다.
물론 내가 게으른 거지, 내 꿈이 게으른 것은 아닐터다. 그리고 최종 원대한 꿈이 뭔지 잘 모르는 거지, 순간 순간의 꿈들은 있다. 그냥 이런 작은 것들을 이루다보면 깨닫고 완성되겠지. 남들이 자신있게 "내 꿈은 무엇, 무엇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언젠가는 하게되려나? 하고는 싶은건가? 그럴 필요는 있는건가?
그리고 더불어, 내가 잘나가는 건가, 남들이 보기에 잘나가는 건가. 이것도 헷갈리고. 이게 필요한가. 이게 왜 쫄리는 이 마당에 생각이 날까. 난 어쩔 수 없는 속물이고 사회성 동물이구나.
어쨌든 지나가다 본 유투브에서 어떤 교수님이 그랬다. 3번 질문은 남들을 기쁘게 하는 일일 수도 있고, 해야하지만 그로인해 생기는 기쁨도 있다고. 그래 뭐. 위안하자. 다행히 해야만 하지만 싫지는 않으니 완전 다행이지 싶고, 지금은 약간 지겨울 뿐이니, 애써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고 이러는 거겠지.
나는 이러는 나를 이해한다.
이게 다행이지 뭐가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