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지.'라는 이마에 딱! 새길 그 말.
Feat. 양희은 님.
양희은 님이 그러셨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다음과 같다.
세상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내 가장 긴 발가락 제일 끄뜨머리부터 머리 끝 가장 높은 꼭지점까지 꽉꽉 차서 드디어 그 0.00000001 정도의 점 틈 사이로 쉬익쉬익 김이 세어나오기 시작했을 무렵이라고.
그건 한 1.5년 전이라고. (아마 팬데믹의 영향도 어느정도는 있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뭐가 그렇게 짜증나고 화났는 지는 기억도 잘 안 난다. 이렇게 희미해질 것들에 뭐 좋다고 그렇게 감정 낭비를 했나싶다. 하지만, 아마 당시에는 나름 최대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갈길을 가려고 고군분투했던 것으로 또 느낌적인 느낌. 어쨌든 어느 날 그 분의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군가가 쉬이쉬이 팔팔 끓어넘치기 직전의 내 몸을 으싸 들어 찬 물 한바가지 뿌리고, 얼음 그득그득 담긴 고무 대야에 내던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던져진 나는 '피식'하고 열이 식었다. 식다못해 너무 차가워 얼어버릴 듯이 민망하고 서늘해졌다.
그 이후로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은 나에게 이마에 딱 붙이고 새기는 말이 되었다.
어제 저녁에 같이 살고 있는 친구와 필요한 대화를 했다. 같이 산지 고작 1.5달밖에 안된 지라, 아직은 서로 적응 중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친구지만, 막상 살아보니 많이 다르더라. 아주 당연한 말.
문득 이것이 언니들이 얘기하던 그건가 싶다. 가끔 등줄기, 간담 서늘해지도록 낯설음을 몇 번 치르고, '내 남편이 같이 살아보니 내가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더라'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 말이다. 뭐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나도 그 비스므리 한 것을 겪는 것 같다. 이럴 때 그 마법같은 말은 타이밍을 잘 안다. 마치 진짜 큰 일 날것처럼 심각해지려는 그 찰나에 물 한 바가지 끼얹고 냉수마찰 제대로 해준다. 그래서 그냥 아무렇지 않아진다.
상황 종료.
"난 그럴 수 있지 + 쟨 그럴 수 있어" 조합이 나름 괜찮다.
응용으로 "이럴 수 있지", "이런 일, 저런 일 생길 수 있지", "이럴 때, 그럴 때 있지" 등등
거의 모든 상황에 통한다.
곧 다른 곳으로 이사갈 날이 다가온다. 준비하고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빨리빨리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지금은 느긋히 조망하며 밥 잘 먹으며 그냥 재밌있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킬 때 하고싶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좀 지날 것이고, 하나씩 하나씩 이루게 될 것이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게 변할 것이다.
아주 가끔 또 냉수마찰이 필요하겠지만 전혀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