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우 Feb 23. 2024

오컬트물과 영화관의 상관관계

영화 파묘(2024)

한국영화계에서 쉽게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괄목할만한 작품이 생겨나는 장르가 있다. 종교, 미신, 무속신앙이나 샤머니즘과 같이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다루는 장르물인 오컬트물이 그것이다. 적어도 영화계에서 오컬트물의 출발은 서구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악마의 씨>(1968)나 <엑소시스트>(1973)와 같이 서구권은 일찌감치 악마와 퇴마, 미스테리와 사이비, 믿음과 의심과 같은 요소들을 다룬 굵직한 작품들이 등장해왔다. 사실 필자의 생각으론 오컬트물은 동양권과 더 잘어울린다. 죽은 자를 기리고 모시기위해 21세기에서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전통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풍수지리를 포함해 제사를 지내는 전통은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하지만 서구권은 과학혁명이 일어나기도 했고, 현대에 들어서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하위문화격으로 내려왔다. 다만 한국은 아직까지 현실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와 현상은 큰 힘을 가진다.


영화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감독한 세 번째 장편영화로, <검은 사제들>, <사바하>이후 세 번째 종교,오컬트물이기도 하다. 장재현 감독은 한국에서 드물게 오컬트물에 진심인 감독이고,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오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인 세계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영화관에서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본 리뷰는 소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주동하는 네 인물은 각각 풍수사, 장의사, 무당으로 현세보다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다루는 인물들이다. 서로 겹치는 듯, 동떨어진 듯한 전문가들을 연기하는 명배우들의 호연은 관객에게 이 세계를 설득시킨다. 우리의 세상과 동떨어진 것을 다루는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란 일단 관객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묘>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어느정도 관객을 설득시킨 뒤, 관객의 예상보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훌쩍 우리를 데려간다. 또한 무속신앙에 대한 정보가 적다면 세세한 설정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고 음양오행과 같은 설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조금 더 설명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한국 관객들에겐 어느 정도 보편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감독의 도전이 엿보이며 아마 적지않은 사람들이 호불호로 나뉠 것 같다. 하지만 흥미로운 세계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오컬트 장르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미스테리다. 인물들은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을 믿고 의심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존재를 맞딱드리고, 우리를 희롱하고 본인의 목적을 취하려는 초자연적인 존재,집단 앞에서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이 곧 오컬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제작된 오컬트물 중 최고작은 <곡성>(2016)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무속신앙과 기독교를 적절히 섞어 완전히 한국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명작이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이야기 진행에 편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플롯을 영리하게 배치시켰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곡성>은 어느 한쪽을 완벽히 믿기 어렵게 한다. 이야기 안에서도, 이야기 밖인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관객을 완벽하게 압도한다. <곡성>과 <파묘>는 어느정도 공통분모가 있고 차이점도 존재한다. 확실한건 두 영화 모두 영화적인 체험을 염두에 두고있고 극장에서 관람해야 하는 영화들이라는 것이다.



본작의 특징을 '경계에 서 있다'로 정리하고 싶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풍수설에 입각해 구조물을 세워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했다는 도시전설인 '일제풍수모략설'이 등장한다. <사바하>때도 그렇고, 장재현 감독의 작품은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사건인듯 시작해 한국의 역사나 특정 시대의 정서로 넓게 뻗쳐나간다. <사바하>와 비슷하게 <파묘>는 특정 사건을 역추적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시작해서 선명한 특정 시대상에 도착한다. 또한 장르적으로 접근했을 때, 오컬트물의 포인트는 결국 사건의 배후인 초자연적인 존재다. 정령이 될수도, 유령, 망자의 혼, 악마 등이 될 수도 있다. <곡성>, <악마의 씨>, <유전>, <쳐다보지 마라>같은 영화에선 말미에 그들의 존재나 형태가 어렴풋이 등장한다. 애초에 오컬트물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미스테리'니까 말이다. 다만 <파묘>는 특이하게 중반부부터 시작해 사건의 배후가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선명하게 등장한다. 물리적으로 인물들을 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장재현 감독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현실의 세상. 그리고 오컬트물의 전형성과 크리처,호러 그 경계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 하다. 때문에 <파묘>는 어디서 본 것들로 채워진 색다른 영화다.



오컬트물의 작품이 관객을 설득시키는데 중요한 것은 몰입과 압도다. 이 두가지는 극장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필자는 오컬트물의 진짜 재미는 흐릿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명하지 않고, 보일듯 말듯하고, 믿게되다가도 눈을 의심하게되는 것 말이다. 이런 면에서 <파묘>는 뚜렷한 성취가 존재한다. 필자가 인상깊었던 장면으론 (최대한 설명을 배제하고) 김고은이 연기한 '화림'이 압도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쉽게 캐치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대부분의 극장은 전방,후방 그리고 양옆의 벽까지 스피커에 둘러싸여 있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장의 음향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돌비 서라운드'를 생각하면 된다. <파묘>의 해당 장면에서 둘러싸여져 있는 극장 스피커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연출은 영화에 몰입하는데 힘을 보탠다. 관객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채 눈을 찌푸리며 스크린의 무언가를 포착하려 애쓰고 극중의 인물과 함께 소리가 나는 곳을 집중하게 하는, 이런 식의 영화적 체험은 오컬트물과 잘 어울린다. 극장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정도의 몰입과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파묘>는 대단히 한국적인 영화다. 동시에 극장에서 체험하기를 부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모두 한국 영화계에서 반가운 말들이다. 동시에 드문 작품이다. 한국의 오컬트물은 흥미롭고,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게하는 이상한 기운이 있다. 필자가 한국인이라서도 있겠지만, 장재현 감독은 <파묘>를 통해, 그 안의 캐릭터들을 통해 인상적인 세계를 가져왔다. <파묘>는 관객이 의심하도록 시작해서 묘한 영역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수작이다. 가능하다면 이 세계를 극장에서 체험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결국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