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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Dec 01. 2021

20살, 저장도서

[20살, 무서야담]

 유튜브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등대처럼 환하게 눈에 잡힌 어떤 강연 영상, 그 제목이 빛이었다. 

「길이 열리는 대로 가라!유현준(건축가)」

 영상을 틀자 교복 군단의 함성이 이 늦은 시청자를 반긴다. 청소년 강의라니, 내가 20살인데, 잠깐 멈칫했다만 청소년이나 청년이나 모두 꿈을 잃은 미아 아니더냐, 그러니 길잡이의 조언은 들어볼 만하지 않겠니 찬혁아? 그렇게 내 반쪽을 설득하고 강연을 시청했다. 

 교복 군단으로 꽉 찬 콜로세움, 그 한가운데 무대에 오른 유현준 교수, 시니컬함과 유머가 매력이라 15분이 일소였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인생이 계획대로 흐르지 않을 터니 발악하지 말고 길이 열리는 대로 가라는 것이었으나 정작 내가 기억에 담은 바는 딴 말이었다.

      

 “여러분, 청소년 권장도서목록 많이 보셨을 거예요. 저는 그런 거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걸 만드신 분이 나 이만큼 많은 책 읽었어, 자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도서목록을 만드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호라, 나만의 도서목록이라. 우연히 닿아 들린 강연이라는 ‘인생의 등대’에서 글감을 훔치고 탈주해본다. 마침 11월도 죽고 유일하게 숨 쉬는 12월이라 연말정산의 분위기로 올 한 해, 내 20살의 독서를 정리할 필요도 있었겠다. 그래서 내어 본, 권장도서 아닌 <20살, 저장도서>. 

 첫사랑 같은 책들을 선정했다. 헤어지고 일상을 살다가 “그치 그치 그게 좋았지” 문득문득 떠오른 책 몇 권을 저장해본다.      



1. <무서록>이태준

 진즉부터 현재까지도 난 수필과 에세이를 합친 글을 쓰고 싶다. 그 내게 수필의 교본이 되어준 책이다. 또, 마음의 교우가 된 책이다. 2차 대전 때 전사한 독일군의 배낭을 열어봤더니 죄다 헤세의 <데미안>이 들어있었다는데 나라면 이 책이었을 것이다. 그런 책의 매력을 소개하자니 제 자식 자랑하는 부모의 수다만큼 끝이 없어 아쉬움으로 요약하면 결국 이것이다. 그의 문장이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을 읽기 때문입니다.

 

 “같은 아는 정도라면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여자를 만나는 것이 우리 남성은 늘 더 신선하다.” 


 이렇게나 내 마음을 들켜버리면, 이 내 마음을 들춘 자가 두려우면서도 그자를 계속 찾게 되는 것이 나에게만 있는 변태적 성격일 리 없다.      



2. <문장강화>이태준

 또 태준이다. 지금껏 글쓰기 책을 한두 권 쥐어본 것이 아니다. 이 책만이 백지라는 전쟁터에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데 보통의 글쓰기 책은 후자만 다룬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은 물론 충실했거니와 좋은 문장을 많이 읽어보게끔 근대의 훌륭한 작품을 예문으로써 마음껏 인용해놓았다. 그러니 실상 이 한 권에서 글쓰기 스승은 이태준 한 명이 아니라 이상, 정지용, 염상섭, 현진건, 등등이 함께인 게라 단연 최고의 글쓰기 책이 아닌가.      



3.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무라카미 하루키

 수필과 에세이를 합친 글을 쓰고픈 내게 에세이의 교본이 된 책이다. 수필과 에세이의 차이라면 ‘글이 두서없음’이 수필에선 겸손의 표현이어야 되지만 에세이에선 한 작법이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시답잖고 두서없는 문장으로 꽉 찬 하루키의 에세이집은 마치 자리끼 같달까. 한동안 머리맡에 두고 잠 오기 전 자주 집어 읽었다. 손가락 파고드는 데로 아무 지점에서 펼쳐 읽어도 상관없으며,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어쩜 맹물 같다. 그래서 좋다. 누울 채비를 마치고 딱 하나 마시기로 소주, 커피, 콜라는 적절하지 않고 오직 아무 맛 남지 않는 맹물 한 모금만이 최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애정이 심해서인지, 나는 이런 하루키의 에세이가 진정 좋은 에세이라고 본다. 정보 과부하 시대에 에세이 열풍은 일정 부분 글의 무상념에 있다고 본다. 나는 하루키처럼 쓸모없어 쓸모 있는 에세이를, 수필에서도 보여주고픈 것이다.     



4. 수필 몇 편

 지난 고교 3년, 문학시간에 수필 한 편 배우지 못했다. 시나 소설과 달리 수필은 시험 문제로 용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니 이미 작가 그 자신이 흉리를 문장으로 대놓고 진술한 것이 수필이요, 그렇다고 화자의 감정을 유추하자니 역시 작가가 1인칭으로 “나는 슬퍼요”라고 감정을 읊는 것이 수필이라는 심적 나체다. 그렇다고 고교 3년 내내 시와 소설만 가르치는 것은 문제 아닌가. 자식에게 편식 습관을 들이는 부모와 같다.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문학이 정서 교육의 임무도 진 이상 그 교육은 마치 숟가락이어야 한다. 한창 감수성이 절정일 학생들에게 최소한 여러 작품을 최대한 다양한 갈래에서 퍼 올려 시음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수필이 객관식 문제에 적합하지 않다면 수행평가에 이용은 어떨까? 수필을 읽고 감상을 작문하라든가, 아니면 동일 주제로 직접 수필을 작문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지도 못하는데 왜 이런 고민을 쓰는가? 아무래도 윤동주의 <달을 쏘다>와 <별똥 떨어진 데>, 그리고 주요섭의 <미운 간호부>, 이 세 수필은 꼭 한번 읽어보시라는 추천의 마음, 그 안달이 어지간했나 보다.    


  

5. <광인일기>루쉰

 이전에 감상문을 남겼다.      



6. <히트>스윙스

 한병철의 <피로사회>보다는 스윙스의 <히트>를. 적어도 내 20살은.     



7. <린치핀>세스 고딘

 자기 확신은 정 없으면 때론 타자로부터 확신 받아도 된다.      



8.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구절이 책을 기억한다.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을 찾는 것이다. 사회의 평판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의지를 버리면 삶의 존엄성도 잃어버린다. 스스로 설계한 삶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자기에게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적어도 남들만큼은 잘할 준비를 하라. 자격증이 필요하면 기능을 익혀 자격증을 따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과 소통을 잘해야 하니 스스로 글쓰기 훈련을 하라. 중요한 정보의 대부분이 영어로 유통되는 게 현실인 만큼 영어로 듣고 말하는 능력을 충분히 기르는 것이 좋다. 중국어나 스페인어처럼 사용 인구가 많은 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열정을 쏟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역시 즐거울 것이다.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못하고 그저 막연히 스펙만 쌓으려고 한다면 잘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청년들이 꼭 그렇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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