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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지 Aug 26. 2021

예측할 수없지만,항상 두근거리는 길로 인도하는 너에게

 넌 가끔 두서없고 장황하게 뻗어서 날 당황스럽게 하곤 해. 가끔은 부정확하고, 충동적이기도 하지. 하지만 네가 싫다는 이야긴 아니야. 싱그럽고 생기 있는 에너지가 바로 네 매력이잖아. 잉크로 빼곡히 적혀있는 친구들은 진중하긴 하지만 거르고 또 걸러진 무지방 우유나 연 두부처럼 담백하달까. 그러니 네가 얼마나 특별하겠어.


 그래. 내가 그런 너 때문에 많이 노력했지. 누군가는 나란 사람을 “참하다”라고 평가하고, 누군가는 내 앞에만 오면 "종교 시설에 온 듯 차분해진다"라고 하지. 나와 함께하는 넌 매우 정적이라는 뜻이겠지? 다들 너 때문에 잠들기 전에 이불을 차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다던데, 난 딱히 그런 일이 없을 만큼 스스로 통제하고 검열하는데 도가 텄어. 왜냐하면 너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내 손안에 두려고 노력했거든. 그런데 살다 보니 잉크, 손, 혼자만의 사색을 거치지 않은 채 너랑 먼저 만나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더라. 당황스러웠어. 이미 말했듯 너와 나의 특성 때문에 우린 물과 기름처럼 공존할 수는 있으나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우리 꽤 많이 가까워졌어. 하지만 통통 튀는 너를 제어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문제야. 


 내가 꾸준히 읽지는 못하지만 짬짬이 책을 보려고 노력하는 거 너 알지? 새로운 단어와 좋은 표현을 익혀서 너랑 함께할 때 써보고 싶으니까. 독일어를 배운 이유도 다 널 확장하고 싶었던 것도 너 알지? 나랑 비슷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었으니까. 널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게 결국 내 자극제였어.


 한데 세상에 모든 것은 한계가 있듯 너에게도 한계가 있더라. 너를 통해 난 많이 속기도 했어. 분명 나랑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뜻을 함의해서 네가 자꾸 이상한 데로 흘러가기도 했고, 계속해서 듣다 보니 이상하거나 극단적인 사상을 강요하기도 해서 너와 벽을 마주하기도 했어. 너를 나누다 보니 나랑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속마음을 완벽히 숨기고 그런 사람인 척 흉내 내는 사람도 만났어. 종국에 그는 정말 폭력적이었는데, 아닌척했지만 너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어. 글쎄,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지 뭐야.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 상처도 참 많이 받았어. 사실 그 사람들이 문제였는데 너까지 싫어져서 집 밖엘 나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절대 열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어. 너도 기억하지?

 그래도 있잖아, 내 마음에는 너를 통해 얻는 행복이 너무 충만해서, 그 슬픔이 점점 옅어져. 널 알아갈수록 내 마음의 분량이 넓어지고 폭이 깊어져. 널 통해 모두를 완벽히 이해하고 결국엔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직접 시도해보니까 그게 너무 이상적이라는 것도 알게 됐잖아. 직접 겪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마주해도, 그냥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그랬겠구나”, “넌 그렇구나”라고 내뱉는 것도 알맞은 온도의 따뜻함이라는 걸 알게 됐잖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네가 확장되며 상대를 다각도에서 매번 새롭게 마주하는 일, 그 섬세한 일이 참 즐겁고 기대돼. 


 너를 통해 난 계속 자라 갈 거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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