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르한 목소리가 싱그런 아침을 깼다.
“엄마! 빨리 강가로 가요. 어서요!”
“○○아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니?” 여인은 커진 눈을 한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강가에 놓인 알들이 갈라지고 있어요! 아이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 거에요!” 소년은 헐떡이는 숨과 함께 말했다.
“호호, 그래. 어서 가보자꾸나.”
소년의 손을 꽉 잡고 여인이 강가에 다다랐을 때는 벌써 4마리나 되는 아이들이 알에서 나와 꽥! 꽥! 울어대고 있었다. 자세히 들으면 거억! 거억! 우는 듯도 했다. 아이들이 낯선 햇빛에 힘껏 답할 때 어미 오리의 품에 아직 알 하나가 품어져 있었다.
“너는 유난히 오래 걸리는구나.” 어미 오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시 온기 가득한 눈빛이 되었다.
“하지만 괜찮아. 너도 저 형제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무사히 세상에 곧 나오게 될 테니까.”
어미의 다독임을 들은 듯 알이 마침내 좌우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껍질의 금은 아래로 퍼져나가고 드디어 퐁! 소리와 함께 막내 오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막내 오리도 낯선 햇살에 배액! 배액! 울어대기 시작했다.
“오! 내 가여운 아기 오리야 평범하게 무사히 태어나줘 정말 고마워 얘야.”
마을의 소년은 이 오리 가족의 모습을 강둑에서 지켜보고는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본 여인 또한 기뻤다.
“엄마. 근데 저 막내는 몸집이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커요!”
“호호, 그렇구나. 저 아이도 우리 ○○처럼 특별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어떤 특별한 운명이요?” 소년은 여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인은 알을 품듯 소년을 안으며 속삭였다.
“호호, 훌륭한 인물이 되어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평범하지 않은 운명 말이야.”
이튿날 이른 새벽, 어미 오리는 5마리의 아이들을 이끌고 수심이 얕은 샛강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첫 수영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어미의 등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막내 오리만은 유난히 큰 몸집 탓에 형들처럼 재빠르게 따라 걷지 못하고 뒤뚱뒤뚱 힘겨워했다.
“못생기고 덩치만 큰 막내야! 빨리 걸을 수는 없니?”
형제들의 핀잔에 막내 오리는 보폭을 짧게 하며 더 빨리 걸음을 냈지만 그것이 오히려 걸음을 꼬이게 해 몇 번이고 넘어졌다.
결국, 막내 오리는 뒤늦게 샛강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다 모이자 어미 오리는 먼저 강에 발을 담그고 온도를 확인했다.
“아가들아, 한 발 한 발 천천히 물에 들어와 보렴. 우리는 강과 평생 떨어질 수 없음을 명심하렴.”
꽥! 꽥! 거억! 거억! 형제들은 물에 금방 잘 적응해 물장구까지 치며 놀았다. 그때 어디서 배액! 배액! 위기 어린 괴성이 들렸다. 막내 오리였다. 큰 몸집을 띄울 만큼의 발장구를 치지 못해 자꾸 가라앉는 것이었다.
“못생기고 덩치만 큰 막내야! 우리 오리라면 물에 뜰 줄 알아야 해. 아니라면 너는 분명 주워 온 녀석일 거야. 저 큰 몸 좀 봐. 우리 오리들은 저렇게 크지 않아. 또 저 떼 묻은 시커먼 발은 어떻고? 개나리처럼 노랗게 물들인 우리의 발과는 다르잖아!”
그 모습을 본 어미 오리는 막내 오리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큰 소리로 형제들을 다그쳤다.
“막내뿐 아니라 너희도 모두 다르단다. 몸무게가 다르고 부리의 길이도 달라. 또 울음소리도 자세히 들어보면 제각각이야. 함께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홀로 두면 안 됨을 명심하렴!”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막내 오리는 뒤처지고 말았다. 막내 오리는 적적한 밤하늘에 홀로 뜬 별의 기분처럼 우울해졌다.
“엄마도 아시겠지. 주워 온 새끼라는 것을. 난 짐만 될 뿐이야. 잠시 가족들과 떨어져 내가 수영도 잘하게 되고 발의 검은 떼도 벗고 또 형들이 나만큼 몸집이 자라날 때면, 그때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자. 그때면 평범해 보이는 나를 형들도 반겨줄거야. 다들 잠시 안녕.”
막내 오리는 어미와 형제들을 따라가지 않고 개골창으로 빠져 홀로 걸었다. 어디로 갈 지는 몰랐다. 하지만 밤이 다가오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막내 오리는 물이 들어 차지 않아 말라버린 농수로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내자.”
막내 오리는 농수로의 벽에 기대자마자 금방 잠들었다.
“나는 언제쯤...평범해질 수...있을까요.”
잠결에 떠도는 막내 오리의 목소리는 농수로를 울리게 했다. 잠든 막내 오리의 귀에 누군가의 발이 바닥에 닿다가 떼다 다시 닿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누군가 농수로의 어둠과 함께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막내 오리는 잠결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거기 어둠 속에 누구세요?” 막내 오리가 잠에서 깨 외쳤다. 눈 앞의 어둠에서 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혹시나 해서 기다렸는데...역시 혼자가 확실해.”
어둠 속에 빛나는 초록의 두 눈동자가 말하였다.
“너희 새끼 오리들은 온실 속 화초인 양 언제나 제 어미 옆에만 붙어있지. 그래서 도통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 근데 오늘은 운이 좋아. 항상 함께인 오리가 혼자가 되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으니 말이야.”
막내 오리는 신기하게 떨지 않았다. 무서워 떨기에는 너무나 지쳐버린 심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념하듯 말했다.
