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랄수록 하루의 일상이 단조로워진다. 몽글몽글한 살결을 비벼대며 맡은 아이의 젖내가 점점 옅어진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계획된 부지런함과 정성으로 엄마 한 사람의 자리도 크고 있다. 야무지게 옷 입고 신발 끈 단단히 묶고 세상을 향해 모험하듯 내딛는 세찬 발걸음은 아주 거침없이 저돌적이며 굳센 의지가 분명하다. 어른 주먹만 한 머리 안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 시종일관 빈틈없이 시냅스가 연결되고 감탄이 넘쳐난다. 모든 것이 신기하여 탐색하고 즐기는 작은 존재 앞에 차마 붉히지 못한 나의 부정이 어두운 밤 베갯잇 속으로 스며든다. 참회와 눈물은 감사와 환희로 마무리되는 회복의 힘을 준다.
엄마라는 이름이 낯설고 부족하지만 아주 작은 생명의 파동이 나를 어루만지듯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움츠렸던 내면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공감하며 아이의 검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마치 양심의 거울처럼.
일요일 하루 쉬는 남편은 양적인 시간보다 질적인 육아를 위하여 함께 고민하고 대화한다. 사실 대화보단 일방적인 부탁이다. 갓난쟁이 자식 앞에 쩔쩔매며 뻘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며 애씀에 대한 안쓰러움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두 번째인가. 호기심 왕성하기로동네 소문났던 두 아들 엄마다. 나는 오히려독박육아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아이중심의 독박육아가 길들여진 이유다. 바쁜 남편의 빈자리가 어디갈때마다 사연 많은 여자로 오해받긴 수다했지만, 그 또한 예민함이 별스럽지 않게 무뎌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
한 동네에서 두 아이 낳고 살다 보니 독특하고 유별스럽던 첫째 덕분에 동네엄마들과 서로 육아상담도 하고 데일리사이클이 비슷한 독박육아 동지도 만날 수 있었다. 외출한번 하려면 군장을 둘러매 듯 분유와 보온병 기저귀와 물티슈 가제 손수건과 여벌 옷이 담긴 전투적인 큰 가방 하나가 어깨를 짓눌렀다. 어린이집 보낼 즈음 엄마 스스로의 대견함과 아이의 기특함으로 매 순간 울컥 폭풍오열이 터진다. 엄마도 울고 아이도 울고 두 사람의 흘린 눈물만큼 숨 쉴 틈사이로성장하는 시간이다.
불쑥 육아 동지들에게 물었다.
아이와 단둘이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캠핑이요!”
돌아온 답은 단순하고 일관됐다. 캠핑이라.실은 내게도 캠핑은 틈만 나면 캠핑 노래를부르는 여덟 살 첫째에게 해줘야 할 큰 숙제였다. 필사의 검색으로 갈 만한 곳을 찾아냈다. 국립공원 소백산 삼가야영장 산막텐트는 식기세트는 물론 침낭까지 대여 가능해, 먹거리만 챙겨서 가면 되는 곳이었다. 이럴 때 외치라고 유레카가 있는 것이다. 일을 벌이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대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캠핑 갈래요?”
“너무 좋아요. 함께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희재 엄마, 우리 집도 가도 될까요?”
“그럼요, 당연히 되죠.”
마치 여론 조사하듯 주변의 의견을 모아 반응을 보았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침착하게 ‘엄마와 함께 떠나는 캠핑’ 광고 전단을 만들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그 후 하루쯤 지났을까,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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