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금방 헤어 나오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전화기가 울린다. F의 전화다.
받을까 말까 고민이 된다. 우린 저번주에 처음 만났는데. 그 후로 매일 같이 전화를 했다. 관심의 표현인 것은 알겠으나, 그가 어째서 내게 관심을 갖는지 의문스럽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미친 듯 흥미로워 '이 사람 내 걸로 만들어버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사유하는 방식이 너무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대부분 그런 생각이 드니까...) 그와 이야기가 끊기지는 않지만, 미지의 사람에게는 디폴트로 질문할 거리가 많으니까... 생활패턴이 비슷하고,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온도가 비슷한 사람 같지만, 우리의 정치적 결이나 어떤 취미가 같은 것도 아니다. F도 지금 즈음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텐데, 나의 어떤 모습이 끌리고, 나의 어느 모습을 더 알고 싶은 걸까?
F는 나에게 본인은 문자를 즐겨하는 타입이 아니라며, 우선 만나자고 했다. 장문의 텍스트로 일이 주일 정도 신원확인을 하고, 이것저것 떠보기도 했으나, 만나자마자 짜게 식어간 전 데이트를 생각해 보면 매우 효율적인 제안이었다. 그가 내게 먼저 만나자고 말을 하지 않고, 우리가 문자로 서로 알게 되었다면, 어느새 내가 처지는 속도감에 지쳐 그를 고스팅 했을 미래가 눈에 선하다.
베일이 벗겨지면 벗겨질수록 나는 이성적인 끌림이 사라진다. 베일이 벗겨지면 인간에게 추한 것 밖에 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누구 와든 거리를 유지해 내 체력이 닳기 전의 내가 추스를 수 있는 모습의 나로서 나를 전시하고 싶다. 스물다섯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것은 내 눈이 너무 높아서나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런 방식으로 매우 쉽게 사람을 마음에 들여놓고 재단하고 놓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에 대한 내 관심은 한 달을 넘어간 적이 별로 없다.
J를 짝사랑하던 2월에는 그가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 싫어졌고,
F에게 관심을 갖게 된 3월엔 그가 내게 관심을 가져서 부담스러워졌다.
그가 나를 계속 좋아할 지도 궁금하지만, 내가 과연 그를 계속 좋아할지가 더 궁금하다.
5월에는 누구를 좋아하고 있을까?
-4월의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