“검은 고양이 아저씨, 전 이렇게 끝까지 혼자인가 봐요.”
“이봐, 우리 고양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야.” 검은 고양이는 조금 더 의심을 품고 약간의 관심을 줘보기로 했다.
“나만 못났거든요. 몸집도 돼지처럼 크고 발도 꺼매요. 또 수영도 못하는 멍청한 오리일 뿐이에요.”
검은 고양이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내 눈에는 다 똑같은 평범한 오리들뿐이야. 이봐, 저 마을에 인간들이 떠드는 말을 들은 적 있나? 그들은 제 자식들에게 어릴 때부터 특별한 운명을 가졌다고 교육하지. 창틀에서 몰래 듣자니 정말 한심한 꼴의 인간들이야. 그것이 오히려 제 자식을 외롭게 만들거든.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어떻겠어? 자기는 특별한 운명이고 다른 이는 평범한 운명이라고 기만하지. 그 기만으로 남과 어떻게 어울리겠어. 결국, 함께하지만 홀로 든 기분이 드는 거지. 너는 마치 그런 인간들처럼 사고하는군. 아주 역해.”
막내 오리는 눈앞에 포식자에게 화가 났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묘하게 생긴 용기였다.
“저는 제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저씨가 착각하시나 본데 저는 잘난 게 아니라 못난 거라고요. 아저씨가 못나 봤어요? 태어났더니 주워 온 새끼라는 기분을 알아요?”
“착각하지 마. 잘난 것만이 특별한 운명을 뜻하지는 않아.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나만 못났다는 그 생각, 그것이 스스로를 혼자로 만든 거야.”
“그래서 저를 어쩌실 거죠?” 막내 오리가 물었다.
물음에 검은 고양이는 송곳니를 드러냈다. 송곳니에 침이 끈적하게 낙하하고 있었다.
“난 그저 그런 길고양이야. 하루하루 내 생존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그런 평범한 길고양이. 나는 지금 삼일이나 배를 곯았어.”
이때 고양이의 얼굴에 아주 빠르게 한 줄기의 빛이 스쳤다. 쾅! 뒤늦게 도착한 소리와 함께 쏴아 쏴아, 내리기 시작하는 폭우였다. 농수로 안은 이 둘의 발을 바닥에서 띄울만큼 금세 물이 불었다. 둘은 이제 농수로를 따라 알 수 없는 곳으로 휩쓸려 가고 있었다. 그러다 물살은 갈래 길에서 둘을 갈라쳐 각각 다른 길로 보냈다. 검은 고양이는 말했다.
“죽을 때까지 혼자라는 오리라...어쩌면 나도 다를 바 없군.”
막내 오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물살에 발버둥치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지친 심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만 눈을 감고 물살에 흘러가는 대로 그 몸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익숙한 햇살이 깃털을 보송보송하게 말렸다. 막내 오리가 눈을 떴다. 농장이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데 갑자기 그 익숙한 햇빛이 사라지고 기다란 어둠이 내려왔다. 그런데 움직이는 어둠 아닌가. 이윽고 어둠 속에서 뻗어진 두 팔이 막내 오리를 들어 올렸다.
“막내 오리야! 강가에 가족들과 떨어져 왜 혼자 여깄니?”
목소리의 주인은 오리 새끼들의 탄생을 지켜본 마을 소년이었다. 막내 오리는 농수로의 물살을 타고 소년의 농장까지 이른 것이다. 소년은 막내 오리를 품에 안고 강가로 내려갔다.
어미 오리는 소년의 품에 안겨 돌아온 막내 오리를 보고 놀란 눈으로 외쳤다.
“오! 내 가여운 아기 오리야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니! 지금 형들이 다 너를 찾으러 갔단다.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막내 오리는 두려움에 떨고 발버둥 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친 몸이었지만 눈물만은 낼 수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이제 말해줘요, 나만 다른 새끼라는 것을요. 저 오리 아니잖아요! 저는 닭처럼 작은 몸집과 노란 발, 강가에서 물장구칠 줄 아는 그런 오리가 아니잖아요!”
“오! 내 가여운 아기 오리야 너만 그렇게 특별히 다를 리가 없잖니. 우리 모두 특별해. 이 어미도.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아주 지극히 평범한 존재인 거야.”
“나만 혼자인 느낌이란 말이에요.” 막내 오리가 흐느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네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든 그건 중요치 않단다. 설령 오리로 자라지 않아도 그냥 아무나 되면 돼. 네가 이 어미의 자식이란 점과 형들의 동생이란 점, 이 두 가진 변함이 없단다. 다시 함께 살아보자꾸나.”
소년은 이 모습을 강둑에서 지켜본 뒤 집으로 뛰어갔다. 소년은 헐떡이는 숨과 함께 말했다.
“엄마! 내가 뭐라 그랬어요. 다들 함께 지낼 수 있다고 말했잖아요!”
“호호, 그러니? 거위와 백조를 자식으로 둔 어미 오리라니. 네가 맞았구나. 하지만 ○○아. 다시는 그렇게 농장의 알들을 훔쳐 강가에 모아두는 장난은 하지 말아라! 너희 아빠가 알면 가만 안 두실 것이 뻔하잖니?” 여인은 침대에 누운 채 말했다.
“엄마, 그런데 새끼들은 본인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까요? 사실은 자기들이 거위와 백조라는 것을요.”
“호호, 그럼. 언젠가 특별한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오리 어미의 품을 떠나겠지. ○○아, 너도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이 어미 곁을 떠나겠지? 응?”
“훌륭한 사람 그런 거 차라리 안 할래. 그냥 아무나 돼 엄마 아빠 곁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래!” 소년의 말은 여인의 얼굴에 미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